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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1. 2020

제 1 장

1. 가장 기쁘던 날    


동글동글 바다색 너는

모난 데 하나 없이 부드러운 

원투쓰리 닮았지    

우리 집에 온 첫날 밤

네가 타고 왔던 유리구슬

유리보다 더 투명한 보석 상자에

나는 너를, 재웠지    

나는 너에게, 원투쓰리처럼

사랑 주고 용기 주었어    

네가 좋았던 이유 단 한 가지

너로 인해 맘 아프지 않을 테지    

누굴 닮았나 인정 많은 원투쓰리

살아있는 건 전부 내치지 못해

우리 집 식구 되자고 함께 왔었지    

성격만큼 화려했던 그 아이, 베타

둥둥 떠오른 너를 안아 올리고

예쁜 흰 천에다 곱게 접어 묻을 때

마음 많이 아팠지

울지 않았다면 거짓말    

슬픔 잊어갈 때쯤

이제 두 번 다시는 원투쓰리말고는

다른 식구 허락하지 않기로 했었거늘    

아! 언 땅에 너를 묻고 돌아오던 날

나는 원투쓰리보다 더 많이 울었어

두 번 다시는, 원투쓰리말고는

다른 식구를 보살피지 않겠다 작정했지    

너, 동그란 초록이 

너보다 나는 일찍 죽을 게 분명했으니

적어도 억지로 이별하는 일 없을 테지

그래서 너를 아무런 거부도 없이

가족으로 인정해 주었어    

500년 살아도 크게 자라지 않고

아파도 슬퍼도 내색하지 않지만

기쁨만큼은 감추지 않는단 네가

왠지 짠한 마음 들어

밀어내지 않고 마음속에 넣었지    

기쁨을 표시하는 건

죽을 때까지 거의 한두 번만

그 표시를 보면 소원 빌어도 된다

너는 원투쓰리에게 그렇게 말했나 봐    

식구 된 지 여덟 번 바뀐 계절

무엇이 그다지도 기뻤니    

원투쓰리 너를 보고 소원 빌었지

딱 한 가지씩만 빌고 와서

나에게도 말했어    

‘엄마도 소원 빌어요’    

그 기쁨 감추지 않았어    

원투쓰리가 지금 말한 그 소원

이루어지게 해 줄 수 있니?    


덧붙임 : 어둠이 깨지기 직전, 이 새벽, 희미한 빛이 아이들과 내가 있는 이 작은 방으로 침입하려고 애쓰던 순간 바로 창문의 미세한 틈을 찾아내서 뱀같이 길게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듯, 여지없이 제 몸의 가늘고 긴 팔을 쑥 들이밀어서 그렇게도 만져보고 싶던 내 아이들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더듬는 순간의 희열과 비슷한 기분일 것이리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미명이 경험하는 최고의 순간이듯, 그때 그가 내게 했던 그 말을 나는 조금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내 아이들은 아이의 특성을 전부 갖고, 무엇이든 키우고 싶어 했다. 친구한테서 분양받은 열대어, 곤충들, 기니피그, 그리고 지금도 아주 잘 있는 마리모까지 수도 종류다 다양했다. 마리모는 녹조류 식물이라 광합성을 하는데 평소에는 돌멩이처럼 가라앉아만 있다가 광합성 맘껏 한 날 솜털 사이사이에서 산소 방울들이 마리모를 뜨게 해 주는 것이다. 매우 드문 일이라 마리모가 물위로 떠올라 있으면 소원을 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마리모 세 녀석 중 하나가 오늘 동동 떠올라 있었다. 나도 이렇게 신기하고 기쁜데 원투쓰리는 얼마나 좋았을까.            

