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둘 Aug 11. 2023

김만봉 가출 30일 전


송주대학병원 일층에 위치한 신경과 외래에는 다섯 개의 진료실이 있었다. 그 진료실들을 마주한 대기실에는 촘촘하게 의자가 놓여있었고 그 의자들은 진료를 받으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보호자들로 가득 차 북적거렸다. 만봉은 희수와 함께 3번 진료실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다음 진료 순서를 알리는 모니터가 진료실 문 옆에서 깜빡이며 환자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만봉은 화면 제일 위에 있는 ‘김0봉’이라는 글자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물었다.

“저기 김영봉이라고 써진 게 혹시 내 이름이냐?”

“와! 우리 아빠 눈도 좋아, 저 글씨가 보여?”

만봉은 희수의 물음에 낮게 신음을 뱉고 말했다. 

“그런데 왜 김만봉이 아니라 김영봉이야?”

“응, 그건 김영봉이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한 글자를 가린 거야.”

자신의 이름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만봉은 그게 희수의 잘못이기라도 하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할 일 없이 멀쩡한 이름을 가리긴 왜 가려!”

만봉은 혀를 쯧쯧 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앙상한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두툼한 바지는 흘러내리지 않게 명치 바로 아래에 벨트로 꽉 묶어두었고 그 벨트를 기준으로 등은 안쪽을 향해 구부러져 있었다. 마치 뜨거운 천일염 위에서 붉게 익은 새우의 등처럼. 

만봉은 빈틈없이 묶인 바지를 가슴언저리까지 한 번 더 추켜올리고 뒷짐을 진 채 진료실 앞에 앉아있는 간호사에게로 다가갔다. 주변을 한 번 살핀 후 만봉은 구부정한 어깨를 간호사를 향해 기울였다.

“여보쇼!”

간호사가 앞에 놓인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우스를 딸깍이며 말했다.

“네! 무슨 일이세요?”

“내 이름은 김영봉이 아니라 김만봉이올시다.”

“네?”

간호사는 여전히 시선을 모니터에 둔 채 눈만 더 크게 뜨며 대꾸했다. 만봉은 고개를 들이밀어 간호사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이름을 읽었다.

“성,혜,은!”

그제야 간호사는 고개를 들어 만봉을 보았다. 생각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는 노인의 얼굴에 간호사는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빠르게 몸을 뒤로 빼는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왜 그러세요?”

동그란 얼굴에 고양이처럼 위로 치솟은 눈이 전혀 조화롭지 않다고 만봉은 간호사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젊은 양반이 귀를 먹은 거요? 방금 말했잖소, 내 이름은 김영봉이 아니라......”

“아빠! 좀!”

희수가 다가와 만봉의 팔을 잡아끌어 다시 의자에 앉혔다.

“왜 그래? 나 말하고 있는데!”

“간호사들도 바빠. 좀 가만히 계세요.”

그때 미간을 찌푸린 고양이 눈매의 간호사가 소리쳤다.

“김만봉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만봉은 그 말에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음! 내 이름을 제대로 알긴 아는구만.”

만봉은 간호사를 향해 헛기침을 한 후 진료실로 들어섰다. 진료실 안에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의사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만봉은 의사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앉아 모자를 벗고, 모자 때문에 헝클어진 머리를 오른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리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의사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고개를 돌려 만봉과 시선을 맞추었다.

“어르신! 그동안 잘 지내셨죠?”

“늙은이가 잘 지내서 뭐 해! 얼른 죽어야 하는 건데.”

만봉은 아직 살아있는 게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듯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긴 왜 죽습니까? 아직 정정하신데요.”

“정정은 무슨....”

말을 뱉고 난 만봉은 의사에게 가졌던 호기심을 금세 잃고 진료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만봉을 바라보던 의사가 시선을 희수에게로 돌렸다.

“김만봉님 헛것을 본다는 건 좀 어떻습니까?”

“그 후로는 괜찮으셨어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봉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김만봉님 지난번 검사하신 결과가 염려했던 대로 인지기능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옵니다.”

희수는 만봉에게는 닿지 않을 작은 소리로 의사를 향해 되물었다.

“그럼 예상했던 대로 치매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김만봉님은 치매 중에서도 루이소체 치매에 가깝습니다.”

“그게 뭔가요?”

