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의 그림자, 꿈의 결을 따라
니콜라이 고골의 「코」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이 품어낸 가장 기묘한 흔적 중 하나로 여겨진다.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연작에 놓인 이 짧은 서사는, 어느 아침 갑작스레 자기 얼굴에서 사라진 코를 찾아 헤매는 8등관 코발료프 소령의 기이한 여정을 통해 현실의 표면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문학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단순한 풍자를 넘어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정수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초기 원고에서 고골은 이 모든 사건을 주인공의 꿈으로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최종본에서는 그 장치를 과감히 지우며 부조리를 하나의 물리적 사실로 끌어올렸다. 그 선택은 세계의 비논리를 침착한 현실의 표면에 밀착시키는 효과를 만들었다.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모든 것은 주인공 코발료프 소령의 꿈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코」의 초판본에서
고골이 제목에 기울인 세심함은 작품의 해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1832~1836년 사이 쓰인 이 소설의 첫 제목은 「코」가 아니라 「꿈」이었고, 러시아어에서 ‘코’의 표기 нос(노스)를 거꾸로 읽으면 ‘꿈’을 뜻하는 сон(손)이 된다. 뒤집힌 단어의 관계는 코와 꿈이 서로를 비춘다는 사실을 함축하며, ‘코의 이야기’와 ‘꿈의 이야기’가 등가의 층위를 이룬다는 암호처럼 작동한다. 이 등가성은 고골의 다른 작품 곳곳에도 흔적을 남긴다.
"코는 볼 수 없으며, 코는 꿈이다. 코는 달에 위치 해있으며, 코는 지구에서 뭉개져 버릴 위험에 처한 존재이다."
- 「광인 일기」, 고골
작품의 말미에서 고골은 ‘현실이 환상보다 더 환상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환상은 독자를 현실로부터 이탈시키기보다, 오히려 현실을 더 생생하게 체감하도록 만든다. 고골의 인물들은 환상을 환상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표면으로 받아들이고, 독자 역시 그들의 머뭇거림에 공명하면서 웃음과 동정이 교차하는 기묘한 감정의 지층에 서게 된다. 「외투」가 공포에 가까운 그로테스크로 환상의 결을 드러냈다면, 「코」는 유머와 풍자, 그리고 인간 내부의 은밀한 욕망을 통해 환상의 윤곽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결국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가"라는 질문을 독자의 손에 조용히 쥐어 주며, 훗날 카프카의 부조리를 예감하게 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고골의 세계를 두고 “고골의 세상에서는 사물이 인간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고 말했는데, 「코」는 그 말의 실체를 가장 선명하게 구현한 작품에 속한다. 한 신체 부위가 주체적 인격체로 분리되어 주인보다 높은 관등을 갖고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세계의 사물화된 질서와 인간 존재의 흔들림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고골의 「코」는 현실의 균열을 그저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데 머물지 않고, 꿈과 신체, 욕망과 사회적 위계가 뒤엉킨 세계의 낯선 진면목을 은근히 비추며 독자의 감각을 오래 흔든다.
코가 말하는 계급의 얼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코」를 제목 그대로 ‘신체의 분리’를 매개로 한 제도·신분 풍자의 정점으로 보는 관점이다. 고골은 당대 러시아 관료제가 인간의 존재를 위계와 관복, 관직이라는 외피로 환원해 버리는 병리를 예리하게 드러냈다. 위계의 계급표가 인간을 목록화하고 서열화하는 시대에, 주인공보다 높은 계급을 가장한 코가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외형과 형식이 실체를 압도하는 사회의 기형적 구조를 과장된 우화처럼 비춘다.
해석의 초점을 깊게 들여다보면, 고골이 단순히 ‘사람은 왜 코로 판단되는가’라는 은유적 질문에 머물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는 외형과 관료적 권위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세밀한 풍자적 디테일로 보여준다. 이때 코는 단순한 신체의 부속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이 외형화된 기표로 기능하며, 그 코에 균열이 생긴다는 것은 곧 그 기표가 담고 있던 세계에 금이 가는 사건으로 다가온다.