2. 러브레터   

 

쓱싹쓱싹 연필 깎는 소리

향나무 냄새, 검은 흑연 가루

나는 벌써 설레죠 

그를 만나기 위한 단장이니까요    

고르고 고른 종이, 맨 윗줄에 

그렇게 부르고 싶던 이름 적어요    

온 세상 전부 내 것 되는 순간

숨겨온 내 마음 숨김없이 다

그에게만 말하고 속삭이죠    

쓰는 동안 그대, 완전한 내 것 되는 순간

우주라도 전부 가진 듯 벅차올라요

털어놓고 싶던 마음, 어색해도 좋아요

두근대 서툴러도 고쳐 말하지 않아요

내 세상에서 그대는 한없이 너그럽죠    

그대, 흰 구름 뜬 하늘 날아가도

나, 까만 밤 그대 별자리 찾아도

우리 숨과 빛을 삼켜버린 블랙홀

우리는 만날 수 있어요, 얼마든지

내 세상 안에서는 못할 게 없어요    

‘굿바이’ 점하나 찍고 나면

그는 내 세상 밖 사람 되어요    

나는 기다려도 괜찮아요

또 깎고 깎아서 닳고 닳아도

짧은 연필, 깨끗한 종이 한 장에

그대 얼마든지 내 세상 되니까요    

쓰는 동안 그대는 내내

내 전부, 내 세상 되니까요    


덧붙임 : 모든 편지는 러브레터다. 쓰는 동안만큼은, 그 시간이 단 몇 분 안 되더라도 그 마음은 오로지 받는 사람만을 향하고 나 혼자만 알고 있는 마음속 깊은 곳의 숨긴 이야기를 털어놓기 때문이다. 오직 그 상대만을 위해서. 그건 우리 둘만 알게 될 비밀이기도 하거니와 읽게 될 사람, 설령, 편지를 받게 되는 그 사람과의 다른 시간과 공간을 지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편지지라는 오직 한정된 공간, 우리만의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도저히 물리적으로 따져볼 수 없는 환상이며, 모든 숨과 빛을 삼켜버리는, 또, 한번 빠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기도 하며, 결코, 가볼 수 없는 심연의 상상화와도 같아서 아주 특별한 인상을 남긴다. 그 순간이 단 5분이라도. 그래서 모든 편지는 러브레터다.                                                                                                                                                            

3. 눈꽃    

그대는 눈송이처럼 왔지

바람결에 몸을 맡긴 건지 

무작정 날려 온 건지

때론 너무 조용해서 어디 만큼 왔나

정말로 나에게 오고 있는 줄도 몰랐네    

나는 항상 저만치 물러나 서서 

그대 내려오는 것을 처연히 보기만 했네

내게 와 주길 그렇게도 바랬음에도

행여 내게로 내려올까, 잠시도 눈 감지 못했네    

혹시 나에게 내려앉을까 봐 

그대 보는 내내 내 마음 애태웠지    

그대는 눈꽃

가벼운 한숨에도

손톱 끝 찬 온기에도

속절없이 녹아버린 눈꽃이었지.    

그대는 그렇게 눈꽃으로 왔지

차라리 빗물이었으면, 비로 와서 

온몸 흠뻑 맞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차마 말 못 하였다네     

낸 눈물 탓에

슬픈 눈꽃은 

그렇게 글썽이는 눈 되어

뾰족하게 가시를 세웠으면서도 

알아주지 않던 그대를 

속으로만, 속으로만 원망하였다네    

그대, 눈꽃으로 와 나 그대를 외면하였네

눈 속의 슬픈 눈 감추기 어려워서 

외면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네

차라리 빗물로 와 주길

슬픈 눈 되어도 들키지 않도록

그럼 한 번이라도 만져볼 수 있을까?     

그대 눈꽃으로 왔다가 형체도 없이 떠났네

서늘한 입김에 시린 눈이 되고

내 눈 점점 슬퍼져만 갔네    

그대는 눈꽃

그리고 나는 슬픈 눈    

눈꽃은 눈물의 정령

눈이 내릴 때마다 눈은 

그렇게도 슬픈 눈이 되었나 보다    


P.S. 당신은 몰랐겠지요. 나 또한 상처가 두려워 어디에라도 내려앉을 때까지 온몸 뻣뻣해질 정도로 숨 참았단 걸요. 그래서 그렇게 내 몸에 가시가 돋는 줄도 몰랐단 걸요. 당신이 나를 보고 있었단 걸 알아요. 당신이 닿자마자 내 몸은 속절없이 녹아내린단 걸 알던 나는 날카로운 창을 세워 잔뜩 웅크릴 수밖에 없었단 걸 당신은 알기나 할까요. 눈꽃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건 내 눈물 탓이란 걸 당신은 영영 모를 테지요.                                                                                                                

사랑은 주는 것

- Love is giving, giving is not giving up.     

