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Sep 13. 2024

12월

* 카레  


12월의 첫 주일, 교회가 두세 번 엎어지면 닿을 거리지만 너무 추워 차를 끌고 갔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식당 밖에 줄을 서 있다. 

이 추위에 뭘 먹으려고 밖에서 기다리는 걸까? 카레 가게다. 카레라면 그럴 수 있겠다. 

겨울과 카레는 최고의 한 쌍이다. 오늘 저녁은 카레를 만들어야겠다. 

카레처럼 간편한 음식도 흔치 않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 아무거나 잘게 썰고 물 넣고 오래 끓이다 카레가루를 풀면 끝이다. 

마지막에 코코넛 오일 두 스푼을 첨가하면 풍미가 깊어진다. 고기는 없어도 된다. 

야채와 고기보다 중요한 건 카레가루다. 이런 저런 카레가루를 써봤지만 정착한 건 일본 S&B에서 나오는 고체 카레 조각이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카레를 한 국자 떠서 밥 위에 얹은 후 비벼 먹는다. 밥 대신 우동 사리를 넣으면 우동 카레가 된다. 

카레 한 숟가락, 김치 한 젓가락. 겨울밤이 따뜻해진다.       

    


* 귤  


‘오늘 아침 학교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 아니 벌써 귤이 나오다니.’ ‘귤’이라는 멋진 노래가 있다. 재주소년이 불렀다. 귤이 풍성해지는 계절이다.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 황금향, 진지향. 다양한 품종이 있지만 손이 가는 건 역시 평범한 귤이다. 

새콤달콤하고 과즙 많은 귤이 아침 식탁을 채운다. 겨울엔 제철과일이 많지 않다. 겨울 귤이 반갑고 고마울 수밖에. 

5kg짜리 귤 한 박스를 사도 2만원이면 충분하다. 동글동글 깜찍하고 어여쁜 귤. 15kg짜리 귤 한 박스를 주문했다. 지인들과 귤을 까먹으며 실컷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 알배기 배추


미니 배추를 한 통 샀다. 쌈배추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작아도 배추는 배추인지라 엄마에게 반을 나눠줬다. 엄마는 알배기 배추를 잘게 채 썰어 간장과 참기름으로 버무렸다. 고소하고 달콤한 배추 샐러드가 입맛을 돋운다. 

나는 배추를 큼직하게 잘라 샤브샤브 냄비에 넣었다. 느타리 버섯, 양송이 버섯, 새송이 버섯, 표고 버섯, 청경채 틈바구니에서 노란 배추잎이 화사하다.

 남은 배추 잎은 다음날 부침가루에 살짝 묻혀 기름에 지졌다. 단 한 장의 잎도 버려지지 않았다.  


         

* 대설  


일년 중 가장 눈이 많이 내린다는 대설이지만 낮 기온은 14도까지 올라 포근하다. 

첫눈 이후 눈이 펑펑 내린 적이 없다. 

한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스키장갑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눈사람 만들 때 쓰면 딱 좋다. 

스키장갑을 끼고 집 앞 공원에서 눈덩이를 모아 굴린다. 작은 눈사람 하나 만드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공원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동네 아이들도 모두 나와 눈사람 만드느라 바쁘다. 

눈을 뭉치고 또 뭉친다. 큰 덩어리 위에 작은 덩어리를 얹은 후 나뭇가지를 양 옆에 꽂는다. 

어설픈 눈사람이 완성되면 공원 한쪽에 세워두고 매일 보러 간다. 겨울이 좀 더 깊어지면 큰 눈이 내리겠지. 눈을 맞으며 눈사람 만들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슈톨렌 


 12월이 되면 독일식 케이크인 슈톨렌을 만든다.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한달 전부터 일요일마다 가족들과 한 조각씩 나눠먹는다고 한다. 

하얀 슈가 파우더가 소복이 덮인 슈톨렌은 눈 쌓인 나무토막처럼 보인다. 

빵 속에 들어가는 건과일 만드는 작업이 까다롭다. 

내가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오렌지를 잘 씻어 얇게 채 썬 후 팔팔 끓는 물에 5분씩 두 번 삶아준다. 이 과정을 빼먹으면 나중에 빵이 완성되었을 때 오렌지 필이 딱딱해져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경험해 봐서 안다). 냄비에 설탕과 물을 섞고 오렌지 껍질을 넣은 후 한 시간 졸인다. 

오렌지 필이 완성되면 유리병에 넣는다. 건포도를 섞은 후 그 위에 럼을 붓는다. 냉장고에 넣고 최소 일주일은 숙성해야 풍미가 우러난다. 이 작업만 끝나면 나머지는 할만하다. 

