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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이 Nov 01. 2020

제 3 장

21. 이미 한 이별    


너는 헤어짐이 두려워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으면서도

사랑한다 말 못했다    

그렇다면 너와 나는 처음부터

이미 이별한 것이리라.    

나는 이 한 줄을 쓰기 위해

수백 개의 마침표를 찍었고

내 안의 너를 알아보고

나를 이해했었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나니

우리에게 이별이란 마침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는 걸.                                                                                                    

22. 우리의 너, 그리고 나    


말할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낮은 서랍 속 노트를 꺼냈다

손가락 사이의 잘 미끄러지는 펜으로

감추어야지 하면서 알려지길 바랐던 마음 털어놓았었다    

나와 너, 나와 그대, 나와 당신의 우리,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던 말 멈추고

우리에서 나를, 나 혼자만 데리고 나왔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아쉬움은 그리움 되어

처음의 내 뜻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던

나를 보는 게 어려워져만 갔었다    

나는 너로, 너는 그대로

그리고 또 당신의 우리로

나 혼자로서는 아무것도

요구해선 안 된단 걸 알게 된 건지    

내가 그려낼 수 있던 미래의 수많은 기쁨보다

지금 내 앞, 우리 둘만의

오직 한 가지 즐거움이 더 좋았으므로

미래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었다.    

하지만, 

너와 나, 그대와 나, 당신과 나는

한 컵 속물과 기름처럼 정다워질 수 없단 걸 

우리의 나는 예감했던 걸 까    

단 한 번도 네 앞에서 운 적 없던 나였지만

허공에 흘린 동그라미보다 더 동그란 내 눈물만이

점점 부풀던 마음같이 호수의 파장처럼 그렇게 

끝도 경계도 없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너, 그대, 당신 앞에 있던 우리의 나는

너의, 그대의, 당신의 작은 미소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버린 표정밖에는 

지을 수 없었단 걸

우리의 너는 알기나 했을까.    

그것이 너에 대한 어쩔 수 없었던

수줍은 내 사랑의 표시였다는 것을.    


덧붙임 : 제비가 처마로 날아들었다. 어릴 때는 단 한해도 제비가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집이 새집으로 고쳐지고 나서 다시 날아든 게 언제였던지 기억조차 나지 않은 제비는 아주 귀한 손님이었다. 혼자 아닌 한 쌍이 날아들었다. 다음번 집에 갔을 때 비가 안 드는 지붕 아래 어디에라도 제비 흙집을 볼 수 있게 될 수 있길 바라며 아이들과 나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일종의 소망이자 바람이었다.                                                                                                                                            

23. 아가멤논의 결론    


손가락이 저리고 부어오를 때까지 글씨를 썼다. 

그 글씨는 너를 염두에 둔, 내 최초의 시였다.    

구름은 나에게 해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둠은 우리에게 별빛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네 이별은 내 안의 너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너는 언제나 숨김없는 내 마음 보여주길 바랐지만

하지만, 진심을 보여 줄 때마다 너는 

안고 있던 나를 그 자리에다 내려놓고 돌아섰다

너에게 나는 무거운 숨이었나

다시 또, 숨을 참고 진심을 숨길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너는 살 수 없던 전시품처럼

너를 볼 때마다 갖고 싶다는 

욕망만 들어왔었다.     

나는 너를 알고 싶었다. 

알고 싶어서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

너를 알기 이전으로 나는,

또 우리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단 사실뿐     

너는 마음대로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갔다 

다시 절대로, 멋대로 내 안으로 오는 너를, 

가만히 참고 있지만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너는 내 시를 사겠다고 말했다.    

