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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Dec 05. 2021

혼술 (5)

 시금하다

 연수는 현주의 손에 들린 샌드위치를 낚아챘다. 매가 먹이를 향해 돌진하듯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포장지를 찢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눅눅해진 빵과 물러진 내용물에서는 아삭거리는 소리 대신 우물우물 소리가 났다.


 미쳤어? 그걸 왜 먹어?

 맛있는데? 아직 안 쉬었어.

 무슨 소리야. 냄새부터 이미 쉬었는데.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하잖아.

 시큼하다니, 이건 시금하다고 하는 거야.

 시금하다고?

 그래, 쉰 게 아니라 신데? 맛있게 익었어.     


 연수는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듯 한입 더 베어 물었다. 그리고 현주를 향해 말했다.


 2차 가자.


 계산서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입에서는 비릿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다.


 홈술

 기다란 검은색 장 스탠드, 검은색 좌식 테이블과 그 밑에 깔린 진회색의 러그, 하얀색 벽장. 연수의 집은 그녀의 성격처럼 깔끔하고 단순했다. 필요한 것만 갖추고 있는, 필요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 같았다. 현주는 테이블 앞에 앉은 채 큰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었지만 입에서는 우와. 감탄사도 흘러나왔다.


 뭐 특별한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봐?


 연수는 주방에서 가져온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현주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신기해서.

 신기한 것도 많다. 아무것도 없는 집인데 뭘.

 그게 신기해. 나는 뭘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집에 물건이 많거든. 가끔 나 자신한테 화가 날 때도 있을 정도야. 근데 넌 나랑 완전 반대다.

 필요 없는 것들은 바로 정리하는 편이 좋더라고. 이도 저도 아닌 마음 때문에 정리하지 못하고 방치하다 결국 삭거나 썩어버리더라고.

 삭거나 썩는다…… 사람도 똑같으려나?

 뭐래?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와인을 한잔씩 비우니 현주가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손바닥 두 개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참치회였다. 현주는 연수의 집에 가는 길에 선물을 사겠다고 바득바득 우겼지만 괜찮다고 빠득빠득 우기는 그녀의 성격을 이기지 못하고 음식을 사는 걸로 타협을 한 상태였다. 그마저도 배가 부르니 간단한 걸 시키라는 연수의 말에 주문한 것이 양은 적지만 가격은 비싼 참치회였다.


 주소 알려주지 말 걸.

 현주는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입에 참치회 한 점을 넣었다.


 진심

 술자리는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연수는 시간이 늦었으니 자고 가라고 했지만 현주는 한사코 거절을 하며 어기적어기적 밖을 나섰다. 그녀는 술을 많이 마시면 이를 심하게 갈고는 했는데 그 모습을 연수에게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현주는 자신을 배웅하려 나온 연수와 건물 계단에 앉아 택시를 불렀다. 하지만 야심한 주말인지라 택시는 쉬이 잡히지 않았다. 연수는 현주에게 자고 갈 것을 몇 번 더 권하다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리고 나온 그녀의 말에 현주는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 너 좋아해.


 현주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헛기침을 하고 머리를 매만졌지만 당황스러운 기색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게 친구 사이에서 할법한 말이라고 치부하려 했지만 연수의 진지한 얼굴로 보아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그러니까 자신이 정원에게 하는 말과 가깝다는 게 느껴졌다. 연수는 현주의 얼굴을 보고는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 모습이 현주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사과가 정원과 만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동성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연수는 아무런 말이 없는 현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따스한 손길에 현주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연수는 현주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현주에 대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연수는 현주의 볼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아이와 부모 간에 하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현주는 기분이 이상함을 느꼈다. 새벽 늦게까지 마신 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연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수의 입술이 이번에는 자신의 입술을 향해 다가왔다. 현주는 거부하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벌써 12월입니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시간만 죽이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가네요.


날이 추워지면 코를 훌쩍이는 일이 잦아져서 힘이 들어요. 코가 꽉 막히고 하루 종일 흐르지는 않아서 비염은 아니라 생각하는데 이거 참.. 불편합니다. 병원을 가기에는 증상이 너무 경미해서 차일피일 미루며 몇 해를 보내고 있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눈치가 보여요. 특히 카페 같은 곳에서요.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있답니다.


새로운 집에는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매일 잠을 설치기 일수입니다. 덕분에 멍한 채로 허공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일이 늘었습니다.


요즘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머릿속에 복잡한 고민을 잠시 잊을 수 있고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어둡고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킬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예쁜 조명과 트리, 캐롤이 흘러나와서 기분이 들뜨는 요즘입니다. 여름에 듣는 캐롤도 좋지만 역시 캐롤은 품이 큰 코트에 안겨 코를 훌쩍거리며 듣는 게 제일입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Chet baker -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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