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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Nov 11. 2019

부디 그대 나를 잡아줘

넌 나에게 매일 첫사랑 #8



첫 소변이 가장 정확하다고 했다. 정말 급할 때는 사후피임약이라도 먹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테스트기를 가지고 들어갔고,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그에게 보여줬다.


"그날이 아니었잖아.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언제였는지가 중요해?"

"아! 그래 그래, 미안해."


그도 어렸다. 나도 그랬고. 지금 생각하면 그도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지현이가 원하는 대로 따를 거야"라는 말을 내가 떠올릴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가을이었다. 임신을 알게 된 순간부터, 살이 오르고 아랫배가 더부룩한 것 같고 잠쏟아졌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느낌을 달고 살았다. 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는 그에 대해 아무 답이 없었다. 아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일 테지만, 그때는 나만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 같아 외롭고 동시에 화가 났다.


"어떻게... 하고 싶어?"

"어떻게 하긴. 당장 수술해야지."


죽었으면 죽었지 부모님에게 알릴 자신은 결코 없었다. 나의 대답에 이현은 안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닮았다면 긴 속눈썹을 가진 아이이겠지?'라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었지만, 마주친 현실 앞에서는 그 아이를 만날 자신이 없었다. 내 코가 석자인데 얼굴도 모르는 생명을 걱정하는 것은 사치였다. 움직이든 울든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닌 이상, 생명이라는 인지도 그 처분에 대한 미안함도 알 리 없는 나이였다. 그저 그 상황이 두려웠고, 아플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나만 아픈 것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사랑한 결과가 왜 이렇게 한쪽에만 잔인할까 생각을 했다.


수술대 위에 누워 배를 움켜쥐고 울었다. 그는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아 수술비를 계산했고,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종각에서 만났다.


그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리곤 그의 대답을 듣지 않고 일어나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가 먼저 도착해 있다. 택시를 타고 온 모양이다.


그는 울고 있었다.


"지현이를 만나기 시작했을 때 다짐한 게 있었어. 지현이가 원하면 언제든 놓아주자고. 그렇게 마음먹었었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안돼."


사실, 이 일은 그 혼자만의 잘못이 아님을 안다.


그럼에도 그를 계속 만나면 또다시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변함없는 관계가 나의 발목을 잡게 될까 봐, 미래의 큰 그림도 없는 우리가 계속 만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확신이 없었고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게 될까 봐, 그것이 두려웠다.


그를 안아주었다. 나의 첫사랑이 어깨를 들썩이고 울고 있으니까. 먼저 헤어지자고 해놓고도 울고 있는 그를 보니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그는 지금 얼마나 더 힘들지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으니까.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별을 고하면서도 그가 나를 잡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댄 다 잊었겠지  내 귓가를 속삭이면서 사랑한다던 고백  
그댄 알고 있을까?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또 얼마를 그리워해야 그댈 잊을 수 있을지  

난 그대가 아프다  
언제나 말없이 환히 웃던 모습  못난 내 성격에 너무도 착했던 그대를 만난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생각해

난 그대가 아프다  
여리고 순해서 눈물도 많았었지  이렇게 힘든데, 이별을 말한 내가 이 정돈데  그대는 지금 얼마나 아플지...

나 그대가 아프다  
나 그 사람이 미안해  나... 나 그 사람이 아프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에피톤 프로젝트>




익숙함은 지루함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그가, 그리고 그와의 만남이 새롭지 않았다. 데이트의 패턴도 비슷했고, 새로운 섹스를 시도하는 것도 시들시들해졌다. 조심스런 생각으로 하다 보니 순간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신선함 대신 익숙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밖에서 데이트를 하면 이현은 옆구리에 자신의 팔을 둘러 나를 안고 때때로 가슴을 쿡하고 찔렀다. 때마다 나는 이현이 몸을 여기고 있는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익숙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취방에서 함께 지낼 때 마치 신혼살림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함께 장을 보고, 정리된 방에서 함께 음식을 먹었다. 원룸이었지만 햇빛이 들어왔고, 향기가 나는 이불을 덮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함께 잠을 자고 난 아침, 그를 남겨두고 출근할 때면 그는 나의 방을 청소해두고 가기도 했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깨끗이 정리된 방과 사랑이 담긴 쪽지가 놓여있었다.


