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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관련' 수 많은 일들 중 내가 하는 일은

연예인은 구경도 못하고 엔딩 크레딧에도 못 들어가지만 보람은 있어요

by 최애일 aisle choi

공연 관련 일을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거 하면 연예인 봐?” 당연한 얘기지만 연예인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다른 직업보다는 많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티스트 혹은 연예인이 관객을 만나기까지는 정말 많은 과정이 있습니다. 온라인/오프라인 포함해서 아티스트와의 거리만 생각하면 제일 가까운 건 코디, 스타일리스트 정도, 팬과 제일 가까운 건 시큐리티나 현장 진행요원 등일 것 같은데, 그 사이에도 무수한 관계자들이 있고 각자 유기적으로 잘 역할을 해야 하나의 시스템처럼 진행되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되더라고요.


아무튼 제 일은 그 무수한 단계 중 하나 정도인 것 같습니다. 연탄나르기 봉사처럼 하나의 연탄이 지나가는 손길 중 잠깐 스쳐지나가는 하나 정도라고 보시면 되는데, 작은 공연들은 인력이나 예산 여건상 어렵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혹은 혼자서 전부 해결하는 경우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거치는 단계가 생략되니 가끔 직거래를 하기도 하고요. 정해진 기한은 있고, 해야 할 일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야근이나 초과근무는 당연한 게 현실인 그 분들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신기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사실 결국 회사 일이고, 직장인으로서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싶더라고요. 가끔 멀리서 보면 큰 공연들은 신기하기도 한데, 그런 만큼 고충도 있고 보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래서 그냥… 흐르는 물이 되고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있는 듯 없는 듯…


근데 공연 관련 일을 하면서 그런 건 있습니다. 사람은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학교 다니면서는 모두가 취업을 보고 달리다보니 그 중에서 대기업을 가는게 중요하다 생각하고 대외활동을 지원했지만 대외활동 자체도 쉽지 않아서 취업을 할 수 있는걸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 외의 다른 직업은 꿈도 꾸지 못했고요.그리고 회사에서는 워라밸이 중요하고, 공무원과 같은 일을 하다보니 삶의 가치관도 사랑하는 가족과 안정된 가정 속에서 무탈한 회사생활을 꿈꾸는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는 대외활동 자체를 굳이 왜 해? 회사 다니고 있는데 뭐하러 하냐 하는 반응이었지만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회사와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본인의 성격이 독고다이라면 괜찮겠지만 사실 그러기는 쉽지 않고 정말 수 많은 고민과 굳은 결심, 그리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고 내 생각과 다를 때 그것을 감수하는 것도 내 몫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장인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다들 그렇게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최근에는 업무를 바꾸면서, 그 분들의 생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소통하면서,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는 것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 용기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사람이구나 싶고, 물론 그렇다고 마냥 좋은 면만 보는 건 아니고 좋아서 시작했겠지만 일로 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현실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등 생계형으로 직업이 그냥 예술인인 분들도 계신 것 같긴 하지만. 그 분들을 돕는 일을 하고 공연을 잘 마쳤을 때의 뿌듯함이 좋아서, 그리고 그 사람들을 보러 온 관객들의 기대감에 찬 모습이 좋더라고요.


거창하게 아티스트와 가깝다거나, 남들은 모르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다거나, 혹은 그들이 감사해하는 스탭에 포함된다거나, 하다못해 콘서트 마지막 기나긴 엔딩크레딧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할까요. 최애와의 지난 경험 덕분에 누군가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저는 그냥 그 현장과 그 순간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뭐가 되었든, 관객이 아무리 많든 적든, 돈을 얼마나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남들보다 더 고생하는 분들이 감수하는 것도 그런 순간들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더 바쁜 환경에서 정해진 공연일에 맞춰 밤샘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며 멀리서 응원과 격려를 보내게 되는 이유입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저는 지금 제 일이 좋습니다. 그럼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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