너에게 나를 준 것이지 무엇도 팔지 않는다

돈으로 내 시를 산다는 건, 계산을 피할 수 없는 일

꼭, 시시하게 된단 걸 알고 있던 이유였다     

그건 나만의 품위 있고 고귀한 방식

너에게만, 오직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던

내 사랑의 진심이자 마지막 표현     

아마도 너는,

나의 게으른 손길을 원했던 모양이다     

마음속 흐르던 바람도 더 대담해졌으니

이제라도 내 운명 네게 돌려줘야지 다짐했으니

너는 흔드는 바람 잠재우라고 고쳐 쓰길 바랐다    

고난의 밤이 착한 새벽을 선물로 가져다주듯

이제 내 앞에 떨어진 너라는 운명을

밤부터 아침까지 너를 도둑질한 대가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산다는 건,

훔쳐 오는 것보다 못할 때가 있는 수도 있는가 보다.

   

덧붙임 : 어둠은 모든 생각의 중심을 나 자신에게 돌아오게 해서 당장 무슨 일이라도 저질러 버릴 듯 생각을 무모하도록 몰아갔었지만, 그 어둠을 참아내고 이겨낸 자는 이렇게 밝은 빛으로 포장된 오늘의 하루를 다시 선물로 받게 된다는 걸 나는 많은 날을 지나온 뒤에야 조금 알게 되었다. 생각의 시초는 언제나 밝은 빛의 새벽을 안겨 준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은 자’, 아가멤논은 꼭 그를 닮았다.     

집을 계약했다. 단 한 번 보고 나서 계약서를 쓰자고 말했다. 집을 보고 일주일 만이었다. 나는 붓고 있던 적금을 깨 내가 단 한 번 만에 ‘예스’한 집 전체의 10%만큼의 돈을 주고 두 달 뒤 내 명의가 될 서류에 내 이름 세글자를 또박또박 썼다. 집을 알아본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다 똑같이 말했었다. 꼼꼼하게 신중하게 잘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사랑도 사람도 그렇다. 그렇게 꼭 한번 만으로 좋아지는 수가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아주 간단하다. 그냥 좋으니까, 그냥 마음에 들었으니까. 지금 내가 분명하게 하고 싶은 말이란, 살 때, 인생을 살아갈 때, 신중하기보다는 과감한 편이 나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24. 나에게 참는다는 건    


어린 시절 나는

태엽 감을 때 당겨지는 힘의 무게가 좋았다

그 기분 계속 느끼려고 줄 끊어지는 줄도 모르고 

당겨지지 않을 때까지 감고 또 감았다    

줄을 놓았을 때 나는,

그 순간부터 내는 오르골 선율은

너무나도 빨리 제자리를 찾는 빠른 소리로 변해서 

손가락에서 느낀 기쁨 두 귀로 흐려지고 말았다    

어른이 된 나는

커피 갈 때 드는 힘의 무게가 좋았다

그 기분 조금 더 가깝게 느끼려 톱니바퀴 조이면 

곱게 갈린 커피는 내리는 물 오래 붙잡고

나를 기다리게 하면서도 향기마저 데리고 달아나

다 식어버린 커피만 남겼다    

똑! 똑! 똑!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는 떫은맛만 남은 채

그 좋던 것들 싹 다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톱니바퀴를 느슨하게 하면 

커피 조각의 크기도 알 만큼의 향으로

바퀴에 걸리는 소리만큼 커피로 남아 있었다    

쪼르륵! 쪼르륵!

쉽고 빠르게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향의 손을 놓지 않았으니 

뜨겁고 향기로운 커피를 만날 수 있었다.    

아!

태엽의 오르골도, 

커피의 향기도

너무 당기면 제 모습을 버리는구나!    

나는 너를,

너무 꽉 끌어안고 있었는가 보다    

한 발짝 물러나 너를 바라보니,

빛나는 이마, 부드러운 눈썹, 

그리고 촉촉한 눈망울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너에게 입맞춤도 쉬워졌단 것을    

오르골도, 향기도, 그리고 너도,

힘을 뺀 내게 더 다정한 것을.   

