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경험에서 '친절'은 고객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적이 친절이 답은 아니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이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고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면 어떻겠는가?
때로는 아주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고 관리자를 찾거나 전문가에게 문의 후 알려주겠다는 대답만 반복하는 경우를 접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럴 때면 오히려 친절함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벽 보고 대화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은 지인이 이사를 하면서 인터넷을 이전해야 했는데, 문제는 해당 건물에는 특정 상품만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전화해서 문의를 했더니 해지 위약금이 상당하다고 하면서 차라리 상품을 가장 저렴한 것으로 바꾸고 비용을 지속적으로 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자문을 구해왔다.
위약금보다는 매월 이용료가 적기는 한데, 사용하지도 못하는 인터넷 이용료를 계속 내야 하는 게 너무 억울해서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회사마다의 약관이 다르지만, 해당 건물에 1개의 사업자만 설치가 가능하게 된 경우에는 위약금을 100% 감면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그래서 해당 건물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 요청하라고 알려줬고, 그 회사의 담당 직원이 알아서 처리를 해 주었다.
이런 경우는 왜 그랬을까? 필자가 해당 통신사 약관을 확인해 본 결과, 건물주의 반대는 50%의 비용만 감면해 준다고 되어 있으나, 만약 해당 건물에 특정 사업자만 설치가 가능하게 되어 있는 경우는 100% 감면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상담사는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여기서 몇 가지를 유추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상담사가 약관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냥 회사에서 나와있는 고객정책 매뉴얼로 답변을 진행할 경우에는 건물주의 반대로 인한 감면만 확인했을 수 있다. 회사의 약관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이해하지 않으면 정확한 답변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약관을 직접 읽어보는 직원보다는 매뉴얼에서 답변만 확인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는 회사에서 담당 직원에게 해지에 대한 권한을 제한했을 수 있거나, 실적 때문에 고객에게 억지 정책을 폈을 수 있다. 위의 경우대로 시행한다면 당장 해지 하지 않고 가입자로 카운트가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인은 인터넷 해지를 위해서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해결하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 상담직원은 어땠을까? 지인 왈, 너무 친절해서 화도 못 내겠더라고 했다. 이미 해지한 회사이지만, 어쨌든 그 회사에 대한 이미지는 안 좋아졌고, 다시는 그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몇 번이고 같은 절차를 밟아도 답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공손하게 응대하지만,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이 결여된 서비스는 고객의 신뢰를 잃게 만든다. 친절한 태도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그 친절함이 실질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고객은 오히려 더 큰 실망과 짜증을 느끼게 된다.
"공손한 바보"와 "까칠한 해결사" 중 고객은 어느 쪽을 더 선호할까? 대부분의 경우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친절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다. 친절은 어찌 보면 같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난 이후의 차별화 포인트 정도가 되지 않을까?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다면, 기왕이면 친절하고 기분 좋게 해 주는 곳에 가겠지만, 문제 해결이 안 된다면 당연히 해결해 주는 곳으로 가지 않겠는가? 이는 단순히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서비스 철학과 관련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한 전자제품 제조사는 고객센터에서 상담사를 "문제 해결 전문가"로 훈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모든 문의에 친절하게 응대하려는 노력보다는, 고객의 문제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이런 방식은 때로는 다소 까칠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문제해결력 관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기업이 고객 서비스에서 해결 중심의 철학을 도입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상담직원이 다양한 상황에서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 교육 없이 역량이 강화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권한을 상담사에게 적절히 제공하도록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 셋째, 단순히 친절한 응대 횟수를 측정하기보다, 실제 문제 해결 건수와 고객 만족도를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고객은 기업과의 접점에서 "진정성"을 느끼고 싶어 한다. 진정성은 단순히 친절한 말투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 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 고객 서비스에서 친절과 문제 해결 능력은 반드시 양자택일의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고객은 두 가지를 모두 기대한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손한 바보보다, 때로는 까칠하더라도 확실히 해결해 주는 전문가를 고객은 더 신뢰한다.
궁극적으로, 고객 서비스는 친절함과 더불어 실질적 해결의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이 직면한 문제를 이해하며, 가능한 최선의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고객 만족의 핵심이다. 그렇지 않다면, 친절함은 그저 허울 좋은 빈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진짜 핵심은 문제 해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