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Feb 11. 2024

그렇게 남편 뒤에 숨어있다고 모를 줄 알아?

어머님은 다 아신다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살림도 똑소리 나게 잘하고, 애도 야무지게 잘 키우고, 남편 보필도 살뜰하게 하고, 애교도 많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며느리 말이다.

고부갈등/ 시누이 시집살이/ 동서지간 알력다툼/ 온갖 옵션은 다 들어가 버무려진 엄마의 맵디 매운맛 시댁버전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래서 언젠가 내가 결혼하게 될 남자 외동아들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면 복잡한 다른 관계들 없이, 시어머니랑 나만 잘 지내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언제나 시어머니께 좋은 말만 하는 상냥한 며느리가 될 것이다.

나는 엄마처럼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과 야망이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먼저 그렇게 나서기도 했다.

우리 엄마랑 너는 너무 다르니까,
내가 중재해 줄게, 나한테 얘기해.라고-


그렇게 꼬박 4년을 지내고서야 이건 애당초 안 되는 거였다는 걸 미련하게도 깨달았다.

남편이 아무리 잘 전달을 해도, 어머님이 보시기엔 평소 아들이 하지 않았던 의견피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 그 당연히 누구 머리에서 나왔겠어, 며느리가 시킨 거겠지.


내가 만약 시어머니라면, 그런 며느리가 결코 사랑스럽거나 현명하다고 여겨지지 않고, 비겁하게 뒤에서 내 아들을 조종한다고 생각이 드실 것 같았다.

나 또한 나이가 점차 들어가다 보니, 보여지는 것 이면의 것이 느껴지는 게 생기기도 했으므로.

세상은 그것을 지혜요 연륜이라 불렀다.

전면으로 나서기로 했다.

나선다고 해서 뭐가 또 대단히 거창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하기로.

나답게 다가가고, 그런 꾸밈없는 나를 혹시라도 사랑해 주시면 참 좋겠다고 바라면서.

더 이상 통역사는 필요 없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통역 능력이 그렇게 탁월한 것 같지도 않으니 이만 물러나시라고_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_


그리고 내가 제일 처음 어머님께 드린 말씀은 이거였다.


저는요 어머니,
가장 친한 친구도 이렇게 자주 안 만나요.
어머님이 매주 오시고.. 사진도 이미
충분히 많이 보내드렸는데 또 제 페북과 카스에 모든 곳에 찾아오셔서
다 댓글을 다시니 너무 숨이 막혀요.


한번 입이 터지니 말이 술술 나왔다.


아범은 남의 집 일 다 쫓아다니느라
자기 자식이 태어나도 돌봐주질 못하니 셋째는 낳지 않겠어요.


딸 같은 며느리는 없어요.
그거 다 모녀사이에서 좋아 보이는 점, 단물만
쏙쏙 빼먹고 싶어 하는 고부들의 허상 같은 거예요. 실제 모녀사이가 얼마나 치열하다고요.
어머님이 딸이 없으셔서 잘 모르시는 거예요.


4년 동안 웃는 낯만 보이던 애가 불쑥불쑥 이런 말들을 해대니, 어머님도 많이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다.

한동안 전화도 하지 않으시고 우리 집에도 오지 않으셨다.

남편이 아이만 데리고 시댁에 다녀오곤 했다.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이 돌던 그 두어 달의 시간이, 무척 조마조마하면서도 한편으론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니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옛날 우리 시어머니처럼 행동하고 있더라고. 안 그러려고 했는데, 살다 보니 잊었나 봐.


그 후에 남편도 나도 느낄 만큼 뭔가 달라지셨다.

나도 어머님과 직접 소통하고 나니까 속이 개운하고 편했다.

남편의 전화 너머로 띄엄띄엄 들려오는 어머님의 높은 목소리를 들으며 뭐라고 하셨을까 맘 졸이는 게 없이, 남편이 내게 와서 하는 말이 진실일까, 어머님의 워딩은 뭐였을까 지레 짐작하고 상상하는 일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님 말씀의 전체 맥락을 들으니 이해도 더 잘 되고 경상도 억양 공포증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묻는다. 대체 올림픽 경기도 아니고, 며느리가 시댁에서 점수를 왜 따야 하느냐고.

감히 대답하고 싶다. 이건 점수를 따고, 누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고.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아기를 낳자마자 모성애가 드는 엄마가 실상은 많지 않다. 아이를 길러가면서 정이 들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시댁식구도 그런 것 같다.




#며느라기

#인생은 오늘도 익어갑니다







즐겁게 읽으셨다면 아래의 하트(라이킷) 버튼을 꾸욱 눌러주세요! 브런치는 조회수나 좋아요로 수익이 생기는 구조가 아니라서, 하트라도 많이 눌러주시면 작가가 다음 글을 창작하는 데에 기부니 조크등요♡

https://brunch.co.kr/@sidebyddun/7

https://brunch.co.kr/@sidebyddun/57




매거진의 이전글 초심을 잃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