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라디오작가를 하게 됐다. 방송국 냄새, 라디오 부스 냄새, 노래, 브릿지 멘트 모두 너무너무 좋았다. 영상 작가 막내 페이보다도 라디오 페이가 더 셌고 매일 출근도 아니고 라디오 녹음하는 날만 몇 시간만 출근했다. 사연 읽는 재미도 있고 말랑말랑한 글을 쓸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한, 두 곡씩 큐시트에 넣어 나의 취향저격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라디오 하면, 남자 DJ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잘 자요” 하는 것을 기대했었는데...내가 맡은 라디오 DJ는 생각보다 연륜 있는 여자 DJ였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트로트와 옛날 음악을 많이 듣게 됐다. 그래도 나중에는 옛날 음악의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고 삶의 경험이 묻어 나오는 깊이 있는 DJ의 코멘트도 좋아라했다. 역시 삶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듯. 아무튼 처음 경험해보는 라디오 세계는 늘 설레고 즐거웠다.
그런데 너무 편하게 와서 그런 걸까? 내가 이전 프로그램 마무리를 잘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도망치듯 나와서?
지금도 그 상황에 대해서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니까. 매일 매일 엄청난 실수를 했다. 원고 오타, 생방송인데 DJ에게 엉뚱한 원고를 준다든지,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든지. 정신을 차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혼이 나갔다.
사실 피디님과 언제부터인지 핀트가 맞지 않았다. 피디님이 나를 싫어하셔서 계속 눌린 상태로 일을 했다. 피디님이 웃을 때 안 웃고, 화낼 때 제대로 혼나지 않고, 개그 할 때 무표정으로 있고, 적극적인 반응을 하지 못했다. 사람에게 지쳐있었다. 회사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터라...서브작가로서의 기본 예의범절 ‘샤바샤바’를 잘하지 못했다. 일개 서브작가가 고집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애교도 없고, 분위기를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고, 실수는 계속하고. 상사에게 이쁨 받는 것도 능력이다. 난 노력하지 않았고, 일도 잘하지 못했다.
팀원 중 한 사람이라도 나를 싫어하면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일은 일이고, 관계는 관곈데... 잘 분리되지 않았다. 그 공간에 갈 때마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개편 때까지 버텼다. 메인작가님이 버티라고 하셨다. 작가님이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주셨는데 이렇게 엉망으로 일을 해서 지금까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다. (작가님! 죄송합니다. 정말 ㅠㅠ ) 그래도 마지막까지 라디오부스에서 좋은 음악, 라디오만의 갬성 그리고 청취자들의 따뜻한 사연들이 나를 위로했다. 우리 팀은 개편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와해됐고,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