"8등관’이라는 직급은 학력으로 받을 수 있는 칭호이나 대개 카프카스 지방 등지에서 이리저리 굴러먹다가 얻게 되는 종류의 직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코」, 고골
코발료프의 절망 역시 신체적 결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코 없는 얼굴로 관청을 드나들 수 없고, 사교계에서 자리 잡지 못하게 된다는 사회적 지위의 위기다. 더욱이 그가 잃어버린 코가 오히려 더 높은 5등관(국가평의원)의 제복을 갖추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사실은 제정 러시아의 관등표 체계가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압도했던 현실을 신랄하게 폭로한다.
비평가 비사리온 벨린스키는 고골의 작품들을 두고 “러시아 현실의 진실을 폭로한다”고 말했는데, 「코」에서 인간은 관등에 의해 정의되며, 관등을 잃는 순간 자신에게 속해야 할 신체 일부조차 통제하기 어려운 무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코가 코발료프의 지시를 거부하며 “당신과 나는 단추가 다르다”고 하는 대사는 계급사회가 생물학적 유대마저 끊어버릴 수 있는 잔혹한 구조임을 드러낸다. 이때 ‘코’는 단순한 후각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체면, 권위, 남성성을 상징하는 기표로 기능한다.
전통적 비평가들도, 현대 독자들도 가장 먼저 포착하는 것은 이 작품이 19세기 러시아 관료제의 허영과 위계, 형식과 실재의 단절을 풍자한다는 점이다. 코가 스스로 관료처럼 걷고, 사람들이 이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장면은 신분이라는 허울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서 작동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국가평의원 복장을 한 코 앞에서, 코발료프가 자신보다 높아진 ‘자기 신체의 일부’에게 예의와 경의를 갖추려 드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사회가 실재보다 형식을 더 중시하는 모습을 참담할 만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코가 돌아오고 주인공이 일상을 회복하는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복원의 순간처럼 보이지만, 많은 평자들은 이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사회의 부조리’를 웃음으로 봉합한 결말로 읽는다. 모순과 허위가 드러났음에도 제도는 건재하고, 사람들은 그 허구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삶을 지속한다. 이 지점이야말로 고골 풍자가 가진 가장 깊은 칼끝이며, 「코」가 지금도 여전히 낯설게, 그리고 섬뜩하게 읽히는 이유다.
사라진 감각의 자리에서
고골의 유머는 언제나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의 경계에서 피어난다. 코의 부재와 의인화라는 ‘실제로는 일어날 리 없는’ 사건을 지나치게 현실적인 관료 절차와 도시의 숨결 속에 배치함으로써, 서사는 일종의 역설적 리얼리즘을 획득한다. 나보코프가 주목한 것도 이 지점이었다. 그는 고골의 후각적 이미지와 비정상적 신체 묘사의 과장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바로 그 과장성이 작품의 미학적 추진력이라고 해석했다. 비현실이 현실적 언어와 세부 묘사에 부딪히는 순간, 독자는 웃음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한다.
코의 부재는 단지 신체에서 떨어져 나간 물리적 조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인이 세계를 감각하던 방식이 허물어진 사건으로 읽힌다. 코발료프가 느끼는 공포와 당황, 그리고 사회적 불안은 단순한 허영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감각적 존재론의 위기다. 클리멘티예프의 시각은 「코」가 시각 중심의 인식이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이전, 인간이 후각이라는 다른 축을 통해 세계와 맺어 온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전통 미학이 시각의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했다면, 고골의 작품들 안에서는 냄새와 코가 끊임없이 부상한다. 여러 연구자들은 고골이 후각을 통해 사회적·윤리적 정보를 포착하는 방식을 주목해 왔다. 「코」에서 코는 신체적 기능을 넘어 ‘사회적 향취’의 표지로 작동한다. 특정한 냄새와 코의 존재는 곧 계급을 읽어내는 단서이며, 이를 잃는다는 것은 사회적 위치의 붕괴와 맞닿는다. 냄새와 후각에 대한 그의 집요한 관심은 풍자적 장치이자 감각의 질서를 뒤흔드는 전복이다.
"보스크레센스키 다리 위에서 껍질 벗긴 오렌지를 팔고 있는 여자 장사꾼이라면 코 없이 앉아 있어도 무방하겠지요."
- 「코」, 고골
이 대사는 코의 부재가 계급에 따라 어느 정도 허용되는지, 사회가 감각을 어떻게 위계화하는지를 냉혹하게 드러낸다. 이때 코는 우스꽝스러운 부속이 아니라, 사라졌을 때 더욱 또렷해지는 ‘잃어버린 감각 세계의 자국’이다. 그리고 그 자국은 고골이 펼쳐 놓은 서사 속에서 은밀히, 그러나 매섭게 번져간다.
