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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pr 23. 2024

슬퍼함이 같지가 않아.


세상에는 기쁜일도 많지만 슬픈일도 많아. 동정. 분노 역시도 슬픈일 카테고리로 보는게 맞겠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기쁨 보다는 슬픔이 조금씩 더 많아지는게 인생인것 같기도 해. 같은 세상인데도 커갈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슬픔이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거야.


함께 기쁘고 함께 슬플때도 있지만 남이 슬퍼야 내가 기쁘고 내가 슬픈걸 남이 기쁘게 생각하기도 해. 기쁨과 슬픔을 어떻게 나누고 배분하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고 각자 성향대로 갈길이 갈라지기도 해.



슬픔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슬픈데도 막 아름다운거 사람들은 그런걸 좋아해. 실연의 아픔을 노래하는 발라드가 그런거야. 슬픔에서 감동받는 경우도 많지. 위안을 받거든.


그 반대가 분노를 유발하는 슬픔들이야.


분노함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 보다는 바라보고 순화됨이 곧 슬픔으로 표현돼. 이 나라엔 그래서 슬픈일들이 많은거야. 과거엔 ‘한(恨)’ 이 나라 민중의 대중적 감성 이었는데 그나마 많이 발전한거야. 판소리 들어봄 알잖아. 심장을 긁어대는 한이야 말로 두말할 필요없는 슬픔 그 자체지. 왜 그런 슬픔과 한들이 발생하는지 이유를 알아야만 되돌이를 멈출수 있다네..



슬픔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데 연민. 동정. 경멸. 분노등 다양해. 반대로 타인의 불행앞에서 슬픔이 아닌 우월감을 만끽하면서 자비를 자랑하고 연수 이력 쌓는다 사진찍고 즐기는 부류도 있어. 수해현장에서 반지하방 쭈그리고 들여다 보고 못사는 동네 찾아가 다 큰 아이 안아들고 사진찍고 홍보하는 그런건데 할렐루야 그런거 즐기다 피납돼서 가끔 외교문제도 일으키고 그래. 그들에게 있어 타인의 가난은 오지탐험 같은 관광코스의 즐거운 낭만일 뿐이야.


https://brunch.co.kr/@yemaya/1478


기득권은 그런걸 사랑이라 포장하고 테레사를 성녀라고 대중들에게 추앙하라 요구하지. 내 취향이 아니므로 난 그런 포장술에는 감흥이 생기질 않아. 그들의 우월감 가득한 즐거움과 기쁨이 나에겐 안쓰러운 슬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야. 타인의 불행과 같이 생활하며 감정을 공유하고 진정한 봉사를 행하는 분들은 누구나 그냥 알수있어. 일정 따라 사진찍고 다닌다고 나댈일이 없는거지.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고 축하해야 하는데 안쓰러움과 동정심으로 슬픈 탄생도 무수히 많음을 보니까 애 낳는것도 꺼리는 세상이야. 험난한 세상에 태어남을 축하하고 기뻐해야 하는건지 동정해야 하는건지..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공존하는 감정이 그런건가 싶네.


같은 사건을 놓고도 기쁨과 슬픔이 마구 뒤섞인 혼탁한 세상이 된것은 무엇이 문제일까?  



적어도 슬픔이 항상 나쁜것만은 아니란것. 슬프다는건 이상한 세상에서 지극히 정상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궂이 거부하거나 피해서 도망칠 이유도 없는거라.


어두운 세상속에서 진정한 슬픔을 발견할때의 기쁨도 있으리라. 신성의 사랑이 그러하고 진리란게 그래서 흔히들 어둠속의 ‘빛(Light)’ 이라 말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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