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잔디밭에는 하얀 성당이 하나 해맑게 서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대들보와 기둥이 반갑게 맞이한다. 복원하며 새로 세워진 기둥과 오래전부터 성당이었던 기둥이 어우러져, 성당 안은 오붓하고 따스하다. 오래된 기둥에 손을 대어 본다. 아주 오래전 이 기둥은 김대건 신부를 만났으리라 생각하며.
‘은이’라는 지명은 ‘숨겨진 동네’ 또는 ‘숨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곳으로,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되어 자연스럽게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은이’는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신자들의 굳건한 의지와 신앙 공동체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상징하기도 하다.
은이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과 깊게 연결된 곳이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이자, 사제가 되어 돌아와 첫 사목 활동을 펼친 곳이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첫 번째 사제 성소와, 첫 사목활동이 모두 은이 공소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김대건 신부는 이곳에서 순교 전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였다. 은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성장(산 너머는 골배마실 성지)과 세례성사, 신학생 선발, 사제서품 그리고 첫 사목활동까지 모든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로 의미가 깊다.
또한 이곳에는 중국의 김가항 성당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중국 상해의 김가항 성당은, 명나라 말기에 세워진 주교좌 성당으로, 역사적 어려움(일본군, 국민당 정부군에 의한 파괴) 속에서도 상해의 중심 성당으로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2000년 상해 정부의 도시개발 정책에 따라 철거계획이 실시되고, 이에 수원교구에서는 김가항성당을 은이성지에 복원할 계획을 수립한다. 중국에서 철거된 김가항 성당의 건축자재 중 기둥과 대들보 등을 반입해와 이를 활용하여 2016년 김가항 성당을 은이 성지에 복원한다. 김가항 성당의 복원은 단순히 건축물의 이전, 복원을 넘어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신앙을 이어가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은이 성지에서 남긴 마지막 말씀을 전해본다.
험난한 때에 우리는 천주님의 인자하심을 믿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 할 용맹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구합시다.
지금 우리 주위에 검은 마귀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일의 삶을 모르는 위급한 처지에 처해 있는 우리들입니다.
내 마음과 몸을 온전히 천주님의 안배하심에 맡기고
주 성모님께 기구하기를 잊지 맙시다. 다행히 우리가 살아 있게 된다면
또 다시 반가이 만날 날이 있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천국에서 즐거운 재회를 합시다.
끝으로 홀로 남으신 내 불쌍한 어머님을
여러 교우분들이 잘 돌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대건 신부는 페리올 주교의 명에 따라 최양업 부제와 프랑스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을 위한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1846년 4월 은이공소에서 마지막 부활대축일미사를 봉헌하고 이렇게 인사겸 부탁을 하고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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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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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http://www.euni.kr/
성지 개방시간 9:00~17:00 (월요일 개방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