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이스탄불의 폭설 예보로 시작된 학교의 멈춤은 드디어 3주의 대장정을 마쳤다. 2월 중 일주일은 영국계 국제학교 방학이 원래 계획되어 있었지만, 폭설과 지진으로 이어진 등교정지는 3주가 지나서야 드디어 끝이 났다. 그동안 2주간 인터넷을 통해 아이는 학교 수업을 들었고, 1주일은 나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자전거를 타고 때론 학원을 갔다. 물론 그 학원은 아들이 아닌 나의 튀르키예어 학원이다. 학원비 환불이 안되니 아픈 게 아니면 반드시 가야 한다.
아들과 함께 가는 학원 길은 생각보다 어렵다. 가다가 아들이 멈추고 물도 먹이고, 길을 가다가 개, 고양이 똥도 밟을 수 있으니 조심하며 함께 걷는다. 다행히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지 않으니 가뭄에 걱정도 되지만, 아들과 우산을 들고 울퉁불퉁한 이 길을 걷지 않은 건만으로도 참으로 다행인 하루였다.
나의 튀르키예어 학원에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동영상까지 모두 다운로드하고 간식 및 음료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지만, 1차 시도는 완전히 실패였다. 아들은 먹을 건 다 먹으면서도 나를 계속 찾으러 내 교실에 들어와 '엄마'를 외쳐대기에 윽, 새로운 방법을 수립하였다.
"그냥 넌 내 옆 자리에 앉아라."
그 새로운 방법은 엄청난 게 아니다. 대책은 없지만 학원에 가서 공부는 하고 싶은 엄마는 아들과 같은 교실에 앉는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튀르키예어로 적혀있지만 새로운 공룡 그림책 세 권, 연습장, 다양한 색의 색연필을 준비한다. 그리고 아들에게수업시간이니 절대 조용히 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곤 1시간 30분 동안 그는 나와 튀르키예어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은 가끔 학생이 아닌 아들에게 튀르키예와 영어로 질문했고, 그는 자신이 아는 튀르키예어와 영어를 사용해 자신의 차례에는 적절히 대답했다. 다행히 아들은 지루해하지 않고 1시간 30분 동안 함께 공부했다. 그리곤 나는 그와 집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에 그를 한 번 더 칭찬하고, 잠자리 시간에 그에게 나와 함께 튀르키예어 학원에 가서 조용히 수업을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내게 왜 고맙냐고 물었다.
"엄마, 왜 고마워요?"
"같이 잘 있어줘서 고맙다."
튀르키예의 일 년을 넘게 살며, 한국에서의 삶과 같이 나는 여전히 엄마로서의 삶과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힘듦에 대해 서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힘듦을 서로 이야기하는 친구가 한국인 엄마에서 미국인 엄마, 우크라이나 엄마로, 러시아 엄마로 말하는 상대의 국적이 조금 더 다양해진 것뿐, 그 색깔과 어려움은 모두 한 가지다.
"나를 대체할 존재가 없어. 나는 아파서도 안되고."
3주의 방학, 방학 같지 않은 방학이 흐르고, 아들의 친구 엄마이자 이제는 나의 친구인 미국인 엄마 킴과 튀르키예어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간다.
"아, 나 이번엔 진짜 여행이라도 가야겠어."
"나 지금 미칠 거 같아. 어디 좋은 곳 좀 추천해 봐."
이 말은 아들 셋인 미국인 엄마 킴의 방학 중 그녀의 마지막 하소연이었다.
이스라엘 2.9
멕시코 2.08
프랑스 1.79
콜롬비아 1.77
튀르키예 1.76
미국 1.64
대한민국 0.84
2020년 OECD 평균 1.59
한국도 미국도 튀르키예보다 못하는 것, 미국인도 한국인도 너무 힘들어하는 그것, 바로 육아. 튀르키예 사람들은 왜 한국보다 미국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인가.지난 3주간 아들과 튀르키예어 학원을 가서 공부하는 동안,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한국에서처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 누구도 아이가 시끄럽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를 데리고 와서 공부하는 너를 보니 너와 아이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수많은 튀르키예 사람들을 만났다. 만약 누가 시끄럽다고 이야기하면 그 사람이 예의가 없는 것이니 무시하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튀르키예에선 어린 아이를 가진 엄마의 위상은 엄청나다. 학원 앞 Sok 슈퍼에서 산 아이의 초코우유 통의 병뚜껑이 열리지 않아 내가 끙끙거리고 있을 때, 아이의 슬픈 표정을 보자마자 슈퍼 안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며 우유병 뚜껑을 잡고 돌려 초코 우유병을 열어주었고, 나의 고맙다는 인사에 오히려 튀르키예어도 하는구나 하곤 더 큰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3주의 마지막 날, 아들의 반 친구들과 함께 한 공원 데이트, 공원 안의 작은 식당을 울리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도 그 누구 하나 조용히 해달라는 말 없이, 아이들의 자리를 살펴주고 식탁 자리를 다시 정리해 주셨다.
여기엔. 튀르키예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오지랖이 많다. 특히 갑자기 아이가 예쁘다며 볼을 잡아당기는, 그리곤 남의 아이를 안아주는 것에 서슴이 없다. 처음엔 그들이 불편하고 힘들었다면 지금은 그들의 환대가 정겹고 따뜻하다. 살아보니 이런 아이에 대한 관심이 자신이 본인의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잘 자란 사람의 증표와 같은 것이라는, 튀르키예의 중요한 문화임을 알아간다. 즉, 아이에 대한 환영과 관심이 그들이 생각하는, 잘 자란 어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맘충'이란 이름 대신에, 지난 3주간 아이를 데리고 함께 튀르키예어를 공부하는 대단한 엄마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카페에서도 음식의 알레르기 재료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건넨 나의 어설픈 튀르키예어에도 체인점 본사에까지 전화해 음식 재료를 확인하는 정성을 만나기도 했다. 여기가 한국이 아닌 튀르키예이기에 가끔은 더 어려운 육아가, 때론 여기가 튀르키예이기에 더 쉽고 따뜻해질 수 있는, 적어도 이곳엔 한국의 어느 곳보다 아이에게 너그럽고 착한 사람들이 많기에, 지난 3주 간의 아들의 갑작스러운 방학 여정은 아직 부족한 엄마에게 생각보다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이 겨울, 두 번째 맞이한 이 겨울은 생각보다 내게 참으로 따뜻했다. 첫 해 겨울이곳의 차가운 바람과 상처를 잊게 할 만큼, 갑작스러운 겨울 방학이 너무 아쉬웠지만, 그 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위로받고 도움을 받았다. 나의 따뜻함과 고마움이 지금 지진으로 힘든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꼭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