글을 쓴다는 것은

유일한 내 목소리로 나를 나눠 주는 것

부족한 잠을 아껴두었다 주는 것

머리가 복잡해지는 걸 감당해야 하는 것

기꺼이 나의 꿈을 이야기로 나눠 주는 것    

그러니까,

사랑하는 것과 글을 쓴다는 건 같은 것

전부를 내어 주는 것 같아도

주는 내가 더 행복하다 느끼게 되는 것    


덧붙임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아니면 비참하게 하는지 물어도 될까요? 아니면 그 둘 다입니까?” 에르미니아 알리에티의 의외의 대답에 피터 카멘친트는 가벼운 탄식으로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아,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은 우리가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있는 것 같아요.” - 헤르만 헤세, [피터 카멘친트] 중    

나에게 글쓰기란 사랑을 하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나는 헤르만 헤세의 이 둘의 대화가 참 좋다.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인내 속에서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라는 그녀의 대답은 참으로 멋지다. 내게도 글을 쓴다는 것은 어둡고 복잡한 일상에서 등불을 밝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의 내가 사랑을 하는데 서툴렀듯 글을 쓰는 것에도 많은 부족함을 느낀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지내는 것도 힘들다. 잘 나누어 주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잠과 생각과 이야기로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그만둬야 하는지 계속 가야 하는지의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가 하는 내 모습 보이기 때문이다.                                                         

