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비범한 날들을 꿈꾼다
수요일에 태어났을 것만 같은 웬즈데이(제나 오르테가)의 생일은 13일의 금요일이다. 그녀의 생일만 생뚱맞은 것이 아니다. 두 갈래로 땋은 머리는 어릴 적 '말괄량이 삐삐'와 공포의 처키 누나를 연상시킨다. 색깔 알레르기가 있어 온통 흑백으로 덮어 버린 그녀는 총 천연색 속의 작은 까만 점이다.
공립학교는 웬즈데이를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평범했던 것일까? 동생을 괴롭히며 락커에 가두어 놓은 녀석들에게 참 교육을 선사한다. 수구를 즐기던 녀석들의 수영장에 식인 물고기 피라니아를 풀어놓은 것이다. 당연 전학조치가 이루어지고 그녀가 향한 곳은 "네버모어(Nevermore)". 부모가 동문이 되는 그곳은 웬즈데이를 반겨 맞아 줄 수 있을까. 그녀는 아담스 가(패밀리)의 장녀 웬즈데이 아담스다.
'팀 버튼이 팀 버튼 한 작품'이라는 설명으로 많은 것이 갈음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가 두 번째 시즌 스트리밍을 앞두고 있다 . 드라마는 고딕 호러물의 고전 <아담스 패밀리>의 스핀오프로 제작되었다. 지난 1991년 영화감독과 2010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무산에 대한 회한이 남아서였을까. 팀 버튼은 제작은 물론 에피소드 일부도 직접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아담스 패밀리>는 역사가 제법 오래된 콘텐츠다. 1930년대 미국 만화가 찰스 아담스의 한 칸짜리 만화가 시대를 거치며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으로 그 세계관이 확장되어 나갔다. 죽음을 동경하고 고통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온통 침울한 네거티브가 그들의 가풍이고 그 기괴하고 오싹한 일상은 반전의 웃음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그 콘텐츠 오마주가 스며들어 <안녕 프란체스카> 같은 유명 시트콤도 사랑을 받았다.
아담스 패밀리의 미덕은 비범함에 있다. 그 비범함이 우리가 생각하는 쫄쫄이 팬티의 슈퍼히어로의 반짝이는 공공선은 아니다. 그들에 비해 평범해 보이는 빌런들을 더 악독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응징하는 통쾌감을 준다. 이를 권선징악이라고 해도 좋을지, 이이제이라고 불러야 할지 도무지 판단 서지 않는 틈에 어느새 독자와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드라마 <웬즈데이>는 그 아담스 패밀리의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전면에 내 세운다. 바로 장녀 웬즈데이 아담스가 타이틀 롤이다. 거인 같은 윔스 교장(그윈돌린 크리스티)의 반토막만 한 작은 체구의 주인공은 비범한 존재다. 남들과 다른 취향, 가치관, 성격뿐 아니라 월등한 지적 능력과 학문적 지식, 그리고 환영으로 과거를 보는 초인적인 능력까지 그녀는 남다르다. 그 남다름은 평범이들은 근접할 수 없는 괴짜(freak)들의 학교 네버모어에서도 두드러진다.
얼핏 보면 핼로윈데이 같은 일상이 계속되는 네버모어는 학교 밖 마을 사람들과 늘 갈등 중이다. 이 갈등과 혐오는 오랜 역사의 주름살이기도 하다. 네버모어의 라이칸, 뱀파이어, 고르곤, 사이렌 같은 고전 속의 괴물들은 물론, 심령술사와 동성 결혼 자녀, 그리고 웬즈데이 같은 뼛속까지 소시오와 사이코 패스를 오가는 평범 부적응자들은 대부분 고상하고 부자들이다. 이들의 기여로 마을의 경제가 유지된다. 애증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다크 히어로들의 엄중함도 없다. 내려 먹는 커피는 무의미한 인생을 보내는 자기 혐오자들의 것이라는 평범의 일상을 조롱하기 일쑤다. 알록달록 염색을 한 룸메와 작별하며 무지개를 볼 때마다 기억하겠노라 뭉클(?)한 고백을 한다.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은 평범함의 강요이고 누군가 선 그어 놓은 범주화에 순응하라는 일반론뿐이다. 비범하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의 괴팍함은 스스로 '자신'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패가 된다. 그들에게 평범은 뱀파이어에게 주는 마늘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괴짜에 대한 예찬은 팀 버튼 그 자체로 보인다. 어렸을 때 그의 유년 환경은 평범함과의 전쟁이었다. 혼자 공동묘지에서 지내고,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학교 때는 왕따였고, 여학생들이 피해 다니는 그저 찌질이 괴짜였다고 한다. 미국 대중 미술의 사관학교 칼 아츠를 나와 다들 그러듯이 디즈니에 입사했다가 얼마 다니지 않고 뛰쳐나온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팀 버튼에게 안데르센식 동화는 도무지 매칭이 되지 않지만 사실 오리지널에 충실했는지도 모른다. 동화라는 게 사실 어른들에게 교훈을 주는 잔혹동화가 그 본모습이니까. 신데렐라와 백설공주의 그로테스크한 유혈 낭자의 묘사는 팀 버튼의 세계에 그대로 들어와 있는 것 아닐까. 크리스마스에 악몽을 선물하는 괴팍한 예술가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 주는 유일한 사람 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즐거움(weal) 보다 비통함(woe)이 더 가득 담긴 항아리이니까.
누구나 비범한 날들을 꿈꾼다. 오늘의 비루하고 답답한 날이 아닌 상상 위의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날들 말이다. 이런 날을 꿈꾸는 이유는 실현 가능성이 실낱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그런 날을 만들어 놓기를 바란다. 그들을 히어로라고 부르면서 백마 탄 왕자 마냥 기다려 본다. 이 또한 꿈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슈퍼히어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사항의 낙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들 모두는 서로가 다른 독특한 존재다. 일상에서 가까이 지내다가 화성과 금성에서 방금 도착한 생물제를 대하듯 이해가지 않는 순간을 마주한다. 가족, 친구, 이웃할 것 없이 그들은 나와 같을 순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모두 독특한 괴짜이고 누구나 비범한 존재가 된다. 이 괴짜라는 다크 히어로는 일상 속에 늘 존재하는 현실이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엄청 나이스 해 보이지 않아도 결국 모두의 이익과 만족을 이루어 낸다. 우리는 모두 괴짜이고 가혹한 이 세상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분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서 많은 오마주와 상호 텍스트와 비유가 쏟아진다. 가고일 늘어선 고딕 건물에서 팀 버튼의 손길을 금방 만날 수 있다. 1992년 영화 <아담스 패밀리 2>의 웬즈데이 역의 크리스티나 차이를 만나게 되고, 캐서린 제타 존스는 <안녕 프란체스카>의 심혜진의 등장과 비슷한 작은 진동을 준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의 고민들이 웬즈데이를 통해 투영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뱀파이어와 라이칸 등 고지능, 고능력의 돌연변이들의 모습을 보며, 엑스맨 시리즈를 견주어 보기도 했고, 트럼프가 참 싫어하겠다는 농스런 진심도 들었다. 단 해리포터 시리즈에 팀 버튼의 양념을 쳤다는 해괴한 비평만 거슬리는 '재미있는'이야기 <웬즈데이>를 추천해 본다. 넷플릭스에서 곧 시즌2를 스트리밍할 계획이라니 기대와 함께 정주를 고민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그럴 것 같은 '평범'이라는 악마와 매일 겨루기 하는 마음속의 괴짜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