 

덧붙임 : 센터에 오는 길, 커피를 가는 누군가를 그려보다가 문득 이 시를 써야지 했었다. 차창의 와이퍼가 갈라놓은 빗속을 부드럽게 달리면서도 나는 오는 내내 가는 내내 생각했다. 참는다는 건 어쩌면 더 간절하게 해 준다는 걸.                                                                                                                            

25. 내가 죽인 나    


그날 밤, 나는 너를

카프카스 절벽으로 데리고 갔었다 

거기서, 가장 높은 곳의 끝에서

내 심장 한쪽에 살던 너를 떼 내고

낭떠러지로 떠밀어 죽여 버렸다    

속죄의 대가로

손톱으로 떼 낸 간의 절반으로

프로메테우스를 위로했다    

너를 죽인 나는, 다시 땅 아래로 내려왔다

에피메테우스에게로 가서, 

평생 판도라로 살기로 작정한 채로    

그렇지만, 떠나갔던 시간은 다시,

떨어진 간의 절반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간지러운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나는 웃으면서 눈물 흘렸다    

웃음의 눈물로 치장하면서

다시 또, 카프카스로 올라갔다    

어쩌면 좋을까!

내 심장의 일부였던 네가

다시, 살아 돌아와 있었단 걸    

새로 돋아난 간이 되어,

나는 네가 되어,

너는 다시 또 나로,

우리는 용기 내 재회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거란 걸    

심장은 쿵 떨어지고, 말 없는 움직임처럼

처음 너를 떠밀었던 그 절벽 아래로 

날아가는 걸 바라보면서,

그 벼랑 끝에 주저앉아 나는,

얼마나 울고 웃었던가!    

등 떠민 네게 미안해서

떼 낼 때 쓰렸던 아픔에

새로 나타난 너의 기쁨에    

나는 이제,

너를 잘 데리고 가야지

옛날, 그 옛날

몇 천 년의 아테네까지

품에 안고 데리고 가야지.

   

덧붙임 : 쓰는 것 자체가 '삶의 증거'가 되는 사람이 있다. 살다 보니, 그런 순간들이 있다. 내게 쓰는 것이 곧 인생이라고 한다면, 기개를 달리하고 씩씩하게 꿋꿋한 절개를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26. 5월    


네 마음속에 내가 시들해지면서 내시는 너에게 닿지 못한 채 쉽고 빠르게도 시시해졌다. 그립다고 생각난다고,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던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었다. 아니, 그건 단정 지어 내려버린 결론에 가까웠다. 버려버린 내 마음이 커질수록 너의 매력은 내 마음속으로 숨으면서 처음 설렘과 순수함 마저 갖고 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너를 다시 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내 마음까지 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준 것은, 너의 것이 되어있던 건지 처음 떨림은 온데간데없이 공허함이 남아 표현하기 힘든 빛들이 한데 모여 투명한 어둠만을 채워놓고 말았다. 이제 눈을 떠봐야지 이건 꿈이다. 나는 그래서 가까스로 눈을 뜨고 마지막까지 웃었다.    


눈이 내린다

초록이 짙은 가로수 가운데에 서면

온몸은 흰 눈 속으로 파묻혔다    

용기도 없이 형체도 없으면서도

나에게 달라붙어 내 전부를 만지던 그건,

나무가 온몸 흐느껴 흘린 꽃 먼지였다    

나는 속았다

초여름 꽃 먼지는 흰 눈인 채 왔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갔으나 

뜨겁던 마음이 식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이내 얼굴까지 붉어지고야 말았다    

5월은 나를 속였다

아름다울 거라고 말했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너는 없었다    

나는 흰 눈을 맞고 싶었다

이 마음 식기를, 차가워지기를

바라고 또, 바랐었다    

나는 이토록,

5월의 꽃 먼지가 반갑지 않았다

다 잊었다고, 잊어버렸을 거라고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나 보다    

구둣발로 걷던 

5월의 이팝나무 가로수 길을

이제, 잊어버리고 싶다    

여름에게 속아 넘어가고 싶다    

사랑도 초월하면 그리움도 소용없다고

또다시 설령 뜨거운 가슴이 된다 해도

그때는 사랑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니    

나는,

이 여름에게 속고 싶다.    


