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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쥔장 Sep 19. 2022

11. 호텔리어 되는줄 알았어

브런치북_다시, 제주

제주의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되자 유통에 있어 비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많던 귤들도 팔다보니 끝이 보였고 이어진 레드향, 천혜향, 한라봉의 만감류까지 소량이지만 팔고나니 이제 또 뭘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봄이라고 제주는 온통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황홀함에 취해 멀미가 날 지경이었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선 공포가 느껴졌습니다. 육지에서의 마지막 직장생활을 끝내면서 다시는 취업은 안하겠다 생각했지만, 가진 것 없이 빚만 남은 저에게 보릿고개 같았던 그 봄의 선택권은 취업뿐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안 가겠다던 취업시장을 다시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집에서도 가까운 애월 해안도로에 즐비한 몇개의 호텔에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첫번째 직장은 눈 앞에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의 오래된 관광호텔이었습니다. 급하게 사람을 구하던 곳이라 이력서도 없이 10분간의 면접만으로 바로 다음날부터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업무는 호텔 조식담당으로 매일 30여명분의 아침 조식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밥과 국, 반찬 서너가지로 구성된 음식을 혼자 다 해야 한단 소리에 첨엔 잘못 들은 줄 알았으나 뷔페이기 때문에 투숙객들이 많이 먹지 않고 여지껏 한 사람이 별 탈 없이 해냈단 소리에 일단 해보겠다 했습니다. 나이 마흔일곱에 마땅히 써줄 곳도 없어보였고 무엇보다 집에서도 가까우며 여러 사람과 부대끼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란 것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조식 시간은 오전 일곱시부터 아홉시까지. 오전 다섯시까지는 출근하여 준비를 마치고 식사가 끝난 후 뒷정리까지 열시 정도면 끝날거라는 얘기에 별다른 계약서도 없이 그렇게 다음 날부터 근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수인계는 첫날로 끝났고 다음 날부터 혼자만의 새벽 사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평균 30여명이라는 인원은 점점 불어나 7~80명이 될 때도 있었고 조금 먹는다던 외국인들은 중간중간 중국인과 한국인 손님들이 가세하면서 그 양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날의 양을 가늠할 수 없어 어떤 날은 해 놓은 반찬들을 잔뜩 버려야 할 떄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반찬과 밥이 모자라 손님들에게 원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혼자 해내는 조식은 아무리 반찬수가 몇가지 되지 않는다 해도 재료 손질부터 조리까지 부담스럽고 벅찬 일이었습니다. 메뉴 또한 정해진 것이 없어 메뉴 구성도 직접 해야했으며 요리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먹고 난후 설겆이까지 마쳐야 해 아무리 손 빠른 저라 해도 끝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이었습니다. 아침 네 다섯시간만 투자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 사업을 병행할 수 있겠단 계산은 현실에선 통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열흘쯤 지났을 무렵, 오픈 전부터 식당 문을 두드린 이들은 남녀 동창생들로 구성된 중년의 한국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담겨져 있던 반찬들을 미친듯이 자신의 접시에 옮겨 담기 시작했고 그들이 지나간 다음 투숙객들에겐 빈접시만 놓여졌습니다. 한국어가 통하지 않던 중국과 태국 손님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급하게 투입된 지배인 와이프와 저는 서둘러 음식을 조리했습니다. 그때 한 중년남자가 갑자기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먹을 게 없잖아. 먹을 게. 나는 괜찮아. 근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잖아. 이게 한국 망신이지. 저 사람들이 당신들 때문에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겠어? 응?"

가뜩이나 미친듯이 먹어댄 그들이 미워죽겠고 음식하느라 땀까지 흘리던 저는 그의 면상을 그야말로 후려치고 싶었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왁자지껄 회식하듯 접시란 접시는 죄다 늘어놓고 소주까지 까고 있는 테이블은 누가 어글리 코리아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며 저 개념없는 아저씨가 혼자 왔을때도 저렇게 호기를 부리며 되도 않는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 저는 의문이었습니다. 아수라장에 지배인까지 불려왔고 정중히 사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배인은 쌍욕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저도 할말은 있었습니다. 4시반에 출근하여 평소 태국인들 양의 세배는 넘게 준비한 것이었음에도 그런 사단이 난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 존재하니 사전에 이렇게 양이 늘어날 것을 예측했더라면 일할 사람을 더 붙여줬어야 했습니다. 제가 투숙객을 선택할 순 없었겠지만 이렇게 교양없는 사람들을 받고 있는 그 자리가 너무 싫었고 무엇보다 얼굴이 벌개지면서도 속시원히 말 한마디 못하는 지배인을 보자니 더 화가 났습니다. 그날 아침의 아수라장 이후로 다음 후임자가 오는 날까지 일을 봐 주고 미련없이 그곳을 떠났습니다. 싸구려 장화를 신은 발이 미끄러져 며칠 동안 허리를 쓰지도 못하고 뼈 마디마디 쑤시는 통증을 안은 채 이제는 내 본업에 충실하리란 다짐을 안고 나온 날, 하늘만큼은 더없이 맑고 따뜻한 제주의 봄이었습니다. 