슈톨렌을 굽는 당일에 앙꼬로 쓸 마지팬을 만든다. 슈가 파우더와 아몬드 가루를 1대 1로 섞어 잘 버무리면 된다. 

호두, 피칸, 아몬드, 마카다미아, 캐슈넛을 오븐에 넣어 10분 구운 후 식혀 자른다. 럼에 절인 건과일과 견과를 반죽과 섞은 후 동그랗게 빚은 마지팬을 넣어 오븐에 넣는다. 

잘 구워지면 녹인 버터를 빵 표면에 바르고 슈가 파우더를 솔솔 뿌린다. 버터에 한 번 더 담근 후 다시 슈가 파우더를 뿌린다. 

이제 다 되었다. 랩으로 꽁꽁 감싼 후 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키면 된다. 한 달은 넉넉하게 보관 가능하다. 

냉장고에는 완성된 슈톨렌 다섯 개가 들어있다. 재료비와 노동 시간을 생각하면 빵집에서 사는 게 현명하다.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기쁘게 받을 분들을 생각하면 매년 오렌지 껍질을 벗기게 된다.           



* 이상기온


친척 동생이 사제 서품을 받는 날이다. 온 친척이 강릉에 모였다. 이상 기온 현상으로 나라 전체가 봄날 같은 날씨였다. 

12월인데 낮 온도가 19도다. 올해는 50년 만에 가장 뜨거운 한 해라고 한다. 

서품식이 끝나고 사천 바닷가를 맨발로 걸었다. 코트도 필요 없었다. 바닷바람이 봄바람처럼 느껴졌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다는 게 이럴 때 느껴진다. 기후 변화가 고장 난 롤러코스터 같다. 

극한 추위와 극한 더위, 극한 호우와 이상 태풍이 심심찮다. 

이틀을 강릉에서 보낸 후 올라온 다음 날부터 기온은 뚝 떨어졌고 강릉엔 폭설이 내렸다. 

지구가 아프긴 아픈가보다.          



* 송년회 


교회 지인들과 우리 집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각자 가져온 음식이 식탁 위를 가득 채웠다. 

케이크를 자르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서가 왔다. 

한 해 되돌아보기. 40대 여성 7명이 둘러앉아 한 해 있었던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모임에 참석한 대부분이 부모님 혹은 자식이 아프거나 다쳐 수술했던 사건을 언급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가족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올 여름 엄마 손목이 골절되어 수술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시아버님도 교통사고를 당해 발목 수술을 해야 했다. 

그 당시는 무척 힘들었는데 괴로운 시간도 결국 지나갔다. 한 해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열심히 살아온 서로에게 응원을 보내며 한해를 마무리했다.     


     

* 한파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영하 15도. 밖에 나가자마자 몸이 움츠러든다. 100미터 걷는 것도 쉽지 않다. 

동네 한 바퀴를 돌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집안 공기도 달라졌다. 

보일러는 계속 돌아가지만 쉽사리 내부 온도가 오르지 않는다. 

집에서는 최대한 가볍게 입고 싶지만 한겨울엔 어쩔 수 없다. 

두툼한 플리스 집업 자켓과 기모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두꺼운 양말을 신는다. 두 손은 여전히 시리다. 

장갑을 끼고 타이핑을 해야 하나? 

일주일 내내 한파가 지속된다고 한다. 세탁기가 동파될까봐 걱정하는 지인도 있다. 

거리도 꽁꽁 얼었다. 길을 걸을 땐 바닥을 잘 살피며 걷는다. 차를 운전할 땐 속도를 낮춘다. 

아침에 일어나면 천천히 몸을 푼다. 야채를 다져 오래오래 스프를 끓인다. 추울수록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려 노력한다.           



* 성탄절  


성탄절 아침, 흰 눈이 사박사박 내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12월이 되면 캐럴과 트리로 화려함이 점점 고조되어 가다가 막상 성탄절 아침이 되면 온 세상이 고요해진다. 하얀 눈을 맞으며 예배를 드리러 간다. 가는 길이 행복하다. 

예수님 탄생을 기뻐하며 주일 학교 아이들과 블루베리 머핀을 나눠먹는다.

아이들은 오후에 눈싸움을 할 거라며 신이 났다. 

집에 와서 파인애플 업사이드다운 케이크를 굽는다. 예상했 것보다 맛있어서 당황스럽다. 

우리끼리 먹기엔 아깝잖아. 옆 동 사는 남편 회사 동료에게 한 조각 나눠준다. 

경비실에도 갖다 주고, 조카들에게 줄 것도 남겨 놓는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이전 12화 11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