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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Jul 27. 2024

나의 한심한 사랑에게

어떻게 해도 세상에 나와야 했던 거라면



우리가 닮은 점은

시도 때도 없이 다리를 척 벌리고

그 사이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일출은 일몰이었고

일몰은 속임수였습니다


음모를 캐느라 잠을 못 잤고

대낮엔 앞가림을 못했지요


또 우리는


첫걸음을 뗄 때부터

뒷걸음질을 했습니다


우리는 눈이 하나밖에 없었고

배신은 언제나 뒤에서 왔으니까요


마중 나가면

봐줄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해도 세상에 나와야 했던 거라면

같은 배를 타고 올걸 그랬습니다

제조일자가 다른 시계로는

아무래도 시차가 맞질 않아


회귀


요즘도 생활이란 게 어렵습니까

닭의 울음은 여전히 권태롭게 들리나요

저는 부끄러움을 많이 먹었습니다

입에서 수치 맛이 나요

무덤처럼 부푼 배가 터지기를


사랑아


전송을 실패한 메시지가

자서전이 되어갑니다


자기 전엔 배내옷을 입어요

요람은 없는데 울기는 하고요


꿈을 취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


당신과 같은 배를 타고

웅크려 자는 꿈


당신이 나를 베고 눕거나

내가 당신을 베고 눕거나


우리는 건강합니다


한 사람의 무게를 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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