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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왜 자꾸 윗사람을 바꾸라고 할까?

by 오경희

고객의 클레임을 다루다 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문장이 있다.


첫 번째, "내가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두 번째, "너 말고 위 사람 바꿔."


첫 번째 말은 종종 진심이 아니다. 고객이 손해를 봤다면 당연히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즉,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금전적으로라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결국 대부분의 클레임은 크던 작던 보상으로 해결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다.

물론 극히 드물게 본인의 진정성이 훼손될까 염려하며 보상을 거절하는 고객도 있다. 이런 사례는 뉴스에 나올 정도로 희귀하다. 기업은 결국 고객의 손해를 금전으로라도 보상해야 한다. 그것이 마땅한 책임이다.


하지만 고객이 “너 말고 사장 바꿔”, “책임자 바꿔”라고 외치는 순간,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직급 호칭이 아니다. 그 속엔 여러 겹의 심리가 녹아 있다.


이 요구는 고객의 심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고객은 불만 상황에서 자신이 통제권을 잃었다고 느낀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과 분노가 결합된 감정이 표출된다. 이때 “사장 바꿔”는 좌절된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반응이다.

또한, 권위에 대해 신뢰하는 심리로 인해서, '더 높은 사람이면 해결해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고객은 상위 직급일수록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예전에 그렇게 해서 문제가 풀린 경험까지 더해진다면, 과거의 경험이 ‘담당자는 안 되고, 위 사람은 된다’는 이 믿음을 강화한 경우이다.

다른 사람이 겪지 않은 불편을 직면하게 되면, 고객은 자신의 불만을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주길 바란다. 담당자에게는 진심이 닿지 않는다고 느낄 때, ‘윗사람’을 통해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한국 소비자만의 특성은 아니다. 위계가 뚜렷한 사회일수록 문제 해결의 단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심리는 더 강해진다. 그리고 이 요구가 무시될 때, 고객은 점점 더 과격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잘 알려진 사례로는 2015년 7월, SK텔레콤의 한고객이 반복되는 통화 품질 문제로 극심한 불만을 품고 서울 을지로에 위치한 SK텔레콤 본사 T타워 건물 1층 로비로 자신의 차량을 몰고 돌진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건물 출입문과 로비 시설이 파손되었고, 해당 고객은 사건 직후 경찰에 체포되었다. 고객은 조사 과정에서 "오랜 기간 통화 품질 문제로 고통받았지만, 회사 측의 미흡한 대응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그 고객은 재판에 회부되어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법적 처벌을 받았다. 그 고객은 본인의 선택이 초래할 결과를 전혀 모르고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고객 불만이 적절히 처리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업이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기도 하다.


실제로 필자는 현업에서 수 많은 고객 클레임을 마주했었다. 그 중 몇개의 사례를 이야기 해 보자.

본사 민원으로 연결된 고객 중 일부는 단순히 응대자의 태도에 실망해서가 아니라, 반복된 실패 경험을 통해 “위에 이야기해야 바뀐다”는 신념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 중의 한 고객은 계속된 민원에도 해결이 되지 않자 대표이사 앞으로 정중한 어조의 내용증명을 보냈고, 우리는 이 내용을 대표이사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표이사가 직접 회신문을 작성해 지사장을 통해 방문을 조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객은 "그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며 방문을 거절했다. 대표이사가 해당 문제를 알게되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그 고객은 문제 해결보다 자신의 불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길 바랐던 것이다. 이 고객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 주었고,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사건은 시스템 마이그레이션 중 발생한 오류로 인해, 과거 정리되었던 채권 정보가 복원되어 고객에게 잘못된 채권 통지가 전달된 일이었다. 고객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1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고, 고소장을 회사로 보내왔다. 고객은 당시에 세상에 억울한 일이 많아서 다른 일로 소송을 진행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우리가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대통령에게도 민원을 보냈다는 그는, 3차례의 대면 미팅 끝에 가까스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이 일은 필자가 경험한 가장 어려운 민원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이런 위사람 호출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객의 요구를 무시하기보다는 경청하고, 왜 위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과 고객의 기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응대 직원에게 일정 범위 내에서 문제 해결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금 조정, 소액 환불 등은 현장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고객이 계속 상급자와의 연결을 요구할 경우, 무조건적으로 이관을 막을 것이 아니라 회사의 정책과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상급자 연결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감정노동 종사자의 건강 보호 조치) 및 동법 시행령 제26조의2에 따라, 고객의 폭언 등으로부터 상담사를 보호해야 하며, 강성 민원 고객 응대를 위한 상급자 연결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다.


고객과의 신뢰는 사소한 대응에서부터 무너지기도 하고, 작지만 진심 어린 태도로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어느 누구와 통화하더라도 동일한 품질의 응대를 받을 수 있도록, 일관된 매뉴얼과 권한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다면, 고객은 더 이상 ‘사장 바꿔’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고객은 때로 진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통제력 상실에 대한 공포, 반복된 무시 경험에서 비롯된 분노,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진지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숨어 있다. 그들이 사장을 찾는 건, 문제 해결의 마지막 끈을 쥐기 위한 몸부림이다. 진짜 고객 중심 경영은 그 끈을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고객의 말 너머,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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