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일기] 어쩌면 자연임신 준비

과배란과 배주사를 곁들인

by 스크류바

새벽 다섯 시,

밤새도록 지속된 미세한 복부의 통증과 가스가 가득 찬 불편감으로 인해 절로 눈이 떠졌다.

출근 준비까지는 세 시간, 다시 잠에 들어보려고 하는데 영 정신이 맑았다.

정신이 맑으니 나를 거슬리게 하는 통증들의 온몸의 감각이 반응한다. 눈물이 찔끔 흐른다.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가 이 불편감을 증폭시킨다.


남편은 출장이 있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굳이 굳이 이를 닦고 세수를 하면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졸린 눈의 남편이 나에게 달려와 무슨 문제가 있는지 걱정스레 묻는다.

"몸이 아파서 밤에 한숨도 못 잤어" 볼멘소리로 대답한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지만 애써 참아본다.

남편은 이런 내가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못된 내가 되는 것 같아 이런 통증마저 견뎌내지 못하는 옹졸한 인격체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몰려온다.


심란(心亂)한 표정으로 출근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이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베갯잇이 축축해졌다.


나는 주변에 종종 난임(難姙)은 여성 존재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임신이 여자 혼자 하는 일이냐고 잘못된 인식이라고 발끈할 수 있으나, 난임을 겪어본 여성들은 안다.

난임 시술의 90% 이상은 여성이 담당한다. 과배란 약을 복용하는 것, 과배란 주사를 비롯한 수십 가지의 셀프주사를 놓아야 하는 것, 수면마취를 통해 난자를 채취당하는 과정 모두 여성이 오롯이 감내해야 한다.


굴욕 의자라 불리는 산부인과 의자에 앉을 때, 인간적 수치스러움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고통이 나를 압도하는 그 순간을 마주할 때, '존재의 근간'이 흔들린 다는 이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줄줄 흐르던 눈물이 차고 넘쳐 마침내는 끄억 끄억 오열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과배란 주사까지 맞았는데 이전보다 난자수가 더 적게 나오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시험관과 직장을 병행할 수는 있을까, 난임 휴직이 안 돼서 직장을 그만뒀는데 임신도 안되면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온갖 걱정들이 나를 뒤덮는다. 이렇게 또 내 근간이 흔들린다.

새어 나오는 울음을 자꾸 틀어막으니 가슴 쪽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삼킬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하면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우나보다.


팥주머니를 데워 배 위에 덮으니 온기가 몸에 퍼진다.

몸이 추워서 그랬나?라고 짧게 생각하며 스르륵 잠이 든다. 단순한 나에게 잠은 마치 마법과 같다.

내 모든 절망의 회로를 차단해 준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라 후다닥 몸을 일으킨다.

새벽녘 절망의 감정이 가시고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처럼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힘이 생긴다.

나를 뒤덮었던 걱정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간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험관을 하게 된다면? 하면 된다. 필요하다면 난임 휴직을 신청하면 된다.

난임 휴직이 거절되면? 난임 휴가를 신청해서 최대한 해보고 안되면 퇴직하면 된다.

그랬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재취업하면 된다. 쉬는 기간에 필요한 공부를 병행하면 되고, 지금의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해도, 세상은 넓고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더불어 당장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존재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향하면 된다.


"용기란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용기란 아무 힘이 없을 때 계속하는 것이다(Theodore Roosevelt)"


난임 시술 기간에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바닥난 스스로를 마주한다.


아직 끝을 모르는 이 순례의 길에 초입에 서서,

나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위로가 필요한 한 여인에게,

용기 있는 그 발걸음을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당신이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