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들.이 08] 고독한 청춘들의 안식처
대학을 마치고 직장에 들어선 시기에 낭만이라고는 찾아들 겨를이 없는 시간이 연속되었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날들을 마주하고 나면, 다른 생각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학생 때 끼고 살았던 책들은 물론 틀어 놓고 듣기만 하면 되는 음악도 어느새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중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찾았다. 그 결과 회사 내에 있는 클럽 활동인 사내 밴드에 오디션을 보고 합류하게 되었다.
회사의 별칭이 ‘Big Blue'였기에 음악적 요소를 가미한 밴드의 이름은 ’Blue Note'였다. 문제는 모여든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과 연주와 노래 실력이 천차만별이라 선곡조차 쉽지는 않았다. 뻔한 지나간 오래된 밴드들의 카피를 주로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 구원자 같은 넘버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넘버들의 주인공이 바로 밴드 ‘동물원’이었다. 그야말로 딱 들어 맞는 선곡들이었다. 이유는 노래의 연주와 카피가 어렵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정체성이 ‘직장인 밴드’라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연재에서 김광석과 산울림의 김창완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물원’의 노래들이 떠 올랐다. 지금 세상에는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겨진 김광석이 있게 해준 밴드이고, 실험과 실행의 대명사인 김창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그런 밴드 동물원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잘 살아가는 직장인 밴드’다. 학창 시절 결성된 밴드이지만, 이들은 분명 다른 일을 매진하면서도 지금까지 공식적인 해체 없이 음악 활동을 이어 가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오래 한 직장인 밴드임은 틀림없다.
동물원은 1988년에 산울림의 리더이자 큰 형님인 김창완이 발굴한 대학생 밴드로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 학교가 다르지만, 음악이라는 매개 하나로 ‘무진기행’이라는 카페를 아지트 삼아 음악을 이야기하고 직접 연주, 노래하곤 하다가 김창완의 눈과 귀에 들게 되었다. 김창기, 박기영, 박경찬, 유준열, 최형규, 김광석, 이성우가 1집 멤버였는데 이들은 고등학교 친구들, 그들의 대학 친구, 그리고 친구의 친구가 모여든 그야말로 아마추어 밴드였다. 그리고 이들은 김광석과 기타리스트 이성우를 제외하면 전업으로 음악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기념 삼아’ 만들자고 김창완 씨가 주도하여 앨범을 준비하였다.
이들은 동물원이라는 이름을 깊은 고민이나 철학적 사유에서 짓지 않았다. 스폰서이자 프로듀서였던 김창완이 그룹 이름도 짓지 않고 머뭇거리던 이들에게 ‘이대생을 위한 발라드’라고 이름을 짓겠다고 엄포를 놓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짓게 된 이름이 ‘동물원’이었다. “이화여대생들에게만 팔아도 1,000장은 팔 수 있을 것”이라는 김창완의 자기 희화적인 이야기는 달리 본다면, 그만큼 이들의 음악이 대중적 흥행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졸속의 작명치고는 그럴듯하고 괜찮은 이름이 되었다. 이들에게 음악은 하나의 놀이였고 그저 치열한 사회생활로 접어들기 이전의 한 모금의 마중물이었을 뿐이었다.
동물원은 이처럼 철저하게 아마추어적이었다. 음악으로 업을 삼겠다는 생각도 보컬이었던 김광석과 기타리스트 이성우를 제외한다면 전혀 없었다. 실제로 이들은 동물원으로 활동하면서 각자의 전공을 살려 음악과 관계없는 직업을 가졌다. 그 결과 전업 음악가의 길을 선택한 김광석과 이성우는 1집, 2집을 끝으로 팀에게서 나오게 되고 결국 동물원의 우리 안에는 여전한 아마추어들이 남게 되었다. 이들의 1집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충격’이 있었다. 그 충격을 한 단어로 이야기해보자면 ‘담백함’이었다. 기승전결의 치달아 오르는 구성도 없을뿐더러 김광석을 제외하면 엄청난 스킬의 보컬도 없었다. 음악도 딱 그만큼 만들어서 발표했다.
여담이지만 이들의 1집은 영어 회화 테이프를 녹음하는 곳에서 연습 삼아 녹음한 결과물이었다. 그 이유로 당시 대세였던 ‘리버브’와 ‘에코’를 쓰지 못했다.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쓸 수가 없었던 한계가 이들의 음악 색깔과 딱 들어맞게 된 것이다. 리버브와 에코는 마치 동굴이나 밀폐된 목욕탕에서 노래하는 효과를 준다. 어설픈 음정도 그럴 듯하게 해 주는 보정의 효능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용 불가된 음악들은 오히려 '덤덤한 담백함'을 만들었다. 세상의 위대함은 생각보다 ‘우연’의 작용이 많다. 우연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묘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은 음악적으로 잠재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아마추어의 명찰을 달고 동물원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귀에 익은 노래인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와 같은 곡을 만든 김창기, 유준열은 전형적인 송라이터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기타리스트 이성우는 음악 애호가라면 아는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 ‘시간이 흐르고 나면….’을 세상에 내놓으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설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우리 가슴을 울리는 보컬 김광석이 있었다. 녹음 상태와 기술적 면모가 열악하고 부실하였지만, 이들의 1집은 ‘잠재력’ 하나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고 말았다.
