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noopyholic Nov 12. 2017

향기로운 차의 여운은 아쉬움을 남기고......

:: 쟈스민차 + 설중귀려도

차 마시는 친구로부터 귀한 쟈스민차를 조금 얻었다. 두 번 정도 마실 수 있는 분량이었고 한 번의 분량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 마셔봤더랬다. 

아, 그 향기와 맛이라니!

극도로 화려하지만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고급스러운 쟈스민의 향기와 그에 전혀 뒤지지 않는 백호은침의 또렷한 맛이 어우러진 차였다. 



쟈스민차, 하면 구체적으로 중식당이나 베트남식당에서 내어주는 차를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는 꽤 친숙하게 느껴지는 차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기본 바탕이 되는 찻잎에 쟈스민 꽃의 향기를 입히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언젠가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광주리로 따온 꽃과 찻잎을 섞어 밤새도록 몇 번의 가공을 거쳐야만 제대로 된 쟈스민차가 태어난다. 물론 그건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매우 고가의 쟈스민차이고 우리가 마시는 일반적인 것은 많은 부분 기계가 그 공정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향을 입히기 위한 모차의 종류에 따라서 등급이 분류되는 것이 이 차의 특징이기도 하다. 백차의 싹만을 취해 만든 백호은침에 가향하는 것이 가장 특급이고 일반적으로는 녹차의 잎에 가향해서 유통된다.

그러니까 내가 이미 반을 마셔버린 이 쟈스민차는 최고급에 속하는 부류였던 것.

어쩐지, 맛과 향이 늘상 마시던 쟈스민차와는 다르다 했다.

일단 그렇게 알고 나니 나머지 차를 언제 마셔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도록 방치할 수도 없었다. 향이 사라질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으니까. 몇 번을 꽁꽁 싸서 단단하게 닫히는 상자에 넣어두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써야 하는 원고가 많았던 날이었다. 피곤함과 나른함, 통증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정신을 차려야 겠다 싶어서 겨우 원고 하나를 일단락지어 놓고 똘똘 말린 쟈스민차가 있는 상자를 꺼내기로 했다. 다구를 뜨겁게 예열하고 흰색 솜털로 둘러싸인 녹색의 잎사귀들이 일자로 정렬해서 유리 차호 속을 떠다니는 모습을 바라봤다. 찻잎과 뜨거운 물이 만나는 순간부터 주변을 장악한 쟈스민의 향기가 가라앉았던 기분을 끌어 올려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모금.

상큼했다. 향기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뒤에도 입 안 전체에 남아서 마치 내가 할 일이 잔뜩 쌓인 현실세계가 아니라 아무런 걱정이 없는 먼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얀 쟈스민꽃이 끝도 없이 펼쳐진 언덕 어딘가일지도 모르겠다. 달콤하고 싱그러운 꽃송이들의 기운이 고스란히 내 찻물로 스며들어 이런 기쁨을 선사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는 생각뿐.

그렇게 몇 번을 우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점차 차의 기운이 아스라이 멀어져 감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아마도 조선시대의 유명한 화원 김명국이 그린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 속의 인물이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설중귀려도 ㅣ 김명국 ㅣ 17세기경 ㅣ 국립중앙박물관


나무도 등성이도 골짜기도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깊은 산중. 그곳에 작은 집 한 채가 있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쓸쓸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나귀 위에 남자가 하나 앉아 있고 그 앞에 어린 종이 봇짐을 메고 주인과 함께 사립문 앞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셋의 얼굴 모두 비통해 보인다.

잘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두 남자의 얼굴이 꽤 나이 들어 보인다. 아마도 벗이 노구를 이끌고 속세를 떠나 깊은 산중에서 살아가는 친구를 그것도 한겨울에 찾아온 듯하다. 지팡이에 의지한 걸 보니 몸이 안 좋아졌다고 서신을 띄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벗은 한달음에 먼 곳까지 달려와 주었다. 둘은 만나자마자 얼싸안고 기뻐했겠지. 

물론 이 그림을 그린 김명국이 주광酒狂 이자 호 자체도 취옹醉翁임을 고려하면 전혀 다른 시나리오가 있을 수도 있다. 멀리서 추위를 무릅쓰고 그리운 벗을 찾아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눈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둘은 함께 지내면서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고 집 주인은 그만 술병이 나 지팡이에 의지한 채 친구를 배웅하는 것인지도.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둘이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애틋한 시선을 서로에게 쏘아댈 수 있으랴!



약간 골골거리는 내가 근사한 쟈스민차를 만났다. 기운도 없고 힘들 때 이 친구를 다시 불러들였고, 마시는 동안 기분이 좋아지고 원기도 회복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애틋하다.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전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는 법.

김명국은 취하지 않으면 붓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또 그렇다고 너무 취하면 그림을 제대로 못 그렸다고 하니 그야말로 적절히 취한 순간에 신들린 붓 솜씨를 발휘했다고. 사람들은 이 그림도 그가 취했을 때 그렸다며 붓의 선 처리로 미루어 짐작해 어느 부분을 그릴 때 더 취했네 마네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산을 뒤덮은 눈의 두터움이 마치 밤새도록 내린 눈이었을 것 같고, 그림 속 두 친구는 운치를 즐기며 차茶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마도 술酒(역시 작가의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을 주거니 받거니 했을 것이다. 이별의 순간, 끝내 시선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는 나귀의 걸음이 눈을 밟으며 내는 뽀드득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친구를 보내고 허전해진 집의 마당에선 그 집 종이 눈 치우는 빗자루질 소리가 들리겠지.



나 또한 제 성분을 아낌없이 내어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고한 향기를 품고 있는 불어난 찻잎에게 애틋한 시선을 보내며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이전 08화 변함없이 곁을 지키는 존재가 건네는 위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