덧붙임 : 의심 없이, 단 한 번이라도 내 마음 온전히 보여준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만은 무엇도 나를 속여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글픈 5월, 요즘 나는 조금 힘든가 보다.                                                                                                                        

26. 그 이름   

 

내 마음을 부끄럽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은 사랑이 아니라 여긴다. 단지 궁금한 것일 뿐.  

  

하루에도 수십 번,

그 이름을 노트에 썼다

그렇게도 소녀는

그 이름으로 그렇게 시를 썼다    

아!

아무리 불러봐도

짧은 대답 한마디가 없구나    

소녀는 차라리 이제부터

귀머거리가 되면 좋겠다고 바란다    

하지만 귀 대신 눈이 먼 소녀는

손에서 노트를 멀리했다    

이제 모래 위를 만지며 그 이름을 새겼다

쉬운 바람에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길,    

소녀는 이제,

그 이름을 물 위에 단 한 번 써 보았다

그리고,

물속에다 모든 걸 묻어버렸다

그 이름까지 물속에다 가두었다    

흘러가는 물은 노트의 시선보다, 

모래 밖 바람의 소리보다 쉽구나    

안녕, 그 이름이여!

이제 허공에도 쓰지 않으리    

노트는 작은 시집으로 남았다

다시는 노트를 열어보지 않으리니.      

  

덧붙임 : 지난 주말에도 비가 내렸다. 나는 그때 똑같은 의자에 앉아서 똑같은 노트에 똑같은 펜으로 글을 썼다. 틀려도 지우지 않을 시를 쓰고, 읽어서 웃음이 날 만큼, 그저 그렇다 하여도 고치지 않을 시를 쓴다. 그건, 내 마음이 고치지 말라고 시키는 이유이다.    



27. 너만 있다면    


오월이 지나간 정원 울타리에는

져버린 넝쿨장미만이 남았다    

구름 없이 푸르기만 했던 하늘 아래는

말라버린 호수만이 남았다.    

나에게 너만 있다면,

시든 넝쿨장미 한 송이로 

만발한 수백 송이의 장미꽃을 볼 수 있으리    

나에게 너만 있다면,

마른 호숫가가 손짓하는

반짝이는 물의 일렁임을 볼 수 있으리    

나에게 너만 있다면,

미래의 수천 가지 기쁨의 기대 없이

당장 한 가지 기쁨만으로도 행복할 텐데    

나에게 너만 있다면.                                                                                    

편지로 할게요    

사랑을 말할 수 있으려면

참고 견딜 줄 알아야지    

거의 체념상태에 다 달았을 무렵,

비로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일거야    

그래서 산다는 건

기다리는 일인 가봐    

그러니까, 끝까지

미소를 보여야 하는 건 가봐.  

  

덧붙임 : 자격도 없으면서 바라는 건 미안한 일인 줄 알고 있는 내가 미워지는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가장 사적인 고백의 형태인 편지를 썼다.                                                                                                         

28. 5월의 바람    


들장미 소녀를 사랑했어요, 괴테는.

소년이 그 꽃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 싫었던 그는

찌르겠다던 소녀의 경고도 들은 채 만 채

그만 꽃을 꺾고 말았어요

이내 들장미 소녀는 시들어버렸죠    

만인의 연인 루를 사랑했어요, 릴케는.

눈 귀 멀어도 그녀를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팔다리가 부러져도 가슴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안아주겠다고 맹세했어요

사랑에 심장이 멎으면 그녀의 피 속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겠노라 다짐했었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에 속한 몸이었죠    

그 절름발이 걸음조차 눈부신 까미유를 사랑했어요, 로댕은.

그녀의 재능만큼의 사랑은 이길 수 없었기에

생각하는 사람을 창조할 수밖에는 없었죠    

사랑했던 연인과 이룰 수 없었던 인연,

괴테와 릴케와 로댕의 몸부림은

가난한 시인들에게조차,

그들이 천재라는 걸 알게 해 주면서 

삶의 커다란 고통으로 남게 되었죠    

나는 지금 그를 감추고 있어요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바라는 한 가지, 

이걸로 견딜 수 있어요

그에게 마음껏 사랑받고

사람들에게서 영원히 잊히기를요.

