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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Sep 06. 2023

개가 싫고, 고양이는 더 싫어요.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은 다 싫어

나는 동물을 싫어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이 무서웠고 싫었다.


여섯 살 때, 강원도 횡성에 있는 큰집에 놀러 갔다.

해가 어둑어둑 지던 오후였는데, 큰 엄마는 닭 한 마리의 목을 잡고 닭의 어딘가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팔팔 끓은 뜨거운 물에 그 닭을 담갔다 뺐다. 시꺼먼 무딘 칼로, 닭의 머리를 잘라냈다.

빨간색의 닭 볏과 또렷하게 뜨고 있던 닭의 눈알만 보였다. 

다음 장면은 기억에 없다. 


초등학생 때, 시골 우리 집에는 목줄이 짧게 묶인 '이름 없는 개'가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대문 앞에서 무섭게 짖어댔다.

그 소리가 너무 싫어서, 그 '이름 없는 개'랑은 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평소와 다르게 대문 앞이 조용했다. 

대문을 열면 그렇게 짖어대던 '이름 없는 개'가 없었고, 개집은 비어있었다.


중학생 때, 낮잠을 자다가 깨서 부엌으로 물을 마시러 갔다.

엄마가 부엌 창문가에 저녁 반찬으로 먹으려던 고등어 한 마리가 있었나 보다.

담장을 지나가던 고양이가 그 고등어를 입에 물었던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고양이는 나를 비웃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밤이었다.

어두운 골목길에 까만색 고양이 한 마리가 가로등 빛을 등에 지고 앉아있었다.

고양이는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 나는 소리를 질렀다.

공중전화로 달려가서 집에 전화를 걸어, 아빠에게 당장 나오라고 고함을 쳤다.


성인이 되어 일산에 사는 이모네 댁에 놀러 갔다.

현관문을 열자 하얀색 작은 강아지가 부산을 떨며 나왔다. 

이모한테 실내화를 달라고 소리치고, 나는 식탁의자 위로 올라가 섰다.

그 하얀색 작은 강아지의 이름은 '하늘이'라고 했다. 

식탁의자 위로 올라간 나를 보고, 하늘이는 두 발로 서서 계속 점프를 했다.

집에 갈 때까지 나는 그 식탁 의자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나는 거의 'phobia' 수준으로 개와 고양이, 동물들을 싫어했다.

움직이는 것들의 촉감을 느끼기 싫었고, 동물과 사람이 왜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코딱지만 한 강아지가 있을 때도,

"개 좀 안아주실래요? 제가 개를 무서워해서요" 말하며 굳이 인상을 찌푸렸다.

살면서 후회되는 것, 세 개 정도를 꼽으라면 이 장면이 들어간다.

나의 오만과 편견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 상처를 준 시간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몇 배로 돌려받으며 보낸 시간이 10년이 되어간다.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인생이 그렇다.

너무 싫어했던 것들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반드시 온다.

내가 그랬다.

그리고 그것들을 사랑하게 되는 시간도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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