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은지 Dec 16. 2015

5. 물 위에 서기

서핑 체험

1.

한동안 “업”이라는 소리만 들리는 듯하더니

곧이어 환호성도 들리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보드 위에 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면 나는 서핑보드 위에 겨우 엎드리는,

아니, 겨우 매달리는 수준이라

옆 사람들의 환호성들로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분명 서핑보드는 납작한데

내가 올라가려고 하면

자꾸 빙그르르 돌아 뒤집어졌다.


겨우 서핑보드 위에 엎드려도

이내 곧 한쪽으로 뒤집어져버렸다.



서핑보드 위에 서는 게 아니라

‘바다 위’에 서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의 일.

하지만 당시 이런 컨셉이 없던 나로선

답답할 뿐이었다.

그걸 왜 그땐 생각하지 못했는지.


처음부터 바다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2.

서핑보드와 한참 씨름을 하니

그래도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

서핑보드처럼 납작 엎드려 올라가니

보드 위에 엎드려서 균형을 잡기 쉬워진 것이었다.


어렵던 부분이 조금이나마 해결되니

조바심이 줄었다.


그렇다면 이제 서핑보드 위에 서 볼 차례.


다신 서핑보드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서핑보드에 찰싹 붙어

강사님 앞으로 조심조심 이동하였다.



3.

'아직까지 보드에서 안 떨어졌다.

강사님이 밀어주셔도 보드에서 안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면 나도 곧

강사님의 “업Up”이란 스탠딩Standing* 신호를 듣고

나도 멋지게 서핑보드 위에 스탠딩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전에

“패들**, 패들, 패들, 패들!!!”

이란 강사님의 말에

어깨가 빠질 것 같았다.


도대체 언제 나도 “업!”이란 소릴 들을 수 있는 건지!


스탠딩 타이밍도 모르니

“업”이라는 신호가

언제 들릴지 모르는 것은 당연.

내 기분엔

한 번 서 보지도 못하고

패들만 백번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패들 몇 번에

근력이 부족한 내 신체는

삶은 시래기처럼

축축 처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들리는 “업!” 소리.


*스탠딩: 서핑보드 위에 서 있는 것.

**패들: 서핑보드 위에 엎드려 팔로 노 젓는 것. 4회 7번 참조.


패들하는 중(서핑보드가 파도에 가려 안 보인다)/ 서피비치 2015년 8월/ 출처:내친구



4.

빨리 스탠딩 하고픈 마음에

‘업’ 신호를 듣자마자

일어나려 애썼다.


'엎드린 상태에서

가슴 양옆

서핑보드 데크에 손을 대고...'


하지만 이미 패들에 지친 내 어깨와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여태 바닷물을 머금고 있었다는 듯

느리게 움직이는 어깨와 팔.


이런 과정은 당연히

스탠딩 실패로 이어졌다.

느린 어깨와 팔의 속도에 맞춰

서핑보드 위에 섰을 땐

이미 스탠딩 타이밍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빨리 일어서면 되겠지.’하며

여러 차례 더  시도해 봤지만

시도할수록 오히려 더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5. 

다른 조에서는

일찌감치 스탠딩에 성공한 체험자가

몇몇 나온 상태.


다른 조를 보니

남자들의 성공 비율이

여자보다 높아 보였다.

스탠딩에서도 안정적으로 보였다.


‘스노우보드 같은걸 타는 사람들인가?’


서핑에 필요한 게

운동신경인지,

스노우보드 실력인지를

멍한 눈빛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스탠딩 한 상태로 내 앞을 지나가는 내 친구.


깜짝 놀라 친구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이미 여러 번 스탠딩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강사님이 안 밀어주셔도

스탠딩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동안

곁에서 잘하고 있는 친구를 두고

멀리 있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6.

스탠딩에 능숙한 친구를 부러워하자 친구는

가끔 탄 스케이트보드가

도움되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했던 운동들은
헬스
요가
필라테스...

스튜디오 운동뿐인데.



순전히 건강관리 차원의 운동만 하던 나는

올여름 이전까지

온통 스튜디오 운동만 했었다.


한두 번 스노우보드를 배우긴 했었지만

두 발이 스노우보드에 묶여있는 상태가 무서워

꾸준히 즐기진 못했다.


그동안 쌓은 스키 실력이

수상스키를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됐듯,

만약 내가 스노우보드를 배웠다면

서핑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됐을 텐데.


내 몸을 너무 아끼던 내가

이렇게 미웠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았다.



7.

여러 번 시도 끝에

나도 스탠딩에 성공...했다.

한... 5초?


해상교육이 끝나고 주어지는 자유 시간.

남은 자유 시간 동안

어떻게든 스탠딩을 확실히 해 보고 싶었지만

‘5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이 날은

정말 ‘서핑 체험’만 하고 끝났다.


‘서핑보드를 밀어주시기까지 했는데도 이렇게 어렵다면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맞는 거 아닐까?‘


하지만 궁금함이 남았다.

“업!”의 타이밍을 결정하는  그것.

'파도를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하조대 해수욕장/ 2015년 8월/ 출처:김은지




1. 5회 글이 예고보다 일주일 더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2. 다음 글, 2015년 12월 22일(화) 발행 예정.

이전 05화 4. 비기너의 탄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