4.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되려면

잘 들을 줄 알아야 해

누군가 기대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를 

잘 들을 줄 알아야 해

그런 다음에야 기도를 말할 수 있어야 해

동지섣달 찬물에 머리 감아도

속저고리 속치마 입은 몸 견뎌낼 줄 알아야 해    

기도하는 사람 되려면

소원 말할 수 있으려면 추위 몰라야 하는지도 몰라

내 새끼들 잘되라고

아픈데 없이 또 1년 잘 살게 해 달라고

항상 배고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 수 있으려면

꼭 그래야 하는지도 몰라     

꼬박 기다리다 우물가에 북두칠성이 뜨면

그제야 소원을 말할 수 있는 거야

눈꽃이 손끝에 닿아도 녹지 못하도록

차가운 심장이 될 줄도 알아야 해 

온갖 미혹에 흔들리지 않아서 

부뚜막 온기 외면하던 냉정함이 있어야 해    

그 옛날 우리 할머니, 어머니 그렇게 하셨으니

이제 나도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단 걸 알아

기도하는 사람 되려면

손 시림, 젖은 머리카락 얼어붙어도 떨지 않아야 해

나를 흔드는 유혹들에 흔들리지 않아야 해

그래야 소원을 말할 수 있는 사람 되는 거야    

나 빈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작은 소원도 

전부 다 나의 몫인 걸 알아

별로 가신 할머니, 백 발이 된 어머니

어미의 품에서 떨어지는 내 새끼들

잘 지내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으려면

그렇게 계속 소원을 말할 수 있으려

추위부터 먼저, 견뎌야 한다는 것을 알아    

언 손끝 가녀린 촛불에 닿아도 뜨거운 줄 몰라야

기도하는 사람은 그래야 한단 걸 알아    

소원을 말할 수 있으려면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해

그런 뒤, 말한 소원이야말로 

비로소 그때, 소원이라고 말할 수 있어    


덧붙임 : 사랑의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과거에서 배우고 느끼고 반성하는 법을 실천해야 한다. 작년 겨울 끝자락 어느 날, 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 한 살이 곤충이 어떻게 한겨울을 견뎌내고 있던 것일까. 그런 놀라운 나비를 보았을 때, 한편으로는 비애감마저 감도는 쓸쓸함과 안타까움으로 나는 마치 곤충학자라도 된 듯 새로운 종을 발견한 기분이 되어 인생의 몇 순간 되지 못하는 한 가운데서의 맛볼 수 있는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나비가 날아가는 데로 고양이처럼 사뿐히 뒤를 따라갔으나 끝내 담장을 넘어가 버린 틈에 나비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비의 날갯짓은 순간의 번쩍임으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가 싶다. 눈을 깜빡이게 하여 자칫 마음마저 흔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비가 흔해지는 봄이 오더라도 함부로 나비를 바라보지 못할 것 같은 미움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원망도 아닌 바로 나에 대한 미움으로 다가왔다. 마치 우주의 질서인 계절의 변화와도 같이 차갑고 냉정하면서도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는 그래서 그 중간에서 나는 아주 작은 티끌의 존재로서 있을 수밖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시기와 질투가 미움이 되어 다가왔다. 나비의 날갯짓은 그런 의미에서 가질 수 없는 빛의 유희와 다르지 않다. 그건 내 마음을 희롱하면서 마음먹은 대로 시선을 이리저리 유도하는 것, 끝내 사라져 버릴 거면서도 내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넌지시 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나비의 날갯짓을 순수한 마음으로는 보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것을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그리하여 바람이 흙먼지에 새기는 덧없음, 그냥 스치자마자 이내 사라져버리고 마는 영원의 환상을 동경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건 꼭, 한 마리의 나비처럼 나에게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고는 하지만 끝내 만져보지는 못하게 하는 나비의 날갯짓과도 매우 같다. 다이빙 벨과 심연으로 가라앉는 자의 모습은 마치 술잔 속의 나비가 된 듯 비상하는 모습이다. 물의 무게를 견뎌내며 심연 속으로 더 깊이 더 깊숙이 날아가는 것이다. 사실은 심연을 항해 더 높이 더 높게 난다는 것을 그 자신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침강이 환희의 비상이라는 것을. 누구도 모르는 나의 사랑은 시작도 끝도 진행도 없는 보통 중력에 의지하여 비상하는 잠수부와 같다. 이건 비유도 희화도 직설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말로는 표현이 어려운 감정의 형태일 뿐이다. 단지, 바람이 불어와 스치는 밀침으로 조금 흔들리는 것뿐이다.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랑하고 싶다. 내가 써낸 글의 주인공이 되어 사랑에 빠지는, 또 사랑받는 여인이 되고 싶다.         

                    

5. 돌아설 때 그녀는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가벼운 한숨으로 그녀는 말해요    

사랑은 요구해서도 안 돼요

마음속 확신에 이르는 힘없다면 

억지로 잡아당기는 것이니까요

당기는 것, 사랑 아니라 집착이죠    

그녀는 이제 탄식으로 말해요     

아! 그래서 그렇군요    

고백할 땐 소원 빌 때처럼 신중하라고

악마의 유혹같이 두렵지만, 자극적인 흥분

그 끝, 타락의 나락이란 걸 알아야 해요    

그녀는 이제 숨소리 숨기며 말해요    

그 끝이 나락이라도 가볼 생각했어요

언제까지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죠    

그녀, 이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요    

그대! 운이 좋을 뻔했는데……    

땅 꺼지도록 숨 버리고, 큰 숨에 숨고

돌아설 때, 그녀는 이래요 

덧붙임 :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그렇게 미소를 보이는 것, 영원하지 않은 삶의 영원으로 흘러가는 그리하여 그 흐름의 본연이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이 되는 모든 것들에, 미소를 선사하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설령 그 미소가 슬픔이거나 아픔이거나 오로지 기쁨만으로 가득한 무의미한 미소일지라도 꽃이 되거나 나비가 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소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사랑도 친절함도 아름다운 미소도 아파 본 사람이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이므로, 외면당할 때의 그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를 바라볼 수가 없다. 그를 보면 웃을 수가 없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바람에 물이 새는 그런 겨울의 날들을 잊어가 보련다.     

           

6. 쓰임새의 고통    


‘부담스러워요,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요’    

당신은 무슨 의미로써

이런 말을 하였는지요,    

내 마음속에 당신의 이 말을 

깊이 새겼어요,    

그리고 난,    

나 역시, 바래요

당신은!

