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하다'
코끝이 시린 바람이 나날이 서늘해집니다. 일교차가 매우 큰 날씨인데 이상하게도 여름 때보다 모기가 많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기어들어오는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요. 잠깐씩 찾아오는 비를 맞고도 기승을 부리는 모기들을 보고 있자면 매년 저 녀석들도 강해지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퇴사를 하고, 응급실로 한차례 몸살을 겪은 후에 얌전해졌어야 하는 일상은 현재진행형으로 매우 바쁩니다. 저는 이사준비를 시작했습니다. 10년 넘게 살고 있던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거든요. 10년 동안 야금야금 늘려왔던 짐들을 하나둘씩 버리고 비우는 중인데, 체력이 좋지 않아 아주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짐을 버리려고 했다가 필요할 것 같아 다시 주워오길 반복하니 금세 방이 너저분합니다. 어머니는 분명 전화로 필요 없는 거 다 버리고 가라고 했는데 뭐가 필요 없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요.
"자꾸 도토리 모으듯 모을 거면 너부터 버리고 간다!"
이럴 수가. 이러다 이삿날에 제가 제 짐들이랑 같이 버려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에요.
체력이 좋아야 이사 준비도 즐겁게 할 텐데 안 좋아진 몸이 도통 돌아올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환절기에는 어김없이 이렇습니다. 일교차를 몸이 견디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온몸에서 비명을 질러 손가락 관절부터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약부터 챙겨 먹고 파라핀 배스에 손을 집어넣어 온도를 올려주면, 그제야 좀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요즘의 날씨를 어떤 단어로 표현하나 한참 고민했습니다. 쌀쌀하다? 춥다?
고민하다가 생각한 답은 '스산하다'입니다.
스산하다는 단어를 저는 날씨에 자주 사용해 왔어요. 가을 날씨에 주로 썼던 것 같군요. 그런데 이번에 사전을 찾아보니 그렇지만도 않더군요.
스산하다는 단어는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몹시 어수선하고 쓸쓸하다.
2. 날씨가 흐리고 으스스하다.
3. 마음이 가라앉지 아니하고 뒤숭숭하다.
나의 마음을 날씨에 투사하기 딱 좋은 단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가요? 회색빛 비구름이 잔뜩 끼는 요즘의 날씨와도 찰떡이지 않나요?
가을비가 왔다 갈 때마다 방바닥이 시리기도 하고, 이제 반팔을 입기도 추운 날씨입니다. 붕어빵과 군고구마 매대가 길거리 한켠에 나오기도 했죠. 그럼에도 마음이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까닭은 집안이 정리되지 않아서일 겁니다.
이삿짐을 조금씩 정리하며 무얼 버리고 무얼 가져가야 할지 몰라 모두 펼쳐놓은 곳에서 그냥저냥 살다 보니, 어느새 굴러다니는 짐들처럼 저 또한 어수선한 방구석 같은 마음이 되었나 봅니다. 정작 책장과 책상 위는 텅 비어 있는데 말이에요.
청소년 때는 하루이틀 만에 숭덩숭덩 이삿짐을 싸 이곳저곳 옮겨 다녔는데, 저희 어머니는 그걸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와서도 어머니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하면 너무 철없는 딸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이삿짐을 싸시나요? 아니, 어떻게 이삿짐을 버리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