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귀 해변
잔지바르의 해변들은 소문대로 경치가 예술이다. 특히 신혼여행으로도 많이 온다는 능귀 해변은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기기 힘들 정도로 그 풍경이 아름답다. 물은 맑고 하늘은 푸르다. 그 뒤에 있는 나무들은 초록빛이고 밟고 있는 모래알은 곱다.
밀려오는 바닷물이 아슬아슬하게 닿을듯한 거리에는 거대한 파라솔과 지푸라기로 지어진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다. 이곳에서는 늘 버터향을 품은 고소한 랍스터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온다.
하지만, 대학생 배낭여행자에겐 사치였다.
도무지 참을 수 없는 향에 혹시나 해서 주머니를 뒤적거려보지만, 나에게 잔소리라도 하듯 작은 동전만이 찰랑거릴 뿐이다.
‘랍스터는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고 생각을 삼키며 해변 뒤쪽으로 걸어 나왔다.
모래알이 점점 단단해지더니, 울퉁불퉁한 길이 나온다. 작은 건물들이 보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갔고, 외관은 파라솔로 멋을 낸 레스토랑만 못해도 음식 맛만큼은 랍스터 못지않은 로컬 음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골목 어귀를 걷기 시작했다.
담벼락에는 언제 널었는지도 모르게 이미 말라버린 이불들이 막되게 널려있고, 뙤약볕을 피해 그늘 아래서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조금 더 들어가니, 연보라 빛의 예쁜 드레스를 입은 꼬마 아이가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바닥에 미처 닿지 않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일까?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려하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린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손으로 카메라를 가리킨다.
사진이 궁금한가 보다.
카메라보다 작은 손에 카메라를 쥐어주며 화살표 방향을 넘겨보면 된다고 하니 작은 바위에 앉아 한동안 이런저런 표정으로 내가 찍은 사진을 본다.
옆에 슬쩍 다가가 쪼그려 앉아 아이를 보고 있자니, 표정이 좋지 않을 때는 약간 떨리기도 한다. 그러다 썩 괜찮은 표정으로 오랫동안 한 장만 바라볼 땐 그 사진이 마음에 드나 싶어 뿌듯하기도 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테스트에 가까운 구경이 끝나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 걸어간다. 그 아이의 뒷모습을 마중하고 골목 주변을 슬며시 걷다 해변가로 돌아오니 뜨거웠던 모래가 식어간다.
능귀 해변의 노을 지는 모습을 놓치지 말라는 어느 여행자의 조언에 따라 랍스터를 팔던 레스토랑의 끝자락에 위치한 테이블을 잡고 앉았다. 랍스터는 못 먹어도 망고주스 한 잔 정도는 너끈하니 대학생다운 사치를 부려볼 참이었다.
종업원에게 메뉴판에 있는 망고주스를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조금 기다리니 그리 차갑진 않지만 걸쭉한 망고주스가 빨대를 품은 채 나온다. 한낮에 달아오른 열을 단번에 내리기에는 부족했던 좁은 빨대를 내려놓고 잔을 쥐고 들어 목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날이 선 턱 앞에는 망고색 빛을 띤 태양이 하루를 마치고 열을 식히러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좋은 하루였다. 눈도 마음도, 풍경도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