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이가 여니에게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 한강 <소년이 온다> -
한강을 읽고 나서 쉬이 잠들기 힘들었습니다. 글의 파장 때문이라 포장하고 싶지만 새로 시작한 항암제의 기전 효과로 마라톤 마친 뒤의 전신통증 같은 것들이 스며들었습니다. 그중 최고는 두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자발적 백수가 된 지 언 8년. 아직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연일 되는 희망의 연기에 지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은 스스로를 외로움에 가두어 놓곤 합니다. 그래서 그 강박의 시간을 해체하기 위해 읽고 쓰려고 애쓰고 살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글 읽기와 글쓰기는 즐거움인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좋은 글은 좋은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합니다.
가장 좋지 않은 글은 자기 생각이 들어 있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글쓰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초심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새 글쓰기가 '인정받기'위한 수단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이 읽어 주는 나의 문장, 타인이 평가하는 나의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글이 후져지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알지도 못했던 현학적 표현이 늘어나고, 문장의 길이가 신경 쓰이고, 서술어를 단정적으로 쓰다가 추론으로 고치기도 하고, 비판에 글을 내려 버리기도 했습니다.
수년 전 개인사로 크게 넘어지고 나서, 힘든 날에서도 유일한 버팀이 되었던 글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글은 결국 '나의 생각'이고, '나의 말'이었습니다. 생각과 말은 아날로그라 발생 즉시 날아가는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이니, 그것들을 단편이라도 붙잡아 놓는 것이 나의 글이었습니다. 글은 이 처럼 '나의 생각'을 담아 두고 날라 주는 보석 상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노벨상 작가의 커다란 질문을 아주 티끌 같은 비루한 일상의 글쓰기에 빗대어 봅니다. 무엇이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정진. 참 어려운 질문을 품고 답하는 마음으로 읽고 쓰기로 합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