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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Sep 11. 2023

엄마, 이제 3일 남았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고민 끝에 15년 정도 다닌 직장을 그만두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맡아주는 엄마'를 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여러 가지로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후회하는 대목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우리는 남편의 회사와 거리를 고려해 송파구에서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일산에서는 산책하는 강아지들이 서울보다는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아이는 다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종종 졸라대기 시작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네가 강아지 똥도 치울 수 있고, 산책도 시킬 수 있는 형아가 되면 생각해 볼게. 우리 쵸코 못 키워서 보낸 거 잊었어? 엄마는 못 키워. 그러니까 네가 4학년이 끝날 때 생각해 보자"

아이는 그 이후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2014년 12월 29일,

"엄마, 나 4학년이 이제 3일 남았어. 엄마가 4학년 마치면 강아지 키워도 된다고 했지?"

나와 남편은 둘이 눈을 마주쳤고, 나는 내가 왜 4학년이라고 했을까 후회했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다. 

아무튼 동물병원이나 펫샵으로 강아지를 보러 가는 건 왠지 싫었다.

남편이 출퇴근길에 지나가다 봤던 곳이 있다며, 파주에 있는 시골 마을로 가보기로 했다.

그냥 구경만 하는 시늉을 하기로 둘이 약속을 했다.

겨울이었고, 추웠다.


거기서 우리는 '온돌이'를 만났다.

사모예드와 허스키, 골든리트리버가 있는 대형견 견사였다. 

지금 생각하면, 동물병원에서 데리고 오는 것과 별반 차이는 없는 짓이다.

그때도 역시나 나는 무식하고,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하얀색의 두 마리 강아지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밑에 깔려 있고 다른 한 마리가 그 아이를 밟고 서서 "앙앙" 짖어댔다. 우리 식구는 동시에 밑에 깔려있는 기가 죽은 흰둥이 아이가 보였다. 

한숨을 쉬며, 기꺼이 자신의 머리를 다른 강아지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가 동시에 말했다. "밑에 깔린 애 너무 안쓰럽다. 귀엽다"

아이가 안아보더니, 볼에 대어보았다.

"근데, 이게 몇 개월인데 이렇게 커요?" 

"2개월이요. 10월 29일 생인데, 오늘 12월 29일이네요"

2개월짜리 강아지는 이모네 집에 있는 몰티즈 하늘이보다 5배는 큰 것 같았다.

남편과 아이는 이미 2개월짜리 털뭉치한테 빠져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하얀색의 털뭉치를 차에 태워서 함께 집으로 왔다.

'하..... 또, 몇 년 전과 같은 반복이네. 근데 그때보가 강아지가 몇 배는 큰애야'

하지만, 아이도 그때보다는 컸다. 더 이상 강아지를 보고 무서워하거나 망설임이 없었다.

"네가 다 알아서 키워. 나는 몰라"

아이의 이름에 있는 "온"을 따다가, 남자아이니까 "돌"을 붙였다. 이름 짓는 거에 마음을 담지 않았다.


사모예드 온돌이



도서관에 가서 반려견 훈련과 관련된 책을 대출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고양시 도서관센터 대출 이력을 확인해 보니 4권이었고 아래와 같았다.

1) 강아지 언어 교과서(이케다쇼텐 엮음, 쌤앤파커스 2012)

2) 우리 개가 달라졌어요.(후지이사토시, 코리아하우스콘텐츠 2010)

3) 나는 안내견 공부 중입니다.(하우종, 알에치코리아 2012)

4)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강형욱, 동아일보사 2014)


우선은 또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았고, 동물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당시에는 아이에게 무책임하지 않은, 완벽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를 위해서 훌륭하게 해내고 싶었다. 

(9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온돌이를 데리고 온 날부터, 거실 소파에서 꼬박 2주를 잤다. 아니, 자지 못했다.

'낑'하는 소리에도 벌떡 일어나서, '짖으면 안 돼' 근엄한 목소리로 온돌이에게 겁을 주었다.

쉬하는 소리가 들리면 또 벌떡 일어나, 젖은 패들을 바로 새 패드로 갈아주었다.

엄청 인형 같았던 'Puppy' 시절의 온돌이 사진은 열 장도 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나는 사육과 내 과업을 성공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나이만 어른이지, 전혀 어른답지 못했던 미성숙한 성인이기만 했다.

3개월짜리 강아지가 사람 널, 이해한다는 듯이 물끄러미 쳐다보며 기다려준 시간이기도 했다.


3개월 온돌이 & 11살 온돌이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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