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 연령에 가까워진 어르신들은 왜 아이들과 비슷해지는 걸까. 어른으로서의 마음보다는 이제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내 마음대로 하고싶다는 마음이 강해지는 걸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많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명확히 구분되기보단 상대방과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인지 달라지는 게 맞지만)이 뒤섞여 살아가지만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는 행동 방식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늘 의문이다. 그러한 고민이 나의 뇌를 발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긍정회로를 돌려보기도 하지만 뇌가 발전하는 것과 그러한 상황에 적응되는 것은 다른 차원이므로 고민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9살? 10살? 운동 후 샤워실에서 만난 초딩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저 저학년쯤인 걸로 추측할 뿐이다. 초등학생이 많은 시간, 일부 샤워기에는 샤워도구 가방이 걸려있다. 내가 늘 애용하는 수압 센 샤워기에도 걸려 있다. 열심히 샴푸를 하고 있으니 한 초딩이 옆에 서 있네. 수영을 갔다 왔더니 어떤 아줌마가 자기 자리(하지만 공용 샤워기)에서 씻고 있다. 자기 자리라고 말하는 초딩. 순간의 갈등. '이 샤워기는 공공물로 자리를 맡아 놓는 건 암시롱 소용이 없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잘 받아들일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러면서 알아듣도록 설명할 자신이 없다. 빠른 포기. 뭐라고 말하고 비켜줬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 가서 운동하고 씻지만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은 운동 시간이 달라진다. 당연히 씻는 시간도 달라진다. 가장 고연령대인 80대 어르신들이 몰려 있는 시간. 바로 12시부터 2시의 아쿠아 수영(수영이 아닌 물에서 율동하는 것)이다. 때를 좀 밀어야 할 것 같아 좌석 샤워기 자리에 앉았다. 한참을 씻고 있는데 한 타임이 끝날 시간에 수강생들이 몰려 나왔다. 80대 초중반(역시 나이가 가늠이 잘 되진 않는다)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굽어진 허리로 내 옆에 서서 나를 째려 보고 계셨다. 나도 여기 시설 짬바 10년차(과장 좀 보태서)다. 눈치를 보니 항상 이 자리에서 씻고 수영이 끝나고 나오면 늘 비어있던 자리로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왠 걸? 젊은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 의자 가져오셔서 옆에서 씻으셔도 된다(이미 다른 곳도 만석이고 어차피 기다리실 거)고 말씀드렸는데 기분이 언짢아 보인다. 의자가 아닌 바구니 놓는 선반(그러므로 나와 거의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앉은 상태)에 앉으신 후 "젊은 사람이 왜 이 시간에 오냐는 둥, 지금은 수영하는 사람들 씻는 시간이라는 둥" 투덜대신다. 수영하냐고 물어봐서 헬스한다고 대답해드렸는데 불편하게 옆에서 계속 째려보실 것 같아서 급하게 몸을 씻고 자리를 비켜드렸다. 아오- 참으로 어렵다.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설명하면 이해를 시키고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나의 결정은 늘 의도한 바를 잘 어필할 수 있느냐에 꽂힌다. 그리고 그게 안 될 것 같다면 시도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걸 택할 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도한 바대로 되지 않았다고 내가 한 행동이 의미가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쏟고 싶은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해 행동에 옮길 뿐이다. 오래전, 여름 납량특집의 대표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은 너무 무서웠다. 특히 무서웠던 몇몇 에피가 떠오르는데(나도 그땐 어렸는지라, 하지만 지금 봐도 무서울 듯) 한 쪽 다리를 빼앗긴 귀신이 "내 다리 내놔~"하며 쫓아오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같은 여름날, 샤워 시설에서 전설의 고향을 경험하고 있다. 귀신은 진짜 자기 다리를 되찾기 위해 '내 다리 내놔~'를 외쳤지만, 자리를 맡아놓은 초딩과 어르신은 공용 시설임을 무시(한 쪽은 사회화의 미학습, 한 쪽은 사회화의 망각?이라는 점이 다르지만)하고 '내 자리 내놔~'를 외친다. 나는 요즘 전설의 고향만큼이나 그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