무작정 퇴사하고 싶지 않을 때 먼저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 (2)
저녁 주말 할 것 없이 정신 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몇 달은 행복했다가, 또 몇 달은 힘겨웠다가, 몇 달은 휴직을 고민했다가 길게 쉬는 날이 있어 저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간의 기록들을 보았습니다. 일기, 다이어리, 캘린더 등 내가 남겨둔 기록들은 전부 다. 이전에도 종종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아예 자리잡고 하루종일 본 적은 없었어서 뭔가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20대때도 본 적이 있지만 그 때와 지금 보면서 와닿는게 뭔가 다르더라고요.)
어렸을 때 저는 그때부터 공연 보는 걸 참 좋아했습니다. 근데 돈을 벌고 싶어했습니다. 그 외에도 지금 보기에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저를 꾸준히 채찍질하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로 속상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다보니 뭔가 재밌었고, 막연히 공연을 좋아하지만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했던 꿈을, 내가 지금 직업으로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꿈을 이룬거라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누구든 좋아하는게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삶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미래가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고민이 될 때는 (물론 소신있고 생각이 명확한 분들이라면 굳이 필요가 없겠지만. 그런 분들은... 부럽습니다 저는 제 생각을 말하는게 제일 어렵기 때문에...) 사소한 기록들을 돌아보면 좋은 것 같습니다. 일기, 다이어리, 캘린더 외에도친한 사람들과 나눈 메신저, 문자, 이메일, 그 외 기록들… 만약 기록으로 남긴게 없다면 내가 사모은 것들, 애착을 가졌던 것들, 즐겨보았던 콘텐츠 등… 그리고 그렇게 모은 것들이 언젠가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15년 전에 봤던 한 연극의 프로그램북 덕분에 뮤지컬 스텝으로 참여하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상이 뭐든 좋습니다. 덕질을 돌아보는 것도 방법이고요.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해하는 기회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관련 워크샵도 많아서 친한 친구들 외에 그런 기회들에서 얘기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처음보는 사람, 전문가 등등에게 내 얘기를 하다 보면 다양한 나를 알게 되더라고요.) 그 외에 검사들도 파악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MBTI 검사, 기질검사, 기타 등등, 사주 신점 타로도…
그렇게 다양한 기록을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 침전물처럼 고요히 남는게 생기더라고요. 저의 경우 어떤 것이 남았는가 하면 "나는 공연 보는 것을 좋아했고, 무대에 오르는 것도 몇 번 해보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만들어주는 걸 더 좋아한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경우에 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뭐가 있는지 우선 알아야 하는 것 같고, 뭔가를 하게 된다면 작은 것부터 경험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기획을 하고 싶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전단지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내 성향에 맞는 것을 해야겠다 추렸습니다. 뭔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무대에서 관심이 주목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의 경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가끔 특별하게는 할 수 있겠지만 (혹은 빵꾸가 나서 메꿔야 한다거나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겠지만) 매 순간 하기에는 뭔가 부담도 크고 순발력이 부족해서 대처도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걸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영역에서는 제가 마음 편히 잘 할 수 있는게 있기 때문에 그걸 아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 워라밸은 포기할 수 없다면 혹은 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그게 가능한 직장으로 가야 할 것 같고, 아니면 성장이나 돈이나 명예가 중요하다면 각각이 가능한 환경에 가서 열심히 하고 그만큼의 대가를 받는 것처럼요. 불가능한 환경에서 워라밸을 추구한다거나, 인간관계가 좋을 수 없는 업계에 가서 요구하는 것도 뭔가 비현실적인 것 같아서, 만약 그렇다면 뭐 하나를 포기해야겠죠.
아무튼, 이런 식으로 방향을 정해서 걸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잘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니더라도 그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 경험상 열정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고, 기회를 주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불가능한 자리였는데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기회나 그런것도 분명히 있었어서, 아닌 경우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두드려봐야 확률이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기우제처럼 비가 올 때까지 정성을 들이면 언젠간 단비가 올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