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팔뚝으로 툭 쳤다. 대학교 남자 동기 녀석이었다.
"야 너는 왜 맨날 학교에서 자냐? 자려고 학교 오냐?"
무심히 말하는 듯 보였지만 나에게 꽤나 큰 상처가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상황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서러움과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가슴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자는 게 예의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허리를 폈다.
"그러게. 어젯밤을 새웠더니 나도 모르게 잠들어버렸네."
친구는 내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정신 차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엄마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자립에 목말라 있었고, 20년간 키워준 엄마에게 용돈을 가득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 했다. 그래서 하루에 10시간 일하고 6시간 학교에 있다가 4시간 정도 쪽잠을 자면서 생활했다.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졸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 속에 눈꺼풀을 감지 않으려 노력하는 내 마음도 모르고 한마디 내뱉는 친구 녀석이 미웠다. 낮아지는 자존감에 그 녀석이 일조한 셈이었다. 길게 늘어진 다크서클에 비몽사몽 좀비처럼 다니는 내 모습이 그날따라 더 싫었고 부끄러웠다.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곧바로 서랍을 열어 통장을 꺼내 보았다. 통장에는 고등학교 졸업한 후로 꾸준히 모았던 500만 원이 있었다. 살면서 가장 많이 쥐어 보는 돈. 그 돈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뿌듯함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 돈 때문에 오히려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 왜 이렇게 살고 있지?'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내 소중하고 생명력 있는 것들을 모두 팔아 돈으로 맞바꾼 것 같았다. 꿈도 희망도 없이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보였던 무기력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욱 생기 없고 아파 보였다.
나는 그대로 뛰쳐나가 은행을 찾았다. 그리고 곧장 적금을 깨고 500만 원을 엄마에게 보냈다. 1년간 집착했던 것을 놓아주는 마음으로 돈을 떠나보냈다. 언젠가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던 부유한 삶, 그것의 시작이라 생각했던 중요하고도 특별했던 적금통장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 욕심을 놓아주니 홀가분했다. 동시에 아등바등 살았던 지난날이 떠올라 허무하기도 했다.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조차 몰랐기에 이것저것 도전해볼 수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곧 지인들이 안정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것이 부러워졌다. 조바심에 다시 알바라도 구해보았지만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쓸쓸했던 밤에는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했다.
'원래 삶이 이런 건가? 나만 이렇게 괴로운 걸까?'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여전히 어떤 게 행복한 삶일지,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 채로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있다. 불안하고 아리송한 순간의 연속이다. 그저 지난 3년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나에게도 남들에게도.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500만 원을 손에 쥐고 울던 날보다 값진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돈 욕심을 놓아버리던 그때처럼 살아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어렵지만 계속 도전하고 있다. 나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쯤 일을 놓아버리고 자유롭게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루빨리 나를 규정해버린 가격표를 떼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