여보.

간만에 힘들게 청소를 해놨으니 유지해 주기를 바래^^

바나나는 혹시 몰라서 냉장고에 넣었어. 이번에는 상할 때까지 두지 말고 잘 먹어. 물 없어서 끓였으니까 살펴보고 식었으면 냉장고에 넣고. 상 위에 물건들하고 이불 옆 옷들의 정리는 여보에게 맡길게.

퇴근해서 이 글을 볼 때쯤이면 힘든 하루가 끝났겠지?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했어. 다음 보는 날까지 밥 잘 먹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럼 안녕.

20XX.09.18 PM 4:36 이 현


그렇게 자상한 이현이었기에 하루를 온종일 같이 보내도 헤어질 때면, 이별이 아쉬워 그를 붙잡고 "가지 않으면 안 돼?"냐며 애원하기도 했다. 어쩌면 혼자 남겨지는 외로움이 싫어 그를 잡아두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나의 부탁을 대부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점차 그 역시 거절의 횟수를 늘려갔다.


한 번은 자취집 열쇠를 부모님 댁에 두고 온 날이 있었다. 세컨 키를 가지고 있던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나에게 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근처 동료의 집에서 자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지 안부 전화 조차 없이 그날 밤이 지나갔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도 전과는 분명 다른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자취생활을 시작할 즈음, 그도 안산 공단의 어딘가에 취업을 했다. 대학 졸업을 하고서도 공장에서 일하는 신세라니 일견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취준생과 직장인은 하늘과 땅 차이니 그냥 받아들였다. 오히려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그곳의 자취방에 줄곧 와주기를 바라는 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단지역은 외국인 노동자가 넘쳐나고, 동네 분위기도 매우 어둡고 음산하다.


처음 그의 자취방을 찾아갔던 날, 동네 분위기만으로 나는 질려 버렸다. 남자 둘이 사는 방 역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들과 먼지 쌓인 상자들. 오래 설거지를 하지 않아 싱크대 안에 음식물이 말라붙은 채 산처럼 쌓인 그릇들. 햇빛이 들지 않는 창. 그럼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그곳에서 섹스를 했다. 마치 동물들의 '영역표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동네, 그 방 안에 살고 있는 이현도, 그곳에서 알몸이 된 나도 지극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줄곧 그가 더 나은 직장을 찾기를 원했다. 그도 자신의 처지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결국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변리사 시험을 준비할 거라고 말했다. 다시 취준생이 되었지만, 미래가 없는 직장인인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 공단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은 하늘, 취준생은 땅이라고 인식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설레는 일상보다는 서로 격려하며 지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그에게 현실적인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 대견했고, 그 목표 달성한 그라면 먼 미래에도 이현과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목표가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달리면 된다. 그렇지만, 그는 아니었다. 취준생, 곧 백수로 돌아온 그는 예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고, 고시생처럼 공부해야 할 처지에 주말마다 부모님의 주말농장과 황토집 짓는 일을 거들었다. 그런 그를 보 과연 얼마의 시간을 기다려야 이룰 수 있는 꿈인지, 과연 이룰 수 있는 꿈이긴 한지 가늠해보게 되었다.


그즈음, 그의 부모님이 나를 만나보기를 원했다. 어렵사리 꺼냈을 그 말에 난 손사래를 쳤다. 결혼 생각이 없어서였기도 했고, 지금의 그 같은 사람과의 결혼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현재의 경제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래를 함께 꿈꿀 사람으로서의 든든함을 기대하기에는 의지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단점이었던 귀차니즘은 느림과 게으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 부족' 또는 '무기력'을 뜻하기도 했다.


그 해 나는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점차 뻣뻣하고 지루해진 우리의 관계는 '준비되지 않은 미래'라는 벽 앞에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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