동물원의 음악이 울리던 시절은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1980년대의 냉전과 독재의 정치적 장막을 헤쳐 나왔지만, 21세기를 마주할 희망과 결실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경쟁은 여전하였고 먹고살 만하니 불만이라는 핀잔이 청춘들의 가슴에 꽂혔다. 견고할 것만 같았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금세 헐렁해지고, 세상 밖에 내 던져진 것만 같은 깊은 고독함이 자리 잡고 있을 때,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던 젊은 영혼들에 안식을 주는 울림을 준 밴드가 동물원이었다.요즘 MZ 세대론에 대한 부질없음은 이 시대를 반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원래 젊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특별한 시대의 불행이 아니다. 사실 사춘기 같은 열병일지도 모른다. 늘 불안정하지만, 임계로 향해 스스로 완성을 만들려는 모든 모래 사태의 움직임이니까.
1집의 성공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단 김창기가 작정하고 유명해지려고 만들었다는 <거리에서>는 완성도가 제법 높은 노래였다. 그런데도 1집에서 가장 동물원다운 노래를 꼽으라면 <잊히는 것>, <말하지 못한 내 사랑> 그리고 <변해가네>다. 당시 장르적 분류에 따른 주류의 음악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음악들이다. 포크의 전형적인 시적 비유도 아니고 발라드 음악의 서사 전개도 없는 노래들이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일상의 비범함과 그것을 노랫말로 옮기는 담담하고 덤덤한 보컬, 그리고 독특하고 오롯한 소재들로 가사를 만들고 그것을 특유한 리듬 진행으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면 스스로 울타리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동물원은 ‘갇힌 것’이 아니라 ‘속한 것’이라는 설명이 어울리는 이유다.
이후 최형규도 나가게 되어 오랫동안 5인조로 활동하다, 6집부터는 편곡 일을 돕던 배영길이 멤버로 들어온다. 이때 히트곡이 된 <널 사랑하겠어>를 발표한다. 가장 히트곡을 많이 만들었던 김창기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일을 하면서도 밴드 활동을 이어 나가다가 탈진 증세로 의사에 전념하겠다며 7집 이후 동물원에서 나온다. 박경찬도 마찬가지 이유로 탈퇴하면서 지금의 박기영, 유준열, 배영길의 3인조로 남아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한 직장을 30년 다닌 기분이에요, 그건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5년이 지나면 새로 생긴 직장 중 절반이 사라지는데 그걸 6번이나 버텨낸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희는 정말 복 받은 거죠.”
-2017년 ‘동물원 30주년 기념 콘서트’
유준열 인터뷰 중-
30주년 기념을 하는 인터뷰에서도 직장 생활에 비유하는 이들은 여전히 ‘직장인 밴드’이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유준열은 광학 회사의 대표가 됐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박기영은 가톨릭관동대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로 강단에 선다. 건국대 사학과를 나온 배영길 역시 영화 시나리오 작가 겸 프로듀서로 일하며 이들 세 사람 모두 별도의 ‘전업’이 있는 셈이다. 밴드 활동으로 먹고살겠다는 의지나 욕심이 여전히 없다. 그런 이유로 동물원의 음악은 어느 시대를 거치든 주류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장수 직장인 밴드’를 유지할지도 모르겠다. 유준열의 이어지는 인터뷰를 보더라도 ‘먹고 살아야겠다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덕분’에 음악 활동이 여전히 즐거운 놀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의 본연의 기능은 ‘즐거움’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동물원은 정통파 음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동물원을 참 좋아했다. 최근에는 동물에 대한 여러 인식과 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동물원을 폐지하자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이에 대해서 인식과 의도에 이해하고 찬성하고 있다. 그런데도 동물원은 지난 어린 시절, 젊은 시간의 추억과 아련함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어릴 적 모친과 형이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자, 해외 근무 중 휴가를 나온 부친과 단둘이서 창경원에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이가 고작 너덧 살이었을 텐데, 그 동물원에서 보았던 동물들과 부친이 발라 준 통닭의 냄새가 아직 아련하다.
