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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Nov 16. 2021

혼술 (4)

 데이트

 주말을 맞은 현주는 정원을 만날 생각에 들떴다. 정원이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한 달을 못 만났기 때문이다. 현주는 오랜만에 한강 나들이를 가려고 샌드위치와 치즈, 도수가 약한 스파클링 와인까지 들고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카페까지 가는 길은 지하철로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짐의 무게 때문인지 힘에 부쳤다. 약속시간을 겨우 맞춰 도착한 현주의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카페에 정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늦을 수도 있을 거 같다고 보낸 카톡도 아직 읽지 않은 상태였다. 현주는 시원한 커피를 주문하고는 정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뚜 하는 신호음이 들리더니 이윽고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음성이 들렸다. 현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몇 번을 걸었는지 횟수마저 잊어버린 채로 전화를 걸었고 주문한 커피의 얼음이 절반 정도 녹았을 때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에 덜 깬 정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이 몇 시야?

 4시야.

 뭐 4시?

 그래. 만나기로 한 지 2시간이나 지났어.

 미안해.

 이제 일어난 거야?

 응. 어제도 늦게까지 야근했거든.


 현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힘들었겠다. 라고 위로했다. 얼굴에는 허탈함과 허무함이 가득했다. 현주는 바로 준비하고 나가겠다는 정원의 말에 괜찮으니 푹 쉬라고 말했다. 정원은 미안해. 고마워. 라는 말을 반복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긴장이 풀린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현주는 멍하니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생겨버린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현주는 애꿎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분노

 연수는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으며 미친 거 아니야? 라고 말했다. 현주에게 얘기를 들은 직후부터 차오른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현주는 자신보다 더 화를 내는 그녀의 태도가 반가운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너무 화내지 마.

 너는 화도 안 나?

 화는 나는데 괜히 싸울까 봐…….

 네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싸울 걸 걱정해.

 내가 걱정이 좀 많거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런가?

 그럼.

 헤헤. 좋다.

 뭐가 좋아? 바보 같이.

 덕분에 이렇게 너 만났잖아. 너 만나서 실컷 얘기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졌어. 고마워.

 나야말로. 덕분에 주말에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연수는 현주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현주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녀는 연수를 꼭 안으며 헤헤 웃었다. 그러다 옆에 놓아둔 짐을 발견하고는 중얼거렸다.


 이건 어떡하지?


 정원과 먹으려던 음식과 와인이었다. 그녀는 짐을 뒤적이다 샌드위치를 꺼냈다. 훈제 연어와 아보카도가 들어간 샌드위치였다. 11월의 기온은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였지만 음식의 부패를 막지 못한다는 걸 현주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코를 가까이 대어 샌드위치의 냄새를 맡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과는 다른 시큼함이 코를 간지럽혔다. 현주의 얼굴이 자연스레 구겨졌다.


 쉬었어?

 응, 쉬었어.

 벌써 쉬었어?

 그러니까. 아침까지만 해도 로맨틱했던 것이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불쾌감을 준다. 먹음직스러웠던 것이 쓰레기가 됐어.


 현주의 머릿속으로 나쁜 생각이 떠올랐다. 단순히 오늘의 만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원의 행동은 언젠가부터 건조해졌고 자신을 향해 반짝이던 눈은 언젠가부터 다른 곳을 향해 반짝이는 걸 현주는 알고 있었다. 단지 항상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사랑한다 말하면 무뚝뚝하지만 ‘나도.’ 라고 말해주었기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쉬어버린 샌드위치를 보니 정원과의 관계도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일었다.






















정확히 한 달만이네요.

그동안 저는 갑작스러운 이사를 하게 됐고 살이 조금 붙었고 건강을 조금 잃었답니다.

계획했던 모든 것이 어긋나버렸고 패닉의 연속이라 중심을 잡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어요.

연고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같은 서울이긴 하지만 이전에 살던 곳과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곳입니다. 물론 이전에 살던 곳도 연고는 없는 외딴곳이었지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과 정도 들고 동네도 많이 익숙해졌는지라 이사하던 날은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사람에게도 그러하지만 공간에도 낯을 가리는 터라 아직 새로운 집에 적응은커녕 잠을 자는 것도 어색하답니다. 어제도 잠을 설쳤어요. 아무쪼록 새로운 곳에 빨리 적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건강은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건강 조심하고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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