 완연한 봄을 만끽함도 잠시, 본업에 보다 충실하려 해도 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날들이 지속되었습니다. 사업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구나 실감하며 그렇게 다시는 가지 않겠다던 호텔을 또 기웃거렸습니다. 그중에 제법 규모있는 호텔에서 연락이 왔고 역시나 몹시 지쳐보이는 지배인과의 짧은 면담후 다음 날부터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성수기라 그렇다쳐도 어쩜 이쪽 업계는 이렇게 하나같이 다들 급하게 채용하고 하나같이 다들 피곤에 절어 있는 건지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호텔내 레스토랑 홀 담당이었습니다. 

여섯시까지 출근하여 조식을 마치면 열두시 전까지는 일이 끝난다는 얘기에 역시 내 사업에 투자할 시간적 여유가 가능하리라 여겼습니다. 출근 첫날부터 수학여행 시즌을 맞아 온 학생들이 단체로 들어왔습니다. 이후 보름동안 조식에만 하루 평균 사오백명이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게다가 수학여행단에게는 석식이 제공됐고 그 인원만 해도 일평균 삼백명이었습니다. 아침일이 끝나고 퇴근했다 열두시간 후인 저녁 여섯시까지 아홉시, 열시까지 일하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알바가 아닌 정규직이니 바쁠땐 추가근무가 있을 것이며 일년 중 특별한 달이고 수당은 알아서 섭섭치 않게 챙겨주겠단 지배인의 말에 전 평소의 저답지 않게 금액도 묻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호텔경력 30년에 저보다 한두살 많은, 제주도 사투리로 중국인 주방장에게는 호통을 일갈해대는 지배인 그녀를 왠지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갱년기가 시작될 나이였고 세 명의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인 그녀에게 느껴지는 동병상련의 마음이었다고나 할까요? 유머감각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얼굴은 항상 피곤과 불만에 쪄들어 있었어도 여리고 착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며 이런저런 잔소리에도 고분고분 최선을 다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정도 규모있는 호텔의 이사 정도라면 글로벌까진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상식은 장착했을 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오월을 오전과 저녁근무까지 해내고 급여날이 되었습니다. '섭섭치 않게 챙겨준다'란 말은 얼마를 의미할까 은근 기대하면서 확인한 금액은 어이없을 정도로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전 뭔가 계산착오가 있었으리라 생각하며 바로 총무과에 전화를 걸어 명세서를 요구했고 모든건 지배인인 이사의 소관이라며 잠시 후 이사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엑셀 파일을 캡쳐한 이미지 파일에는 정규급여 외에 5만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저녁 최소 3시간 이상씩 꼬박 열흘동안 더한 연장근무에 대한 액수였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오만원은 뭔가요?"

"수습기간이라 원래는 추가수당 없는 건데 이번달 고생해서 내가 좀더 챙겨 넣어준 거예요. 아직 한달이 안됐으니 급여는 일당으로 계산된 거고."

"제가 오월달에만 하루에 두번씩 출퇴근하며 저녁근무를 꼬박 열흘, 최소 30시간 이상 했는데 수당이 오만원인가요?"

"원래 다른 사람은 챙겨주지도 않아요. 워낙 일을 잘해줘서 내가 특별히 챙겨준 거지."

"최저시급도 안 되는 이 돈을 지금 특별히 챙겨주신 거라고요?"

"시간으로 따박따박 계산해서 이런 식으로 요구할거면 내일부턴 같이 일 못하는 걸로 알겠어요. 처음부터 정해진 수당은 없다고 분명히 얘기했잖아요?"

"알아서 섭섭치 않게 챙겨주시겠다고 하시기에 그런줄 알았는데 저로서는 납득하기 힘드네요."

"그렇게 따지면 월급으로 계산하는 것도 시간당 급여로 다시 산정하는게 맞아요. 다음달부턴 정규직으로 급여도 십만원 더 오를거고, 일년을 놓고 보면 지난달만 바빴던 거고 한겨울은 한가해서 일주일에 두번도 쉬어요. 나이도 많은 분이 하루에 여섯시간 일하고 어디서 그 급여를 받겠어요?"

"그렇게 따지실 거면 그냥 최저시급으로 일한 시간 다 계산해서 주세요. 그리고 자꾸 이 급여가 많다고 하시는데 굳이 따지자면 월급이라 해도 세금 빼고 나면 최저시급밖에 안돼요."

"아니 이게 어떻게 최저시급밖에 안돼요? 이 금액을 나눠보면(계산기 두드리는 소리) 최저시급보다 많은 거지."

"주휴수당은 생각 안 하세요? 주휴수당까지 하면 이 월급 알바 최저시급이예요. "

"주휴수당요? 난 여태 그런거 줘본 적이 없어요. "

노무사까지 개입하여 결국 주휴수당을 합한 최저시급을 받고 나오는 길엔 뿌듯함보단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늦은 나이에 호텔리어로 한번 살아보나 했던 잠시의 기대는 고이 접고 그동안 '호텔조식은 사랑'이라며 환호했던 조식에도 한동안은 눈도 돌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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