“흔히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와는 다르게 루이소체 치매의 가장 큰 특징은 김만봉님의 경우처럼 환시를 본다는 겁니다. 그것도 제법 구체적인 모습의 환시를요. 그게 사람의 모습일 수도 있고 때로는 동물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였지만 막상 의사의 입으로 듣고 나니 희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행히 초기라 약을 잘 드시면 진행속도를 어느 정도는 늦출 수 있으니 당분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희수는 고개를 돌려 멀뚱히 앉아있는 만봉을 보았다. 만봉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진료가 지루해진 건지 아니면 자신의 병명 따위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길게 하품을 하고 나서 자신의 눈앞에 있는 모형 뇌를  들여다보았다.


일 년 전 아내가 폐암으로 죽은 뒤 만봉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늙어갔다. 몸도, 마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희수는 핸들을 잡은 채 룸미러로 뒷자리에 앉은 만봉을 보았다. 만봉은 어디를 향한 건지 알 수 없는 시선을 창밖 어디쯤에 두고 있었다.

“아빠!”

만봉은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려 희수를 보았다.

“지난번에 봤다던 아줌마는 이제 안 보여?”

“누구?”

“아빠가 그랬잖아, 예쁜 아줌마가 집안으로 몰래 들어왔다고.”

“내가 언제 그랬어?”

“아줌마가 주방에 있으니 누군지 물어보라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만봉은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아빠!”

“왜 자꾸 불러?”

만봉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내 이름이 뭔지는 알지?”

“기집애가 별소리를 다해.”

“나 은수인 거 알아?”

“네가 왜 은수야? 희수지!”

만봉이 희수를 향해 또다시 소리를 쳤다.

“오! 우리 아빠 똑똑하네.”

“너는 내가 뭐 치매라도 걸렸을까 봐 그러냐? 아까 의사가 혹시 나더러 치매라고 하더냐?”

“아니! 우리 아빠가 그런 병에 걸렸을 리가 없잖아.”

만봉이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옮기며 중얼거렸다.

“내가 빨리 죽어야 하는 건데......”

“뭐?”

“........”

“아빠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운전이나 똑바로 해!”

룸미러로 보이는 만봉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희수는 일 년 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온몸에 퍼져있는 암세포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던 엄마는 희수의 손을 꼭 쥐고 말했었다.

“희수야! 이제 그만 나 좀 보내주면 안 될까?”

“엄마!”

“너무 아파! 그러니 제발 이 고통을 끝낼 수 있게 나 좀 죽여줘.”

엄마에게도 희수에게도 그리고 만봉에게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아픈 시간들이었다. 그날 밤 그동안 넘치도록 맞았던 마약성 진통제를 연거푸 맞고 편안한 모습으로 잠이 들었던 엄마는 다음 날 아침에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아빠! 이제 우리 집 가서 같이 살까?”

“쓸데없는 소리! 내가 내 집 두고 뭐 하러 너희 집을 가?”

“아빠 혼자 밥 해 먹기도 힘들고 또......”

“시끄러워!”

아빠는 엄마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엄마의 몸에 퍼진 암세포는 자기와 살며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그러니 따지고 들자면 엄마가 아니라 자신이 죽어야 했다며, 자신을 향한 자책인 듯, 엄마를 향한 원망인 듯 늘 중얼거렸다. 어느 날은 믿지도 않는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여태 자신은 데려가지 않는 거냐고.......     


집에 들어서자 실내임에도 한기가 돌았다. 희수는 서둘러 보일러를 가동하고 작은 담요를 꺼내와 소파에 앉은 만봉의 무릎 위를 덮어주었다. 만봉은 긴 여행이라도 끝내고 온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만봉은 그런  얼굴로 창밖을 보는 일이 잦았는데 마치 그곳에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이라도 있는 듯 동경하는 눈치였고, 어떻게 하면 그곳에 갈 수 있는지 방법을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만봉은 힘없이 소파에 드러누웠다. 희수는 만봉의 곁에 앉았다. 피곤했던지 만봉은 이내 눈을 감고 낮게 코를 골기 시작했다. 희수는 아빠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외로움이 피곤처럼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엄마가 죽은 후 희수는 한동안 아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아빠의 얼굴을 덮고 있을 지독한 외로움을 정면으로 보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건 가슴 아린 슬픔이기도 했고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기도 했다. 

잠이 든 아빠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졌다. 희수의 훌쩍이는 소리에 만봉이 놀란 듯 눈을 뜨고 희수를 보았다.

“뭐야? 너 우는 게야?”

희수는 빠르게 눈가를 훔쳐냈다. 

“아빠! 안 되겠어, 우리 집 가자!”

“또 그 소리냐? 안 간다니까.”

