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가 여니에게
‘구성원(構成員)’이라 함은 어느 조직이나 단체를 이루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한자대로 풀이한다면 ‘얽어서 (조직을) 완성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기업은 사용자, 노동자, 그리고 투자자 혹은 소비자 등이 해당됩니다. 학교는 어떨까요? 아마 학생, 교수(교사), 교직원 등이 해당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교의 구성원은 모두 학교의 사용자이지 주인이 되는 것이지요.
영어로 풀어보면 더 와닿습니다. 쉬운 영어로 ‘Member’라고 말합니다. member의 어원은 ‘기억하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피아의 구분이 곧 생존으로 연결되는 야생의 원시시대부터 나의 편, 즉 우리 조직의 구성원인 member는 꼭 기억되어야 하는 사람이기에 위원이 시작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다시’ 되새겨 기억한다는 단어가 ‘re+member’가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세상이 각박합니다. 물질은 넘쳐나는데 나는 항상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한정된 재화를 나누어 쓴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처럼 받아들입니다. 내가 쓰고 누리기에도 부족한데 누구에게 나누어 준다 말입니까.
그래서 초등학교 짝꿍과 치기 어린 영토전쟁처럼 선을 주욱 그어대고 맙니다. 그 선을 중심으로 나와 너,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려 애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보일러 안 들어와 추운 도서관에 손불면 앉아 있는 학생들이나 식대조차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인 학교 노동자 모두 member가 아닐까요? 아마도 주욱 그어 버린 선위에 아슬아슬 모두 서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면과 면을 맞대어 선을 그어 놓게 한 것은 member들의 진심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정의가 훼손되고 파괴된 세상의 가치 틀 안에서의 정의는 절대로 불의하게 여기어집니다. 그 불의를 인지도 못하고, 부끄럽다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도 혁명은 아직 필요하고 광장은 유효한지 모릅니다.
공공선이란 공동 동등한의 이익이 최대의 효율을 가져다준다는 도덕적이고 정성적인 행동률이 아닙니다. 수학적으로 증명되며 과학적으로 가설설립이 가능한 진실인 것입니다.
그곳을 일터로 사는 노동자들과 일정한 곳에서 노동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플랫폼의 점유자들의 membership이 기한도 길고 무게도 더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의 '점유자'이자 '멤버'입니다.
부당함에 대해서는 부당함을 제공하는 자에게 맞설 용기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멋대로 그어 놓은 선을 지우고 모두 평평하고 단단한 땅 위에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분명 있을 겁니다. 서로를 서로의 구성원으로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