의지도 없으면서

내 안으로, 

내 마음속으로

두 번 다시 

허락 없이는 

들어오지 마세요    


덧붙임 : 여기엔 쉼표, 만 있을 뿐 차마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었다. 제일 굵은 나무는 대들보 감으로 쓰이며, 조금 덜 굵은 나무는 쓸 만한 상자나 관으로 만들어졌고, 가장 가는 나무는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데 쓸 만한 회초리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잘못 자란 구부러진 나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잡목은 쓰임새의 고통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던 것이다. 그에게, 나는 처음 순간부터 잘못 자란 잡목 같은 존재였던 것을 나는 그 무엇이라도 되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쓰임새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좌절이며 상처가 되는 자각이 되었는 줄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잡목의 본래의 가치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이다. 잡목의 가치는 바로 가장 굵은 나무, 대체로 큰 나무, 가는 나무를 위해 빛을 양보했고 겉모습이 훌륭한 나무들이 그늘에서 땀을 흘릴 때 야 비로소 볕을 보았기에 그렇게 구불구불하게 자라 날수밖에는 없던 것이다. 단단하기로 치자면 구부러진 나무를 따라올 수 있는 건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쓰임새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도 외면과 버려짐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희생이라는 것을 과연 누가 알기나 할까.   

                         

7. 새벽의 용기    


사랑하는 사람 기다리는 여인은

오늘까지 피우지 못한 꽃 피우려고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망울을

꽃송이로 피어나게 하려고    

그가 그녀에게서 찾아내지 못한 꽃을

알아보게 하려고 했어요    

막 피어난 꽃 향이 그를 조금 더 

머무르게 할 줄 알았던 거죠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그녀는

정작 그녀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무엇도 못 보는 눈이 되어버렸어요    

사랑하는 마음은 

바람맞는 깃발과도 같아서

움직이지 않고선 견뎌내지 못하고

바람 부는 그대로 그 모습 그대로를

들키고 보여주고야 말았기에

그녀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새던

썰물 같단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이별을 생각할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았고

이별이 완전히 끝났다 인정했을 때는

멀어짐을, 그와의 완전한 거리를 

경험하고 나서야 그가 그녀 앞에 있음을

그녀 안에 들어와 있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에게 이제 더는

그녀와 마주할 눈길이 되어 줄

따스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녀 안에 모든 걸 가져다 놓고

떠나가기를 바랐어요    

그대! 거울을 볼 때 

그녀가 입 맞추던 그 입술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다면

그녀에게서 받은 모든 걸 되돌리고

떠나가기를 바랐어요    

이제 더는,

하늘의 별을 원망하지 않아요

닿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처음부터 알던 그녀였으니까요    

그녀는 이제 완전히

그와 끝났어요    

그가 있던 그녀 안, 

그 텅 빈 공간의 부재가 그대

있는 그대로 존재 이유가 되는군요    

이제, 떠나요

등을 보여주세요

더는 바라보지 않을 테니.    


덧붙임 : 일어나지 못한 늦은 새벽이었다. 아직도 미명은 내려오지 않았던 이른 시간이었지만 내게는 정신 온전히 깰 수 없었던 새벽이었다. 주인이 없는 시를 쓰고나서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내가 남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남겨놓고 떠나요. 나에게, 더는 당신을 기다리는 인내심은 없어요. 기다리고자 했던 내 안의 욕구조차도 훗날 내가 어떤 연인을 오래도록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그 연인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었단 걸, 그 연인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는 것도 이제는 잊어버렸으니까요’    

“사랑은 바다의 흐름과 같은 거야. 천천히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떠나가지. 누구도 막지 못해”                                                

8. 레드 문    


새벽녘,

서쪽으로 달려가는 달은

양 볼 핑크빛으로 물든

레드 문이었다.     

연인에게 

사랑받았거나 상처받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짐작했다.    

어쩐지 내 모습 닮은

레드 문이 애처로워

조금 더 잘 알아보려고

가까운 창문 끝으로 다가가

그렇게 기대어 한참 동안을

져가는 너를 바라보았다    

이내 너는, 이런 일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내 상념 힘껏 끌어안고

도망치듯, 산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

이제야 내 그리움 진정되었구나.    

나는 이 새벽    

사랑의 창문으로 세상을 보고

레드 문을 보고, 그리고

당신을 보았다.     


