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슬리퍼를 신고 나갔는데 발이 시리더라. 추석연휴에 시댁에 모인 가족들과 더워 잠을 잘 수가 없어 에어컨이 있는 집으로 옮겨 잤더랬다. 끝나지 않는 늦더위로 살다 살다 이런 일 처음이야 했던 게 저번 주 일인데 오늘 아침바람에 시린 발가락을 내려다보며 여름이 갔다는 게 느껴졌다.
최고로 뜨거웠던 올해 여름, 나는 열심히 운동하며 보냈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야외코트에서 테니스를 쳤고, 목요일엔 실내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더운 날엔 오전 8시에 테니스를 쳐도 땀이 뚝뚝 떨어졌다. 찬 음료를 잘 못 먹는데 올여름은 얼음 가득 채운 컵에 커피, 이온음료, 물을 채워 몇 잔이고 마셔댔다. 안팎의 열기에 더워진 몸을 식히는데 그만큼이 필요했던 건지 찬 음료만 마시면 나던 배탈 한 번 없었다. 여름 내 성실하게 공을 날리는 팔의 궤적을 아름답게 그려댔다. 멀리 보내려 힘을 많이 실을 수 있는 준비자세도 다듬었다. 사방으로 튀던 테니스공이 점점 앞으로 곧게 포물선을 그렸다. 공을 주고받고 하는 랠리 횟수도 늘었다. 배드민턴은 평소처럼 쳤는데 선 밖으로 셔틀콕이 나가 버렸다. 배드민턴 코치가 테니스와 배드민턴 중에 선택해야 할 때가 올 거라고 하길래, 오십견이 오기 전에 둘 다 열심히 칠 거라 했다.
살려고 했던 운동이 어느새 '즐거운' 운동이 되어 있다. 운동가는 날도 좋고, 운동하는 시간도 너무 좋다. 운동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는 맛은 그중 제일이다. 운동하면 할 얘기가 끊임없이 솟아나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운동 규칙만 알면 함께 놀 수 있다. 어느새 운동하기 위해 잘 먹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먹고 운동온 날은 힘이 없어 중간이 지나면 집중력이 확 떨어졌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운동을 정해진 시간에 오려면 다른 생활들을 돌발 상황 없게 안정시켜야 했다. 돌발 상황이 생긴다 해도 테니스는 4명, 배드민턴은 10명이 함께 하고 있어서 그 안에서 레슨 순서를 바꿔서 무리 없이 해 냈다. "얘들아, 잘 먹어야 해! 부상은 절대 안 된다!"
오전에 아이 등굣길에 함께 집을 나와 달리기도 했다. 계획은 아이 등교 때마다 함께 나와 짧게라도 달리는 거였는데 생각만큼은 안되었다. 함께하는 운동 약속은 빠지지 않는데 혼자 하는 운동은 하다 말다 하게 됐다. 런데이 50분 달리기 훈련을 시작해서 달리는 주는 한두 번 달리고 나면 그다음 주는 오늘은 운동 가는데 핑계 대며 안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주 쉬고 나면 그다음 주는 이래선 안 되지, 하며 달렸다. 이렇게 하다 말다 나름 규칙적으로 나태하게 달렸다. 하지만 찬바람이 불었으니 이제 계절은 내 편이다. 겨울에 계절성 우울감이 오면 나는 뛴다. 짧은 일조량과 우울감의 중력을 달리기로 이겨낸다. 겨울 달리기는 몸 안에 보일러의 스위치를 키는 것 같아서 새벽에 뛰고 오면 오전은 몸이 더워 반팔을 입고 지내게 된다. 고로 겨울은 추우면 추울수록 겨울이 깊어갈수록 달리기 좋다. 달리기를 하고 나서 나는 겨울이 겁나지 않는다. 오라, 겨울!
올여름 운동을 얘기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건 등산이다. 나는 여전히 백두대간 종주 중이다. 2년에 45구간 백두대간 종주를 한 달 앞두고 있다. 이번 주에 드디어 40, 41구간을 간다. 종주가 다가와서 올여름에 보충산행을 여러 번 다녀왔다. 한 달에 두 번씩 본 산행을 하고 중간에 또 보충산행을 다녀온다는 건 보통일은 아니다. 산행 평균 거리가 15km 정도고 산행 시간도 10시간은 잡아야 해서 그렇다. 8월에 1박 2일로 설악산 종주를 다녀와 보충산행을 두 번 연이어 다녀왔다. 20km 구간을 다녀와 하루 지나 15km를 한 번 더 다녀왔다. 내가 빠진 구간에 간다는 사람 있을 때 가기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까지 걸려 회복기라 컨디션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일단 가서 힘들면 차에 있어야지 별 수 있나, 하고 나섰다.
나는 나대로 힘든 이유가 있었지만 함께 보충산행을 하는 이들도 각자의 힘든 이유가 있었다. 힘들지 않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속해 보충을 가던 날, 새벽 두 시에 다른 기수의 산행버스를 신청해 앉았는데 현타가 왔다.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있는데 보충산행을 같은 기수 분이 탔다. 평소에 대화가 없던 사이인데 다른 기수에 섞이니 같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한 분은 새벽 두 시까지 일하다가 잠도 못 자고 왔고, 다른 한 분은 버스 타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백두대간에서 가장 쉽다는 코스 중에 하나를 비 내리면 비 맞아가며, 해 나면 땀으로 젖어가며 힘들게 마쳤다.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산행들을 다 해내고 나니 뿌듯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언젠가 바랬던 모험 가득 찬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들이 미식축구 시합날에 와달라는데 산행날이다. 아들에게 "너는 니 시합 뛰어라. 나는 내 산행 다녀올게"라고 했다.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냐는 아들 말에 "너 열심히 준비해 나가는 시합도 대견하지만, 중년에 백두대간 종주하고 있는 나도 너무 대견해서 산행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려고 시작한 산행이 어느새 내 산행이 되었다.
11월 종주를 앞두고 10월에는 매주 산행이 예정되어 있다. 산불예방 산행금지구간에 걸리기 전에 다녀와야 하는 본산행도 빡빡한데 보충도 두 개 남아있다. 10월에 빨간 날은 보충산행까지 하게 되면 한 달간 100km 정도 산을 타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세어보면 큰 일인데 한 번의 산행씩 여력이 되는대로 다녀오려 마음먹고 있다. 버스에 몸을 싣고 올라갈 수 있으면 가는 거다.
가을에도 운동해야 하고 산에 가야 하니 나는 지금까지 그랬듯 나를 잘 먹이고, 잘 쉬고, 집에 굴러다니는 영양제도 잘 주워 먹으리라 의지를 세워본다. 뜨거운 여름도 잘 지났는데 선선한 가을이야 뭐가 어려울까! 가을엔 조금 더 즐기며 여유 있게 운동도 하고 산도 타야지. 견뎌내야 하는 계절이 지나고 한껏 누려야 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