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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Oct 23. 2024

[늦은 아침 생각] 기다리기로 합니다

웅이가 여니에게

인간이 가진 힘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가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아는 능력에 달려 있다.

-어디선가 끄적인-
피도 데워서 주네요

위기에 닥쳐있거나 오늘을 벗어나고픈 인간에게 새로움이라는 유혹은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비범한 인간이더라도 새로움을 완성하는 절대적인 한 가지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법입니다. 바로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대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기다림.


어제 병원에서 채혈 검사를 하고 진료를 보았습니다. 혈소판은 여전히 정상 하한선의 십 분의 일도 안되고 적혈구 수치인 헤모글로빈도 성인 남성의 40%까지 떨어져 결국 4시간 넘게 수혈과 백혈구 촉진제만 맞고 귀가 했습니다. 아직 3차 항암은 다음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진단 당시 이미 골수 기능이 10%로 척박한 상태가 되어 혈구를 만드는 조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되었습니다. 시간을 조금 더 가져 신약을 투여할 상태가 되거나 아니면 결국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의 길로 가는 50대 50의 상황이라 합니다. 길면 1년 이내에 결정되겠지요.


솔직히 두려움과 황망함이 가득했습니다. 조혈모 이식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흡족한 수준이 아니고, 생착실패와 심각한 숙주반응으로 이식 후의 삶의 질은 이전과 너무 달라지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긴 밤을 새워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가장 잘하는 일이 남았으니까요. 기다림.


인간의 가장 강력한 힘은 기다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비범한 타인들의 몫이라면 일상을 버티는 범인에게 주어진 힘은 기다림에 있겠지요. 이전 별명 곰탱이가 괜히 얻어진 것은 아니겠지요.


솔직히 힘들지 않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어진 자리에서 기다리는 일은 잘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격려와 응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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