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뉴스를 보면 가뭄이라는 말은 지난가을부터 나왔다. 이스탄불은 사막화되어 있는 지역이 거의 없지만 차를 타고 이곳에서 4시간 이상 달리면, 전혀 다른 지역이 우리를 맞이한다. 즉, 국토가 넓은 튀르키예는 겨울이더라도 다양한 날씨와 온도, 기후를 보인다. 과연 1년 전과 지금의 이스탄불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가뭄! 우기인데!
지난해 이스탄불의 가을, 겨울은 추적추적 비가 왔다. 4월까지 경량패딩을 입고 다녔으니 작년은 참 모지게도 춥고 힘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겨울은 작년 1월 절정을 맞이했다. 늘 내리던 비는 눈으로 변하고, 다시 눈은 뭉텅이 눈으로 바뀌고 결국 이스탄불의 주요 도로가 폐쇄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스탄불은, 우기인 건만 작년 이 맘 때 마구 쏟아지던 무서울만치 하얀 눈 대신 누렇고 가루가 풀풀 날리는 먼지가 대신하고 있다. 그래도 이 동네의 지역구(Beşiktaş, 베식타쉬)는 제법 자치기구가 부유한 지 자주 먼지를 낮추기 위해 물도 뿌리고, 이스탄불의 다른 지역보다 미세먼지에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눈으로 온 길을 폐쇄하던, 그 막히던 이곳에 그 흔한 눈도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 비가 오더라도 내가 잠자는 동안 잠깐 흩어 뿌리는 통에 아들과 함께 'METR#' 마트에서 월동 준비를 위해 구비한 썰매는 결국 아들의 독서 의자가 되었다.아니 이런 고급진 인테리어가 있는가? 이번 겨울을 즐기기 위해 미리 준비한 썰매는 마치 초봄처럼 따뜻한 날씨에 대책 없이 집 안에서 아주 편안하게 앉아있는 것이다. 작년 눈이 연거푸 오던 날, 어렵사리 걸어서 썰매를 사러 갔지만 준비된 썰매가 모두 팔려서 살 수 없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금의 튀르키예의 스포츠 용품점 데카트#(Decathlon)의 월동 준비 코너는 썰매 등 다양한 겨울 제품이 그냥 쌓여있다.
이렇게 따뜻한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우리 가족은 부르사(Bursa)의 울루산(Ulu Dağı)으로 눈을 보기 위해 여행을 갔다. 솔직히 연말에 아들이 아프고 나 또한 과로와 급체로 심하게 아팠던 탓에 다른 유럽 여행이 힘들었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튀르키예의 명산 울루산, 가장 높은 그곳에서 추운 겨울을 즐기겠다며 비장하게 준비를 하여 떠났다.
그곳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낭만 가득한 눈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아니 이런, 부르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만난 건은 한눈에 보아도 탁한 하얀 하늘빛이었다. 앞이 안 보일 만큼 뿌연 도시 경관, 일부러 오스만 제국의 수도를 경험해 보리라, 추가비용을 들여서 도시뷰의 방으로 예약했건만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회색빛의 도시, 이건 서울이나 부르사나 똑같다.
이스탄불도 아주 사람이 많고 붐비는 도시지만, 반듯하게 잘 짜인 부르사는 이스탄불과는 다른 빛의 도시였다. 도시 내의 사람들이 대체로 더 젊고 더 살아있었다. 확실히 우리 동네보다 진짜 튀르키예 사람이 사는 동네구나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특히 주요 관광지엔 나와 같은 동양인보다 중동, 아프리카의 관광객이 많았다. 그래서 스타벅#에 들어갔을 때, 동양인이 흔하게 다니는 곳이 아닌지 나를 보고 점원이 너무 당황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 나의 차례에 나의 유려한 튀르키예어로 커피를 주문했다. 서로 나의 응대를 미루는 느낌을 주는 그들, 나의 편안한 튀르키예어 주문 실력에(참고로 나는 이제 주문은 참 잘한다. 아하하하.) 아무 문제 없이 커피를 받을 수 있었다.
부르사는 예상과 달리 도시가 크고 체계적이었다. 오스만제국, 우리나라가 조선시대였던 시절인 15세기의 수도였던 덕분에 이스탄불과는 다르게 도시 교통체계가 비교적 단순하며 정돈되어 있었다. 이스탄불은 어떤 사람이 도시 설계를 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문화재와 사람들이 몰려서 현대적인 도시 설계 전에 집과 건물, 사람들이 먼저 채워진 탓인지 운전 중, 신호에 따른 유턴과 방향 전환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분명 목적지가 눈앞에 저 너머에 있건만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가다 보면 점점 그곳 주변을 다 둘러서 가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의 도로 사정에 대한 불평을 그만하고, 다시 부르사의 울루산으로 돌아간다.
울루산, 튀르키예 생수병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울루산, 그러나 거기도 이상고온이 피할 수 없다. 그래 솔직히 눈이 있긴 있었다. 정상 근처에 정확히 말하자면 100미터 정도 길이에만 눈이 있었다. 그리고 초지였다. 그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고작 100미터의 눈에서 비닐과 얇은 썰매를 타고 신나긴 했지만, 하얀 설국을 기대했던 우리의 여행에서 지금의 이스탄불과 부르사는 하얗고 깨끗한 눈 대신 뿌옇고 누런 미세먼지가 대신했다.
코로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들이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하는 건, 한국에서나 이스탄불에서나 부르사에서나 똑같다. 다만 미세먼지가 튀르키예 방송과 언론에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주요 뉴스가 아니라는 것일 뿐, 이곳도 이렇게 비가 오지 않고 겨울바람이 세차지 않으면, 미세먼지의 수치가 100이 넘어간다.
미세먼지의 수치 100이 넘어도, 모두 관심이 방송에도 언론에도 그곳에 없으니, 개발도상국인 튀르키예가 그것까지 생각하기엔 아직 너무 바쁘다.더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지난 90년대의 우리나라처럼, 그들도 사는 게 바빠서 그냥 안 좋은가 보다생각하며 대충 사는 것일 뿐, 한국의 공기보다 깨끗하고 좋다고 쉽게 단언할 수 없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우리의 마음과 몸을 춥고 아프게 한다. 다만 가난한 사람은 마스크 없이 뿌연 안갯속을 걸어 빠르게 병에 들고, 부유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고 그 속을 걸어가서 천천히 병에 들뿐, 우리는 자연 앞에 똑같이 서 있다. 그렇다고 축축해서 싫은 비가 이 겨울에계속해서 오지 않으면 미세먼지로 인해또 다른 병이 생기는 사람이있는 것처럼, 결국 우리모두는 이 자연 변화 속에서 똑같이 그 속을 걸어가야 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전 세계 주요 도시의 공기질을 볼 수 있는 앱 'IQAir AirVisual 미세먼지, 공기질 예보'를 검색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