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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뷰 Apr 11. 2021

테너리? 테너리!

어떤 것을 고집스럽게 한다는 것은 그것을 지켜나가는 과정인가 보다.

페즈에는 약 구천 여개의 골목길을 가지고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독특한 곳이 있다. 이 골목길을 모두 이으면 삼천 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깨나 흥미로운 곳이다. 보통 길을 잃기 위해 오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이니 늘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곳이다. 페즈의 메디나는 메인 골목으로만 다녀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지만 어디 여기까지 와서 남들도 보고 나도 보는 곳만 구경하는 여행객이 어디 있을까. 페즈의 메디나는 마라케시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커서 가이드를 반드시 붙여야만 관광이 가능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호스텔에 요청했지만 호스텔에서는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며 지도 한 장만 달랑 쥐여주는 게 끝이었다. 분명 모로칸도 페즈의 메디나는 어렵다고 말 한 걸 들은 것 같은데 호스텔 주인이 그렇게 말하니 또 그게 믿어졌다.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걸어 다니니 길을 걷는 내내 구석구석 비밀 장소까지 가이드해주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페즈는 미로 같은 메디나도 매력적이지만 내가 이 곳에서 닷새나 머무르는 이유는 테너리 때문이었다. 천년 전 가공방식을 그대로 잇고 있는 곳이 있다니 듣기만 해도 멋있다. 그렇다고 가공방식을 배우는 게 목적도 아니었지만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 내려져 온다는 방식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긴긴 시간을 만나도 여전히 처음 것을 고집한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지. 몇 번이고 직접 보고 싶었다.


나를 데리고 이 곳까지 와준 모로칸은 아버지를 인사시켜줬다.  메디나는 어차피 다 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마라케시에서 진작에 깨달았기에 페즈 메디나를 돌아보는 것은 진작에 포기하고 테너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테너리? 테너리! 


손가락을 가리키며 가죽 공장의 위치를 알려주는 모로칸을 만났다. 그는 자신도 지금 아버지를 만나러 테너리에 가야 한다며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가 가는 테너리는 페즈에서 두 번째로 큰 테너리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는 자기가 어릴 때부터 테너리에서 일을 했었고 자신은 가죽 만지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천년 전 가공방식이라 함은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 수 가공할 뿐 아니라 염색 재료 역시 자연에서 얻는다는 것이다. 비둘기 똥, 소 오줌, 동물 지방과 같은 재료들을 사용해서 가죽에 물을 들였다. 그 때문에 각종 오물이 모여 있는 테너리는 지독한 냄새로 가득했다. 둥근 통에 각각의 재료를 넣고 가죽을 넣었다 빼는 작업을 하는데 통 입구에 발을 걸쳐 작업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긴 장화 하나만 신고서 통 안에 직접 들어가 가죽에 물을 들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뜨거운 해 아래에서 악취는 햇빛만큼이나 강렬했다. 악취를 피하라며 나누어 준 민트 잎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지만 나 보다도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쉽게, 더 예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텐데 여전히 그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 한 명 없었을까. 그런 이가 있다면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고집하며 이렇게 지켜왔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돌아다녔다. 


테너리를 보고 나니 나는 천년 전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공장보다 그 방식을 고집스럽게 지켜가고 있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허리를 숙이고 담갔다 뺐다 하는 그 모습이, 오물을 모아놓은 그 통에 기다란 장화 하나 신고 있는 그 모습이 그렇게 대단해 보였다. 어떤 것을 고집스럽게 한다는 것은 그것을 지켜나가는 과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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