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요? 이걸요? 왜요?
요즘 신입사원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3요’라고 하는 ‘제가요? 이걸요? 왜요?’라고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에 파묻혀 있을 때, 새로운 업무를 받게 되면 속으로 가지고 있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복종이라는 문화가 있어서 시키는 대로 했다면, 요즘 세대는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언젠가 회사 블라인드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우리 팀장은 왜 자기 일을 나한테 나눠 주는지 모르겠다"
"어? 너희 팀장도 그래? 우리 팀장도 그래, 나도 바쁜데 왜 자꾸 자기 일을 떠 넘기는지 모르겠어!"
팀장의 역할은 팀의 업무를 잘 배분하고 계획에 맞춰서 진척되고 있는지 체크하고 역량이 부족한 사람에게 피드백을 해서 과업이 제대로 완성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때로는 팀워크를 발휘해서 팀을 잘 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니 팀장이 업무를 주는 것은 그의 일이니 업무를 받은 사람은 그 일이 자기의 일이 되는 것이다.
조직에 과업이 주어지면, 팀장은 해당 과업을 수행할 담당자를 정하게 된다. 가장 적합한 사람을 배정하고 왜 그 일을 담당하게 되었는지 경위를 설명해 주고, 언제까지 수행해야 하는지 상호 협의를 통해서 일정을 정하면 된다. 이것이 업무의 흐름이다. 그런데 대체로 급한 일일수록 일 잘하는 직원에게 이유 설명도 없이 언제까지 해오라고 던져 주는 게 대부분의 실정이다. 만약 제대로 소통을 통해서 업무를 배분했다면, 3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부족이 후배 사원의 당연한 질문을 ‘요즘 애들 무섭다’라는 뒷말을 만들어냈고, ‘우리 팀장이 이상해’라는 오해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이 세대 간에만 일어날까?
가끔 조직에는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과업이 부여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부서 간의 갈등이 되어 나타난다. 위의 질문이 부서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 팀이요? 왜요? 지금은 저희도 일이 많은데요? 처음 겪는 일은 나이나 경력을 따지지 않고 다시 신입 시절의 상태로 되돌리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고객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부서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고객은 워낙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고 그를 표출하는 성향도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슈들을 제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는 제품을 출시하면 사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정의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위한 매뉴얼 또는 스크립트를 준비한다. 그러나 정의되어 있지 않고 경험 범위 내에 없는 질의가 들어오는 경우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내가 고객인 상황에서 만약 상담사가 ‘저희 제품은 이런 적이 없습니다’. 또는 ‘그럴 리가 없는데요’.라는 답변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럴 때 고객들은 ‘그럼, 내가 이상하다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객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을 뿐이다.
매뉴얼을 주기적으로 현행화 해도 그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는 생긴다. 이럴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예기간을 주고 상위 부서로 에스컬레이션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럼 그다음은 어떻게 업무를 처리할 것인가?
일단 고객접점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빠르게 답변을 제공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때로는 땜질하듯이 고객의 이슈를 봉합해 놓고 제대로 된 나 후에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일을 누가 맡아서 정리할 것인가?
'제가요? 이걸요? 왜요?'는 사원들에게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슈가 생겼을 때 에스컬레이션하는 창구가 없으면 현장 직원들은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 ‘저희는 담당 부서가 아닙니다’. ‘지금은 회의 중입니다’. ‘누가 저희에게 확인하라고 했나요?’ 너무 익숙한 대화가 아닌가?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에는 CS기획팀, CS운영팀, 콜센터 운영지원팀, 고객센터 운영팀, 빌링팀 등의 고객 관련 조직이 있었다. 만약 매뉴얼에 없고 R&R이 모호한 업무가 발생된 경우에는 CS운영팀에서 우선 해결한다고 정의했었다. 고객의 이슈를 해결해야 하는데, 담당자 및 부서를 찾아서 역할과 책임을 운운하다 보면 그 사이에 고객은 회사에 헤어질 결심을 하고 악성고객으로 변해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이유를 제공받게 되기 때문이다.
왜 CS운영팀에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을까? 그건 현업과 가장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고객정책을 현장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고, 콜센터와 고객센터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아주 많은 자잘한 일들은 담당직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주고 선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일단 급한 불을 끄게 되면, CS기획팀에서 해당 업무를 인계받아 추가적으로 VOC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유사한 사례는 없는지, 그로 인해 불거질 수 있는 다른 문제들은 없는지 점검을 한다. 그러고 나서 문제의 핵심원인을 찾아내고, 유관부서와 논의를 통해서 고객정책을 수립한다. 정책에는 R&R을 어느 부서에 가져갈지 어떻게 보상할지 등을 포함한 내용을 확정하게 된다. 확정된 내용을 확정해서 공유하게 되면, 콜센터 운영지원팀에서는 고객의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한다.
조직이 작은 곳에서는 팀의 역할이 개인들에게 분배될 것이다. 조직의 규모와 상관없이 사전에 사소해 보이더라도 업무처리의 규칙을 정해놓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기 쉽기 때문에 미리 규정해 놓는 것이 좋다.
업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매뉴얼을 만들고 프로세스를 정비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한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업무 범위를 정하고 역할과 권한을 사전에 정의해 놓아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업무 처리 속도와도 연관이 있지만, 조직을 꾸리기 위해서 인력의 TO를 산정하는 일에도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어서 중요하다. 또한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서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도 있고 쓸데없는 프로세스를 양산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 그 누구'를 미리 지정해 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