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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공감과 동의, 그 한 끗 차이

by 오경희

고객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특히 고객과의 접점에서 자주 언급되는 ‘진실의 순간(MOT, Moment of Truth)’에서는 공감과 동의의 차이를 정확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객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진심으로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기본이지만, 이를 동의와 혼동할 경우 고객 대응은 오히려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콜센터는 고객 대응에 전문화된 조직이기 때문에 공감과 동의를 구분해 대응하는 데 비교적 익숙하다. 그러나 본사 사무직이나 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기사들은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 친절 교육에서는 흔히 ‘공감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지만, 공감이 곧 동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은 실수가 발생하기 쉽다.


이와 관련된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 어느 날, 고객의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고, 당시 우리 회사는 S전자의 셋톱박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S전자는 고객의 안전과 신뢰를 중시하는 원칙에 따라, 원인 규명에 앞서 선보상 후 조치 방침을 적용했고, 고객에게 신속히 피해 보상을 진행했다. 이후 조사 결과, 화재의 원인은 셋톱박스가 아닌 고객 자택 내 설치된 케이블이 심하게 꺾이면서 생긴 문제로 밝혀졌다. 하지만 기술팀이 이 결과를 현장이나 고객지원부서에 공유하지 않았고, 당연히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일부 직원들은 풍문에 근거해 화재 원인을 셋톱박스 문제로 오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고객이 셋톱박스 문제로 화재가 발생했다며 강하게 항의했고, 현장 기사는 고객의 주장에 공감하는 과정에서 “셋톱박스가 원인인 것 같다. 이전에도 동일한 사례로 보상해 준 사례가 있다”라고 사실상 동의를 표현하고 말았다. 이후 소방서 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번 화재 역시 고객이 임의로 변경한 케이블 설치가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미 기사가 고객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인 상황이었기에, 이후 진실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고객은 기사의 말을 기억하며 끝까지 회사를 원인 제공자로 지목했고, 결국 회사가 책임을 일부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사례는 세 가지 중요한 문제를 드러낸다. 하나는 내부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다. 최초 사건에 대한 사실이 체계적으로 공유되고 교육되었다면, 기사가 오해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는 공감과 동의를 혼동한 대응이 사소한 문제를 큰 사건으로 확산시켰다는 점이다. 만약 그 상황에서 현장 접점 직원이 단지 고객의 감정에 공감하는 수준에서 대응을 멈췄다면, 사건은 더 이상 번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로 해당 사례를 매뉴얼화하여 현장 직원들에게 교육했다면, 고객에게 임의로 케이블 배선을 옮기거나 변경할 경우의 위험성을 사전에 공지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예방의 기회까지 놓쳐버린 것이다.


고객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고객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화재와 같은 사고를 경험한 고객은 당황하고 분노하며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때는 그 감정 자체를 인정하고 어루만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화재로 많이 놀라셨을 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속상하셨겠습니까?”라는 말은 고객의 감정을 존중하며 안정감을 제공하는 좋은 표현이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신속하게 문제의 원인을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현재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조사하겠습니다. 만약 저희 장비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고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원인 규명을 위해 소방서에 신고하시면 정확한 조사와 확인서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이면 고객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으며, 회사가 책임 있게 대응하고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된다.

이러한 대응은 고객의 감정과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 감정적 호소가 사실 여부로 단정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공감은 “셋톱박스로 인해 불편을 겪으셨다니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해합니다.”와 같은 표현으로 충분하다. 반면 “셋톱박스가 원인일 수 있겠네요.”라는 식의 말은 아직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위험하다.

공감과 동의를 혼동하면 고객의 주장에 대해 충분한 사실 확인이 이루어지기 전에 기업이 잘못된 책임을 떠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고객 신뢰도 저하, 기업 이미지 실추, 불필요한 보상 비용 증가 등 다양한 리스크를 낳는다.


결국 고객서비스에서 핵심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정서적 공감과 사실 기반의 명확한 판단을 조화롭게 수행하는 것이다. 공감은 고객의 감정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데 필수적이며, 동의는 그 감정의 원인이 기업 책임임이 명확히 밝혀진 뒤에야 가능하다. 교육 과정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단순히 설명하는 것을 넘어, 사례 중심의 실습과 훈련을 통해 체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들이 고객을 위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 오히려 조직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반복적인 교육과 명확한 대응 매뉴얼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객서비스의 진정한 품질은 단순한 미소나 정중한 말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고객의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사실을 신중히 다루는 태도야말로 고객의 신뢰를 얻고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핵심 역량이다. 공감과 동의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면, 고객서비스는 단순한 대응을 넘어 감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한 끗 차이로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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