코가 독립된 주체로 행동하며, 자신을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자적 인격”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신체와 자아의 결속을 흔드는 결정적 순간이다. 정체성은 과연 어디에 귀속되는가. 살과 뼈의 결합인가, 관직과 관복이 부여하는 사회적 명함인가, 아니면 타인의 인식이 덧씌운 얼굴인가. 고골은 이 질문들을 풍자의 옷을 입힌 채 독자 앞에 조용히 내려놓는다.
후기이론적 언어를 빌리면, 신체와 주체의 분리는 사회적 표지들이 몸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즉 기표가 실체를 압도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은유로 읽힐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위계와 서열을 비판하는 후기 담론들과 자연스레 접속한다.
「코」는 분명 웃음을 유발하는 텍스트이지만, 그 웃음은 쉽게 안도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고골은 외형과 권위가 어떻게 주체를 탈소유화하고, 그 상실이 어떻게 일상의 공포와 체면의 경제를 형성하는지 차갑게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읽을 때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웃음의 표면보다도, 그 아래서 미세하게 진동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신체가 표지가 되고, 권위가 관례가 되며,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일상의 그림자로 남는 세계—그 세계가 바로 고골이 우리에게 내미는 ‘코 없는 얼굴’의 풍경이다.
언어의 장막 너머에서 흔들리는 얼굴
고골은 층층이 쌓인 세부 묘사 속에서 언어를 뒤집고, 교란하고, 다시 엮어 내는 데 놀라울 만큼 능숙한 작가다. 관료 문서의 건조한 문장, 신문 광고의 속기, 일상의 대화, 초현실의 잔광이 하나의 서사 안에서 교차하며, 독자는 ‘진짜 원인’을 추적하는 대신 언어 자체가 벌이는 자족적 놀이에 휘말린다. 이러한 리듬과 전환은 해석의 단일한 중심을 허락하지 않으며, 오히려 ‘해석 불가능성’을 작품의 전략으로 끌어올린다. 준비된 이유도, 온전한 결말도 제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적 타자의 불안과 결핍을 문학의 감각으로 옮겨 놓는다.
형식주의 비평가 보리스 에이헨바움은 고골의 문체에서 ‘스카즈’ 기법을 끌어내며 그의 서술자가 지닌 특이한 존재감을 분석했다. 스카즈란 구어의 억양과 제스처를 문어로 옮겨 서술자의 목소리를 강렬히 드러내는 방식이다. 「코」의 화자는 문장을 꼿꼿하게 세우다가도, 어느 순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주저앉거나 얼버무린다. 이 믿을 수 없는 화자는 독자의 균형을 흔들고, 작품 전체를 거대한 농담의 장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나보코프가 지적했듯, 고골의 유머는 결코 가벼운 재담이 아니라, 그 아래에 깊은 심연을 가라앉힌 웃음이다.
서술의 비논리성은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의 본래적 속성을 비추는 거울처럼 보인다. 안개가 낮게 깔린 도시에서 인과는 희미해지고, 오직 관등과 제복이라는 기호들만이 실체처럼 부유한다. 이발사 이반 야코블레비치가 빵 속에서 코를 발견하는 도입부의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그 코가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는 초현실적 장면은 고골 특유의 ‘웃음 속의 눈물’, ‘부조리 속의 현실’을 구현한다.
미하일 바흐친의 ‘카니발적 신체’와 ‘파롤라적 웃음’ 이론은 이러한 고골의 감각에 깊은 조명을 던진다. 바흐친은 중세 민중적 축제에서 신체의 해체가 권위와 위계를 일시적으로 뒤집는 방식을 설명했는데, 「코」의 신체 해체—즉 코의 분리—는 그러한 카니발적 전복의 문법과 깊이 닮아 있다. 작품 속 웃음은 단순 희화가 아니라 권위의 일시적 전도이며, 고골은 이 전도를 통해 일상의 규범과 제도의 불합리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의 신체적 과장은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는 일종의 역헌법적 풍자로 작동한다.
