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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Nov 10. 2019

그대가 내게 살았었던 날들

넌 나에게 매일 첫사랑 #7




모든 사람에게는 사랑 탱크(love tank)가 있고 자신에게 맞는 사랑을 공급받지 못하면 사랑 탱크는 고갈되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

사랑을 소통하려면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며 이는 의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게리 채프만의 <5가지 사랑의 언어>


이현에게 사랑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스킨십,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그 당시에 이것을 알았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 수 있었을까?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시작만 되고 나면 그다음은 시간에 맡기면 된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시간이 나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우리의 아지트일 때도 있었지만 모텔일 경우가 많았다.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마다 그의 집이 비어있지는 않으니까.


우리는 우리만의 싸인을 정하기도 했다.


"하고 싶다는 말 대신, 우리 약속을 정하자."

"좋은 생각. 뭐가 좋을까?"

"음... 즐겁게 노는 거니까 놀이터 어때?"

"놀이터? 좋은데? 놀이터 가고 싶어, 이렇게?"

"응. 좋다, 좋아."


나의 몸은 이현의 놀이터였고, 이현의 몸 역시 나에게 놀이터였다. 우리는 서로의 놀이터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뿐 아니라 서로의 몸을 이해하는 것도 사랑을 지속하고 키우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알게 된 이상 멈출 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봉만대 감독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는 남주인공 동기의 페니스에 초콜릿을 바르고 여주인공 신아가 그것을 먹거나, 등받이가 높은 고속버스의 뒷칸에서 동기의 지퍼를 열어 펠라치오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 느낌일지는 확인해 보아야 알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초콜릿을 바르고 해보기도 하고, 실험정신을 가지고 목캔디를 물고 해보기도 했다. 입 속에서 느껴지는 허브의 화한 감각이 그에게도 느껴지는지 알고 싶었다. 함께 샤워하면서 선 채로 삽입하는 것은 과연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한지 시험해보기도 했고, 욕조 물속에서 삽입이 가능한지도 직접 시도해 보았다. 어떤 것은 자세가 안 나와서 어떤 것은 아예 삽입이 힘들어서 실패하거나 생각한 만큼의 효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고 확인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도 가슴이 벅찼다. 영화 속 장면으로 대리만족이 아니라 상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어두운 카페에서 펠라치오를 해준 적도 있다. 그의 다리를 배고 누워 그의 가랑이 사이에 손을 얹고 쓰다듬다가 그의 성기가 딱딱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지퍼를 내리고 그 안으로 손을 어넣었고 놀란 그는 얼른 담요를 덮었다. 동굴이 생기자 담요 속 나는 더욱 대담해졌다. 그러다 보니 펠라치오까지 하게 되었던 것인데, 남들이 보기에는 남친의 다리를 배고 잠든 여친, 그리고 잠든 여친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자상한 남친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스릴과 쾌감을 동반한 그 상황에 그는 당연히 매우 흥분했지만 움찔거리는 것 외에는 신음소리도 낼 수 없어 힘들어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몸 떨림을 즐기는 것이 재미있었다.


호기심 많은 청춘이었다. 


우리의 섹스는 꼭 오르가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현과 나의 몸이 하나로 합치되어 내 몸이 이현의 것인지 내 것인지 모호해지는 순간을 즐겼다. 그도 나도 서로가 처음이었지만, 서투른 섹스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삽입 자체에 흥분감을 느끼기보다는 전희에서 흥분했다. 그리고, 삽입해서는 신음소리를 가장했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실제로 그와의 몸 놀이에서 오르가슴을 느낀 것은 두 번이었다. 나는 그랬다.


자취를 하게 되었던 나의 방에서 혼자 남게 된 첫날밤. 원룸의 문을 열고 어떤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다짜고짜 나를 덮쳤고, 나는 저항하려고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겨우 소리를 내뱉었을 때야 비로소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가위눌림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나는 울었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택시를 타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내게 왔다. 울며 그를 안았고 나란히 누워 서로의 이곳저곳을 쓰다듬었다. 공포를 느낀 후의 섹스는 잊을 수 없는 감각을 남겼다.


밖에서 만날 때는 주로 대실을 했지만, 처음으로 함께 아침을 맞이 한 적이 있다. 당연하게 섹스를 했고, 우리의 섹스는 즐거웠다. 하지만 그보다 아침을 함께 맞을 수 있다는 것이 그토록 벅찬 감정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 잠깐, 결혼을 하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잠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만약에, 라는 전제를 걸고.


"피곤하면 좀 쉬고 갈래?"라는 말이 나를 걱정하는 그만의 표현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섹스에 떳떳하게 구는 쪽도 아니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끄러운 사랑의 몸짓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 같아 걱정이 많았다. 대실 요금을 지불할 때면 가급적 주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고 엘리베이터에서도 최대한 cctv를 등지고 섰다. 그리고 그곳을 나올 때면 거리의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내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였고, 남자 친구와 이런 만남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실 부모님께는 불효를 저지르는 같은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어쩐지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연인 사이에 사랑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사랑의 결과가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콘돔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주로는 자연피임법에 의존했던 우리는 시기상 가끔 아슬아슬한 사랑을 나눌 때가 있었다.


"혹시... 임신되면 어쩌지...? 만약 그렇게 되면 오빠는 어떻게 할 거야?"


답을 원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두려움의 넋두리였다.


"지현이가 원하는 대로 따를 거야."


임신을 하게 되어 피치 못할 결혼을 하게 된다고 상상하면 아찔하다. 이현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와 결혼을 해야 하는 건지는 분명치 않았다. 나에게 결혼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서로의 몸에 머물렀던 시간들소중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관계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취업 걱정이 그랬고, 임신에 대한 우려가 그랬다. 몸의 대화가 자연스러워지는 대신 조심스러움은 사라져 갔다. 정액이 든 채 말라비틀어진 콘돔을 방바닥에 그냥 내던져 둔 채로 자취방을 떠난다든지, 원하지 않음에도 원하는 이현을 대할 때가 그랬다. 시무룩한 이현을 보내며 "오빠는 나랑 자려고 만나?"라며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이현의 사랑 탱크가 스킨십이었다면 그의 사랑 탱크는 점점 황폐해져 갔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도 여러 가지 현실의 벽 앞에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임신'이라는 벽 앞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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