나이가 들어 직장 생활의 경쟁에서 무척 지쳤을 때, 양복에 구두를 신고 무작정 서울 대공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제법 추워져 움츠린 어깨로 저물어 가는 햇살을 받으며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무어라 말하고 싶지만, 그 녀석들이 알아 들을 리가 만무하였다. 그런데도 성난 마음은 말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고무풍선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들과 하품하는 사자, 우리 안을 이리저리 맴도는 원숭이들에게 지나온 내 모습들이 있었다. 쓸쓸한 그 모든 것 사이로 걸어가는 하늘엔 파란색 커다란 풍선이 날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원 2집 <동물원> 가사를 변용)
동물원의 음악은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관점에서 잘 만든 음악은 아닐지도 모른다. 녹음도 엉성했고, 연주는 엉터리였고, 노래도 그렇게 잘 부른다고 할 수 없는 음악들이 그저 ‘추억’이라는 명분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의 귀에 들어오고 마음에 남아 35년이 넘도록 다시 부르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는 ‘주류’라는 울타리를 둘러 격리한 동물원의 동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세렝게티 초원도 아니고 보르네오섬의 밀림도 아니며, 그렇다고 백두대간의 깊은 산 속도 아닌 철창 속에 갇힌 존재들이었으니까. 이 어설픈 노래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남은 이유는 아마도 이 울타리를 함께 거두려는 다독임이 아니었을까. 좋은 노래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음표가 떠 오를 때마다 동물원의 노래를 들어 보자.
숨 가쁜 생활 속에 태엽이 감긴 장난감처럼
무감한 발걸음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우리
시간은 흘러가고 빛바랜 사진만 남아
이제는 소식조차 알 수 없는 타인이 됐지
사랑한다고 말하며 속삭이던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바쁘다는 것이 핑계 아닌 핑계가 되어 서로의 소중함을 잊고 살게 된다. 불안한 음정이고 치닫는 고음도 없는 밋밋한 노래가 마음을 파고드는 이유는 ‘일상의 사유’가 살아 있기 때문일 듯.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상인의 성찰 노래.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했지
<변해가네>의 제목이 주는 의미는 사회적으로 다가온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의 뉘앙스가 깊게 남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준열의 쑥스러운 목소리와 다소 흥분된 리듬으로 내 닫는 노래의 핵심은 ‘아름다운 변모’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고집하던 모든 것들이 유일하게 양보 되고 미루어지는 순간이 온다. 바로 사랑이다. 변한다는 것이 늘 좋지 않은 일은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변화하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어릴 적 보고 팠던 그런 세상을
잃어버린 나의 세상을
이 밤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밤 다시 찾을 수 있다면
이내 작은 노래를 부르리
내 소중한 꿈 하나 그리리
이내 작은 노래를 부르리
별빛 가득한 이 밤에
개인적으로 동물원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나름 발라드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음악적 서사에 둔중한 보컬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별이 보이는 밤이 찾아들면 ‘여행스케치’의 명곡 <별이 진다네>와 함께 머리에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다. 어릴 적 누구나 동화 같은 꿈 한 번은 꾸고 자란다. 다 큰 어른에게도 꿈을 꿀 시간은 있을진대, 우리는 어느새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동물원 김창기가 개인의 경험을 담아 만든 노래다. 어릴 적 자라던 혜화동 골목에 그 시절 뛰어놀던 친구와 어쩌면 긴 이별을 배웅하려 만나러 가는 일을 담담한 일기처럼 적어 내었다. 공간이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그 시절을 소환해 주기도 한다. 특히 어릴 적 살던 동네와 골목에 접어들게 되면 나도 모르게 발이 머물고, 눈에 띌까 봐 발을 옮겨도 자꾸 그 집 앞을 맴돌게 되는 것. 그것이 추억이자 기억의 습작이 아닐까.
살아가는 얘기 변한 이야기
지루했던 날씨 이야기
밀려오는 추억으로 우린 쉽게 지쳐갔지
그렇듯 더디던 시간이
우리를 스쳐 지난 지금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
나의 생활을 물었을 땐
나는 허탈한 어깻짓으로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를 아직 찾고 있다했지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에
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했지
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데
마지막 추천곡을 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널 사랑하겠어>라는 히트곡을 뒤로 하고 혜화동에 이은 ‘공간 소환’ 노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를 고른 이유는 온전히 노랫말 때문이다. 첫사랑이 되었든 진짜 친했든 친구가 되었든 스쳐 지나가는 많은 인파 속에서의 깜짝 만남은 설렘이자 두려움이 뭉쳐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로 덤덤한 일상을 나누지만, 마음속에는 그 옛날 호기롭게 약속했던 어딘가에 있을 무언가가 자꾸 떠오르게 되니까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그 빛나는 열매를 찾아 버거운 삶을 버티고 사는 것은 아닐까.
참고:
* 동물원 인터 뷰 - IZM 2004년 4월
* 대중음악 100대 명반; 21위 동물원 ‘동물원’ - 경향신문
* 서른 된 동물원 "한 직장 30년 다닌 기분 직장 안 망해 다행" - 더 중앙
* 그리고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