고골은 「코」에서 풍자의 정교함, 언어의 기민함,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결합해 사소한 사건처럼 보이는 이야기 안에 근대적 불안과 위계의 구조를 집어넣는다. 설명 불능의 상황을 집요한 리듬과 세부로 채우면서 독자로 하여금 웃음의 끝에서 불안을 만나게 한다. 물론 이러한 미학은 당대의 문맥 안에서 문제적 지점을 품기도 한다. 작품은 때로 대상화된 신체—여성이나 하층민에 대한 과장적 묘사—를 통해 웃음을 생산하며,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서열과 관습을 보지 않으면 풍자의 맥락 일부가 소실될 위험도 있다.
오늘날 다시 읽는 「코」는 단순한 관료제 풍자를 넘어, 신체·정체성·관직이 맞물리는 현대적 ‘표지의 정치’를 여전히 날카롭게 비춘다. 권력의 형식이 주체를 어떻게 구성하고, 외형과 실재가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읽는 데 유효한 텍스트다. 고골 이후의 현대문학—부조리 문학, 초현실주의, 카프카적 전통—이 그의 뒤를 따르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 작품을 오페라로 재해석하며(1928년 작곡, 1930년 초연), 고골의 그로테스크와 풍자를 음악적·무대적 언어로 확장해 보인 것 역시 같은 계열의 반응이다. 오페라적 재서술은 원작의 ‘소란스러운 혼종성’을 극대화하며, 정치적 폭압기의 시대감과 겹쳐 또 다른 층위의 부조리를 드러냈다.
코의 귀환은 얼핏 하나의 복원처럼 보이지만, 그 복원은 아무도 원인에 대해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 설명되지 않은 채 제자리로 돌아온 사건은, 오히려 근본적 불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고골이 의도한 것은 사건의 회복이 아니라, 회복되지 않는 세계 자체였다. 신체·자아·제도의 불안은 여전히 텍스트 바깥에서 진동하며, 바로 그 잔향 속에서 「코」의 얼굴은 끝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코의 그림자와 시대의 어둠 사이
고전을 다시 읽는 일은 대개 당대의 역사와 시간의 공기를 더듬는 관찰에 가깝지만, 그 경계에서 멈추지 않고 텍스트는 언제나 현재의 독자와 조우하며 새로운 호흡을 얻는다. 풍자적·사회적 독해와 존재론적·언어학적 독해의 비교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풍요롭다. 전자는 작품을 표의·관료제 비판의 장으로 환원하려 하고, 후자는 코의 분리를 기호·언어·주체의 문제—정체성의 표지화—로 읽어낸다. 두 관점은 배타적이기보다 서로의 결을 비추며 병행되는 독해의 두 축처럼 움직인다.
현실적 인과성의 부재를 해석하는 문제에서도 논쟁은 길게 이어진다. 전통적 독해는 이를 단순한 유머나 몽환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면 다른 흐름은 고골이 의도적으로 원인을 비워냄으로써 근대적 경험의 설명 불가능성을 드러낸다고 본다. 여기에 민중적·카니발적 요소의 수용까지 더해지면 해석의 스펙트럼은 한층 넓어진다. 바흐친식 독해는 작품 속 해방적 웃음과 권위 전도의 순간을 강조하는 반면, 보수적 독해는 그 웃음을 경박함으로 재단하려 한다. 그러나 ‘신체적 미학’을 해방의 은유로 읽어내는 바흐친의 관점은 고골 텍스트의 밑바닥에 깔린 미세한 정치성을 비추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에는 러시아 고전 전체가 신자유주의적 맥락과 현대 정치의 장면 속에서 다시 읽히고 있다. 「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작품을 ‘자본과 권력을 통한 동화와 주체의 소외’라는 신자유주의적 서사 구조 속에 위치시키려는 해석이 늘어나는 중이다. 현대의 논평들은 고골이 묘사한 위계적 신분체계가 오늘의 권력 서열—공간적·인종적·국적적 위계까지 포함한—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 질문하며, 그 질문이 작품을 고전적 풍자의 껍질 밖으로 이끌어낸다. 결국 오늘의 독자는 이 텍스트를 읽으며 신자유주의적 규율과 표지의 정치가 어떻게 주체를 포획하는지 목격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코」는 흔히 남성성 상실의 공포, 즉 거세 불안을 서사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코발료프는 끊임없이 여성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지위와 매력을 과시하려는 인물인데, 그런 그에게 돌출된 신체 기관의 상실은 남성적 권위의 붕괴를 뜻하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는 코를 되찾은 뒤 가장 먼저 면도를 하고 거울을 살피며 여성에게 추파를 던졌고, 이 사실은 정신분석적 독해를 지지하는 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텍스트의 층위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서사를 단순히 성적 차원으로 환원하는 일은 고골이 의도한 감각적·존재론적 균열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근대 도시인의 자아 분열—거울 속 이미지와 실제의 나 사이에서 생겨나는 균열,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주체의 취약성—이 ‘도주하는 코’라는 알레고리 속에서 한층 선명하게 드러난다. 