   

덧붙임 : 5월의 햇살이 아무리 눈부시게 공평하여도 골고루 빈틈없이 모든 곳을 밝혀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바쁜 와중에 불현듯 떠올랐던 생각을 글로 써 두는 거에 내 삶에 얼마나 큰 기쁨이며 활력소가 되는 줄 알게 되었다. 그건 마치, 애연가에게 담배와도 같은 것이라는 걸.     

       

29. 정말로 비가 올 줄 몰랐네    


저기 당신이 보이는군요

나는 당신이 나를 위해

이 빗속을 달려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온 마음이 기쁨이 되어 푹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보자마자,

그대에게 곧장 달려갑니다    

아!

나의 키스를 받기에 충분한 그대여,

나는 그대의 표정과 몸짓으로 

나를 향하는 그 마음을 믿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그대!

빗물이 이렇게도 기쁨이 될 줄을 몰랐던

이전의 나는 아니란 걸,    

그대가 눈을 뜨면

나의 어둠이 온통 환한 빛으로 바뀐 듯

이 비마저도 내겐 기쁨이 되네요.   

 

덧붙임 : 협상을 가장 잘하고 협력을 잘 유지해서 항상 최상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그건 나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며 자기애를 페스트라고 말했던 파스칼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의 시작은 바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며 결국 내가 바라고 원하고 갈망하는 꿈을 이루는 출발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성실하고 진지하며 무엇보다 근면함으로 실천한 나 자신과의 협상은 분명히 긍정적이며 밝은 결과를 안겨다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기심과 자기애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서 한 자리에서 잘잘못을 가려낼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자기애가 부족한 사람은 이기적이기 쉽다.    

30. 여름의 선물    


포도나무에 꽃이 피어나서

과일의 싱그러움을 차려입고

소녀는 정원으로 나갔어요

여름이 왔기 때문이에요    

포도넝쿨 아래

게으른 봄볕에서 살이 찐 이파리는

작은 얼굴 가려줄 만큼의 그림자로

소녀를 맞았어요    

그늘 아래 여름 볕을 밀어내고

소녀는 눈을 떴어요

그리고 보았어요

바늘같이 쏟아진 여름 볕에

찔려 죽은 줄 알았던 포도 꽃들이

포도송이로 변하고 있는 걸요    

안심한 소녀는 눈을 감았어요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보고 싶었죠    

그렇게 감은 눈을 또 감고

긴꼬리 제비 나비를 만났어요    

수줍던 봄의 동쪽에서 날아와

너그러운 여름 서쪽에 앉아 있는

날개를 곱게 접어 모은 나비는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

두 손 꼭 모은 소녀였어요    

나비는 

봄을 의심도 없이

여름의 확실함을 모른 채

가을 결실의 기다림도 없어서

애타는 간절함을 몰랐죠    

그래서 지난여름

포도에서 꿀만 따먹고 

서둔 날갯짓도 필요 없이 

소녀를 잔뜩 희롱하며

잔인한 늦가을로 사라졌죠    

소녀는 눈을 떴어요

그리고 포도 꽃을 보았죠

또 다시 그 나비를 마주칠까봐

더는 정원에 머물기 싫어졌어요    

아!

사랑이란 정령 포도열매 같은 것인가요

그리 주는 것만 알아야 하는 건가요    

만일 당신이 은으로 된 반지를 준다면 

나는 황금을 드리겠어요    

아!

계속되는 포도송이같이

내 손에 쥔 펜에서도

그대를 향하는 사랑의 말이

끝없이 넘쳐날 수만 있다면.    


덧붙임 : 6월이 되면 더 넓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흠뻑 젖도록 땀을 흘렸어도 바람의 한숨으로 한 번에 마를 수 있도록. 여름은 그래서 너그러운 계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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