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사막 일상
눈을 뜨고 일어나니 타타의 부인이 아침 식사를 내왔다. 언제 마셔도 맛있는 사막의 민트티와 직접 구운 빵, 대추야자로 만든 엑기스와 맛과 향이 강한 올리브오일이 메뉴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참 맛있게 먹었다.
기지개를 펴며 밖으로 나갔더니 물을 뜨러 가자고 한다. 그래서 함께 물통을 이고 지고 집 근처에 있는 우물로 갔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 모두 이곳에서 뜬 물을 사용하는지 당나귀까지 동원해서 물통을 지고 온 아낙과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물을 떠서 가지고 온 통에 담아서 가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최대한 열심히 그 일을 도왔다.
몇 번 물을 지고 나른 뒤 기진맥진 집으로 돌아와서 쉬려고 하는데 여동생이라고 했던 자하라가 괜히 살갑게 굴며 내가 가져온 물건들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내 배낭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 싶으니 보여 달라고 나선 것. 나는 몇 가지 옷과 화장품 같은 것을 보여줬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급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몇 가지 물건을 가져와서는 다짜고짜 원하는 물건과 바꿔달라고 떼를 썼다. 나는 그냥 줄 수 있는 물건 두 개 정도를 골라 그녀에게 건네고 그녀가 내게 주려는 물건들은 정중하게 사절했다. 그녀는 매우 행복해 했다. 그리고 종일 내 곁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다. 슬프게도 나는 아랍어나 불어를 할 수 없었고 그녀의 영어는 한정적이었다. 다만 우리 둘 다 얼마 되지 않는 스페인어를 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그걸로 누군가 보면 대체 뭐하는 것일까, 싶을 수준의 의사소통을 했다.
그녀는 타타의 여동생이었고 이 집의 딸인 줄 알았던 꼬맹이의 엄마였다. 스페인 여행객과 눈이 맞아 꿈결 같은 며칠을 지낸 대가로 그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전혀 구김살이 있거나 주눅들어하지 않고 당당하게 지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호기심 많고 욕심도 많은 그녀를 따르는 몇 명의 남자들을 그날 하루 동안 다 만나봤다. 물론 그녀는 그들을 ‘친구’라고 소개했지만 둘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순박해 보이는 사막의 청년들이 쏘아대는 구애의 눈빛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기에 관찰자인 나는 혼자서 큭큭댔다.
슬프게도 자하라는 다음 날 용무가 있어서 하싼의 차를 타고 메르주가 시내로 떠나게 됐다. 가면 사흘 정도 뒤에나 돌아올 것 같다며 그때 돌아오면 보자고 했다. 물론 떠날 때 오빠에겐 절대 말해선 안 된다며 내게 용돈을 요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금의 돈을 쥐어주고 아침 일찍 그녀를 보냈다. 전날과 비슷한 아침을 먹고 같은 우물로 가서 물을 길어왔다. 자하라 한 명 빠졌을 뿐인데도 일손이 빠진데다가 나는 그 일에 숙련되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돌아와서는 심심함을 잊기 위해 물 한 통과 필기도구를 옆구리에 끼고 산책에 나섰다.
목적지는 집에서 바라보면 멀리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였다. 어쩌면 사막 한가운데에 저렇게 나무가 서 있을 수 있을까 기특했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을 그 나무를 꼭 가까이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줄 알고 걷기 시작했는데 뙤약볕 아래서 걸으니 거리가 꽤 됐다. 그리고 더 놀랐던 것은 막상 다가가서 보니 한 그루가 아니라 두 그루였다는 사실!
나무는 그곳에 꽤 오래도록 있었는지 상당히 굵었고 힘든 수난의 역사를 견뎌왔던지 뒤틀려 있었지만 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미적으로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 다가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하나인지 둘인지, 나무줄기의 결이 어떤지, 잎사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는 어떤지...... 사람도 그런 것이리라.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서 봤을 때 다른 것. 다가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
나무줄기 위에 평평하게 앉을 수 있는 곳이 있어 열심히 줄기를 타고 올라가 앉아 목이 마르면 물로 목을 축이며 일기장에 저런 이야기들을 끼적거렸다.
천천히 내려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역시 간단했다. 아침에 구워둔 빵과 올리브 절인 것, 올리브 오일, 언제고 빠질 수 없는 민트티.
식사를 마치고 낮잠이나 잘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사륜구동차가 집 옆에 만들어둔 그늘집 근처에 멈췄다. 프랑스어를 쓰는 관광객들과 가이드가 내리더니 집안을 구석구석 둘러보며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자신의 사진에 방해되는 무언가였던지 나에게 카메라를 가리키며 자주 비켜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방긋방긋 웃자 관광객들은 차에서 과자 상자와 펜 몇 개를 꺼내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타타의 부인이 급히 내온 차를 마시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더니 다시 바삐 차에 올랐다. 가이드가 얼마의 돈을 타타의 부인에게 건네는 것을 끝으로 모두 웃으며 헤어졌다. 아이들은 한동안 그 차를 따라 뛰어갔다가 돌아왔다. 나는 조금 멍해져서 있었는데 타타의 부인이 내게 그들이 남기고 간 과자를 권했다. 달콤한 쿠키였음이 분명하지만 그때 내입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더랬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