코는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 어딘가로 흘러가 버리는 사소한 기관이 아니라, 정체성의 경계와 주체의 균열을 드러내는 상징적 움직임이 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코」는 웃음을 유발하는 기상천외한 이야기 너머에서, 제국의 질서와 주체의 미세한 균열, 그리고 근대적 불안이 교차하는 지점의 어둠을 오래도록 남긴다. 독자의 눈앞에서 미묘하게 떨리며 흔들리는 그 어둠은 텍스트가 계속해서 다시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라지는 코의 자리에서
고골의 「코」는 19세기 러시아 관료주의의 허위를 고발하는 동시에, 근대 이후의 인간이 감당해야 할 실존적 불안을 미리 짚어낸 작품처럼 다가온다. 코발료프의 코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서사는 평온을 가장하지만, 독자는 그 평온이 언제든 다시 균열로 번질 수 있음을 예감한다. 인과와 논리가 무너진 세계에서 인간의 존엄은 제복의 단추 하나, 코 하나에도 하찮게 흔들릴 수 있다는 고골의 통찰은 오늘에도 여전히 차가운 경고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선 무엇이든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기쁨 역시 다음 순간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고 또 그 다음엔 더욱 시들해져서 마침내 예사로운 마음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마치 작은 돌이 물에 떨어졌을 때 생기는 파문이 결국 다시 평평한 수면으로 되돌아가는 것과도 같다."
- 「코」, 고골
이 인용이 보여주듯, 「코」는 소동극이 아니라 근대적 감각과 신체의 언표화, 제도적 위계의 메커니즘이 겹겹이 쌓여 형성하는 다층적 구조다. 나는 이 작품을 다시 펼치며 그것을 고골이 남긴 — 그리고 여전히 미해결로 남아 있는 — 질문의 기원이자 미세한 균열의 지도처럼 읽었다.
왜 코가 사라졌는지, 왜 관료가 되었는지, 왜 누구도 이 기이한 사건을 진심으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지 소설은 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이 설명의 결여는 단순한 부조리의 장식이 아니라, 권력과 계급이 작동하는 구조의 비가시성을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인다. 우리는 왜 그토록 쉽게 ‘형식’과 ‘표지’에 설득당하고, 왜 그 기호들이 주체의 실체보다 앞서 존재하게 되는가. 고골은 그 질문을 웃음이라는 얇은 막 너머에서 집요하게 꺼내 보인다.
코가 돌아온 뒤, 코발료프는 다시 관료적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독자의 시야에는 이전과는 다른 그림자가 남는다. 신체, 감각, 정체성, 제도 — 이 네 겹의 층위가 얼마나 손쉽게 전도되고, 어떻게 사소한 농담 속에서 잔혹한 명암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우리는 이미 한 차례 목도한 셈이다.
그 잔향 속에서 오늘의 현실 또한 모습을 드러낸다. 외양이 실체를 압도하고, 표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며, 존재는 종종 허울에 묻히는 우리의 풍경. 겉으로는 단순한 19세기 우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이 사실은 지금—이곳의 우리에게 건네는 경고와 성찰의 메아리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미세한 균열의 숨결은 여전히 흔들리고,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고골의 질문을 다시 이어받게 된다.
※ 참고 문헌: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서정은 역),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을유문화사, 2012.
• 보리스 에이헨바움, (이윤 역), 「고골의 <외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 이론』,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5.
• 석영중, 「도스토예프스키와 고골: "가난한 사람들"과 "코"를 중심으로」, 『러시아연구』, 제15권 2호, 서울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05.
• Nikolai Gogol, (Ronald Wilks Trans.), 『The Diary of a Madman, The Government Inspector and Selected Stories』, Penguin Classics,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