덧붙임 :. 그날 밤 핑크 슈퍼 문이 천문학자들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 가버릴 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벽, 나는 이미 레드 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었다. 나는 온통 너로 물들어 있었단 걸                            

9. 봄꽃  

  

그의 눈빛과 숨결과 말소리에

내 행복 있던 순간이 있었지    

하지만, 모든 행복의 순간이 길지 않듯

그런 그도 조금씩 멀어지고 변해갔다네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구속받기 원했지만

그는 내 맘 반대로 돌아서고 있었나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어져가고 있었다네    

봄꽃처럼 내 마음속에도

행복의 기쁨 왔었지만, 아쉬움은

봄꽃이 지는 순간보다 순식간이어서

못내 가을의 쓸쓸함이라 느껴졌다네    

아!

짧은 사랑은 아픈 것이구나.

봄날 꽃처럼 덧없음이로구나    

어서 꽃밭으로 달려가

제비꽃 한 송이 따 놓으리

그 보랏빛으로 내 마음 한쪽 물들이리.   

 

덧붙임 : 개나리가 피어나자 이에 뒤질세라 벚꽃이 흰 분홍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웠는지 모른다. 꽃이 너무나 빨리 떨어질까 봐. 피자마자 단 몇 분 만에 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마음속을 불안하게 하는 상념이라는 것을 열흘이 지난 뒤 오늘 문득 느끼게 되었는데 나무에 꽃잎이 반 이상이 벗겨져 있는 모습에서 성장의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던 그 두 시간 동안, 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꽃이 피어나기도 전에 꽃이 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던 나였다는 것을, 꽃이 진 상처에 돋아난 새살 같은 이파리가 어쩌면 더 나무에는 참다운 존재라는 것이, 한바탕 울고 나니 보이게 되었던 걸까. 나무에는 꽃보다 이파리가 더 필요한 존재이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일까. 살아보려고 어쩔 수 없이 꽃부터 피웠을 것을 이제 알 것 같다.      

                   

10. 독립적인 여성    


딸들아! 진정으로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 돼    

사랑에 모든 걸 걸어 본 엄마는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실컷 조롱당했지    

여자들은 진심을 볼 줄 아는 힘 부족해

남자는 호기심과 지루함을 견뎌내지 못하니까

쉽게 믿는 여자는 감정이란 함정에 빠져버리는 거지    

그러니까,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순수한 이성에게 자살을 저지르는 짓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다는 건

암시로 시작한 위험한 내 합리화에 빠지는 것    

딸들아! 진정으로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 돼

단 네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덧붙임 : 사랑하는 상대를 두고 운명을 논한다는 건 어쩌면 자연의 힘을 어기려는 도발일 수 있다. 운명의 여신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인의 불행에 더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름다움을 준 여자에게는 정조가 어렵듯, 정절을 준 여자에게는 보통 추함을 같이 부여한 것과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여자의 미모 결정은 자연, 즉 신의 영역이라서 나 스스로 심각한 오류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여자의 용모와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의지의 문제이며 운명의 소치가 아니라 자연의 소치인 것이다. 운명이란 스스로 의지로써 바꿀 수 있으니까. 그건 자연의 힘과는 또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조 마치가 했던 말을 빼놓고 갈 수 없다.   

 

‘왜 여자는 꼭, 남자에게 사랑받고 결혼을 해야 행복하다고 하는 건가요. 이런 말은 이제 신물이 나요. 여자도 얼마든지 꿈을 꿀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외로워요. 엄마, 나는 외로워요’

조는 엄마 앞에서 이렇게 말하며 오열했다. 내 모습이 보였다. 늘 경계하고 미워하고 마음의 빗장을 닫느라 입술을 다물고 있었던 내 모습이 보여서 얼마나 울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리라.     

모든 이성과의 문제에서 일방적인 상황이란 없다. 설령 대단한 짝사랑이라 하더라도.    


‘사랑의 꿈들이 행동이 되던 날, 꿈으로 사라지지 않는 행동이길 바랐다. 수줍은 동경에서 비롯되어 그에 대한 애절함으로, 끝내 완전한 고요함이 되어버린 폭풍 같던 열망이 기억 속의 무풍지대로 남지 않기를, 처연히 소멸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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