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직 내 몸 어딘가엔 순수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마음 깊은 곳 어딘가는 변하지 않은 채,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다는 걸 눈이 내릴 때마다 새삼 느껴. 나이와 상관없이 하얀 눈이 조용히 내리는 걸 보면 이유 없이 마음이 설레. 그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아, 누군가를 만나 이 풍경을 나누고 싶어 져.
가끔은 이런 내가 철없이 보이는 건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누군가를 의식해 내 감정을 묻어버리고 싶진 않아.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감정을 덮기엔, 겨울은 참 아름다우니까. 눈발이 하늘에서 조용히 내려오면, 나도 모르게 한참 동안 그걸 바라보게 돼. 현실이 멈춘 것처럼, 세상이 잠시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지.
그러다 문득, 두툼한 옷을 입고 눈 속을 걷는 내 모습을 발견해. 그 장면이 이상하게 따뜻해서 저절로 미소가 번져. 그런 나를, 너는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아.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 생각해 보면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축복이야.
오늘 같은 날엔 너와 조용한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싶어. 잔잔히 흐르는 음악처럼, 겨울의 고요 속에서 꺼내는 이야기들-지난해의 기억, 어린 날의 꿈, 그리고 지금의 우리–이런 대화들이 커피처럼 마음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하면 좋겠어.
계절을 함께 느끼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참 고맙고 따뜻하지. 눈 내리는 하루는 말보다 더 깊은 위로 같아.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이렇게 잠시 멈춰서 겨울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나에겐 작은 행복이야. 따뜻한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싶은 오늘. 눈은 말없이 내리고, 세상은 조용히 우리들을 위한 풍경이 되어주는 이 순간이 그야말로 큰 선물이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