“고집부리지 말고 제발 내 말 좀 들어.”

“시끄러워! 피곤하구나, 넌 그만 집에 가봐! 강서방 퇴근할 시간 됐겠다.”

만봉은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도 아내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만봉은 그렇게 침대에 등을 돌리고 누워버리곤 했다. 그러면 대화는 항상 거기서 끝이 났다.  희수는 만봉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지금껏 그 누구도 만봉을 설득하는 일에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일 다시 올게!”

희수는 만봉이 덮고 있는 이불을 다시 한번 매만진 후 무거운 한숨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있던 만봉은 희수가 나가며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혼자 남은 집안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없어진 것처럼 고요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집이 낯설어 만봉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내가 죽은 후로는 문득문득 집이 낯설었고 가끔은 무서웠다. 외로움이 켜켜이 쌓이면 어느 순간 두려움으로 변하곤 하는데 만봉은 자주 그런 두려움에 빠져들었다. 그럴 때면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만봉이 손으로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던 그때 귓가에 ‘윙’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커져 귓가에 울리던 소리가 곧 머릿속을 쪼아대기 시작했다. 만봉은 오른쪽 손바닥을 펴서 뒤통수를 두 번 탁탁 치고 거실로 나가 TV를 켰다. 집안에 무엇이든 소음을 만들어야 했다. 만봉은 집안이 조용한 것 보다는 시끄러운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TV 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을 채우고 나면 혼자 남겨졌다는 두려움을 꽤나 많이 잊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9번에 맞춰뒀던 채널이 다른 채널로 바뀌어있었다. 좀 전에 희수가 앉아서 리모컨을 만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꾸 쓸데없이 다른 데를 틀어놓고 그래!”

만봉은 투덜대며 채널을 돌리려다 말고 갑자기 어느 화면에 시선이 멈췄다. 홀린 듯 눈을 크게 뜨고 TV를 향해 고개를 쭉 뺐다. 화면에는 듬직한 남자들이 모여 앉아 뚝배기에 담긴 국밥을 쉬지 않고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지!”

남자들이 음식을 입안에 떠 넣을 때마다 만봉은 고개를 끄덕이며 추임새를 넣었다. 리모컨을 손에 들고 TV앞에 서서 입을 벌린 채 한참을 들여다보는 사이 식사를 마친 남자들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얼굴을 적시고 있는 땀을 닦아냈다.

“젊은 사람들이 기껏 저거 먹고 무슨 배가 부르다고......”

만봉은 혀를 쯧쯧 찼다. 그러고 나자 갑자기 배가 고팠다. 리모컨을 탁자에 내려놓고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희수가 만든 반찬들이 알록달록한 통에 이름표가 붙은 채 담겨있었다. 만봉은 그 통들을 꺼내고 밥통에서 밥도 한 그릇 가득 퍼서 TV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화면 속 땀을 닦던 남자들은 새로운 국밥이 나오자 마치 처음 음식을 접한 사람들처럼 다시 허겁지겁 퍼먹기 시작했다. 만봉은 남자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있기라도 하듯이 지지 않으려고 밥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느덧 밥그릇의 바닥이 드러나자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다시 밥을 가득 퍼서 돌아왔다. 하지만 웬일인지 밥을 퍼 온 잠깐 사이에 프로그램이 끝이 났고 함께 밥을 먹던 남자들은 모두 화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만봉은 아쉬운 마음에 서둘러 리모컨을 찾아서 채널을 이곳저곳 돌려보았지만 조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밥을 먹던 남자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진 만봉은 숟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짧게 숨을 내뱉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소분된 약들이 플라스틱 통에 담겨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아빠! 아침이라고 써진 건 아침밥 드시고 먹으면 되고, 저녁이라고 써진 이 약은 저녁 드시고 먹으면 돼! 알았지?”

“그게 무슨 약인데?”

“음...... 아빠 치매 예방하는 약이랑 뼈 튼튼해지는 약!”

“왜? 의사가 나 치매래?”

“아니! 치매에 절대 걸리지 않게 해주는 약이라니까! 그러니까 잘 챙겨 먹어, 알았지?”

희수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쟁쟁거렸다. 만봉은 약통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뭘 얼마나 살겠다고.......”

탁자 아래로 떨어진 약통이 데굴데굴 현관까지 굴러갔다. 만봉은 일어나서 약통을 주울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에잇, 귀찮아.”

대신 소파에 앉은 채 현관바닥에 놓여있는 약통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약통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때였다. 현관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예닐곱 살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