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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Oct 12. 2023

3개월짜리 짐승

인간엄마, 내가 기다려줄게요.

2014년 12월, 온돌이의 나이는 3개월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냥 네발 달린 털많은 짐승이었다.

온돌이를 데리고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초코 때와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애견 울타리를 치고 배변패드를 

왕창 깔았다. 온돌이가 앞발로 울타리를 하고 치니, 하고 쓰러진다.

'이건 강아지가 아니야. 분명 이 짐승 때문에 나에게는 엄청난 불행이 닥칠 거야'

새로 생긴 움직이는 동물 덕분에 아이와 남편은 마냥 신나고 즐거워 보였지만, 나는 불안감과 걱정감에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첫날 밤,

온돌이가 우리 집에 온 그 날밤 나는 깨달았다. 이 동물이 보통 개가 아니라는 걸.

보통의 강아지들은 '멍멍'하고 짖는 줄 알았는데, 이 3개월 된 짐승은 밤이 되자 허공에 대고 '우~~~우~~'

하는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여우와 늑대의 울부짖음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야!'하고 소리를 지르니, 구석에 가서 웅크렸다.

(글을 쓰며 이 장면을 회상하니, 눈물이 난다. 온돌아, 너를 안아주지 못한 거 정말 미안해.)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건 '하울링'이라는 엄마나 자신의 무리를 찾는 소리라는 것을.


아무튼,

나는 우리 집 거실에 웅크리고 있는 저 동물이 3개월짜리 강아지가 아니라 짐승이라고 확신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공포가 심했던 나였기에, 불안감과 예민함으로 나는 공격적 모드로 무장되었다.

당연히 온돌이를 만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지기도 싫었다. 

밤새, 도서관에서 빌려온 강아지 훈련책 4권을 빠르게 완독 했다.


복종


책을 완독하고, 그 중에 일본인 훈련사가 쓴 글이 현실적으로 이해가 잘되었다. 그중에, ’복종훈련‘ 이라는 개념이 나를 설득시켰다. 힘의 원리를 이용해서, 개에게 서열을 알려주는 것이다. 집안에서 개는 가장 낮은 서열임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마음도 없고, 개념도 없었던 인간엄마였다)

나는 그땐 개가 동물이니까, 주인에게 복종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동물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야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무시무시한 짐승으로부터, 나와 내 아이가 물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 절대 안아주지 말 것

2. 소파와 침대는 절대 금지

3. 사료 외에는 없음

4. 짖으면 주둥이 잡고, '안돼'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5. 배변패드에 용변 성공 시, 사료 한알

6. 매일 산책 2회

7. 하루에 한번 배 뒤집기


나는 책에서 배운 내용 중, 필요한 것들을 골라서 몇가지 규칙을 남편과 아이에게 요구했고, 둘 다 동의했다.

문제는 자고 일어나면 온돌이가 한뼘씩 커져 있었다.

처음에 사 왔던 강아지 방석은, 이틀 만에 엉덩이가 밖으로 나가서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 개가 크는 속도보다 빠르게, 내가 이 짐승을 컨트롤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와 내 아이를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뒤태는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사자의 뒷모습으로 보였고,

뾰족하게 솟아있는 송곳니는 호랑이의 이빨과 똑같아 보였다.

가끔 울어대는 소리는 보름달 앞에서 울고 있는 영락없는 늑대로 보였다.

우리 집 거실에 사자와 호랑이 그리고 늑대가 섞여있는, 어마무시한 짐승이 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 짐승을 이겨야겠다는 다짐만 했다.

뒤집어서 배를 보이게 하고, 밥을 주다가도 멈추게 했고, 앉아와 기다려를 가르쳤다.

그렇게 '복종훈련'이라는 것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고맙게도 온돌이가 인간엄마를 이해해 주고 따라주었던 것 같다.

'그래요. 인간엄마. 내가 무섭지 않은 강아지라는 걸 인지할 때까지 내가 기다릴게요'

같잖은 나의 훈련에 복종해 주는듯, 온돌이는 모든 걸 따라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온돌이는 침대에 올라오지 않는다. 억지로라도 끌어올리면, 내 자리가 아니라는 듯이

불편해하고 내려가 자기 자리에 눕는다. 지금은 내가 같이 자자고 부탁을 해도, 시크하게 나를 비웃으며 기지개를 한번 피고 내려간다. 




이 개가 어떤 개인지 궁금해져서, 검색과 함께 네이버에 카페(미소천사 사모예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서운 개는 아니구나.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는 개네. 자꾸 보니까 귀엽기는 하다'

사모예드 [Samoyed]
러시아 북부와 시베리아 지역에 살던 사모예드 족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순백색의 피모를 가진 온화한 성격의 개로 사냥견이나 썰매견으로 키웠다.
사모예드족이 키운 개들은 주인과 가까이 지내며 집안에서 함께 잠을 자기도 하고,
사람의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해 주는 역할을 했다.
_네이버 지식백과


썰매를 끌고 다닐 것도 아니고, 남편에게 왜 사모예드를 선택한 건지 이유를 묻고 따졌다.

당연히 아무 생각이 없는 이유였다.

"그냥 대형견이 좋아서, 이쁘잖아" 그리고,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분명히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고 말했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온돌이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 가족이 되어 주었다.


온돌이는 짖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온돌이가 인간엄마를 위해 짖는 걸 참아주는 거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짖을 줄 알지만, 짖지 않는다. 한두 번 짖은 걸 본 적은 있다.

시골에 가서 소를 봤을 때였다. 같은 동에 사시는 이웃들이 물어보신다. 왜 온돌이는 짖질 않아요?

3개월 때 짖는 것에 대해서 훈련을 강박적으로 했다.

우리는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생활해야 하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아파트에 가둬놓고, 저렇게 큰 개를 키우는 건 이기적인 것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시골에 짧은 줄에 묶어놓고 밤새 짖게 하는 건 맞는 걸까..?

하나, 둘, 온돌이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커뮤니티에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었고, 교류했고, 질문했다.

유투브를 통해서 훈련 영상도 찾아보았고, 가까이에서 중대형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그리고, 나는 온돌이에게 마음을 서서히 열었고 결심했다.


'산책도 매일 하고, 넓은 운동장에 가서 뛰어놀게 해 줄게. 산으로 바다로 함께 놀러 다닐게.

너를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두렵거나 불안해서 짖지 않도록 해줄게.

네가 우리를 지켜줄 필요 없어. 우리가 너를 지켜줄 거야'


좌) 3개월 온돌이 우) 8살 온돌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온돌이에게 제대로 된 '복종훈련'이라는 했던 것인지, 그리고 그런 훈련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반려견과 함께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은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가족으로 생각하고 키우는 것이 맞지만, 강아지가 사람은 아닌 것도 맞다.

그리고 강아지에 대한 책임은 사람이 갖고 있다. 초코를 통해 배운 실패의 경험으로, 나는 그 책임을 다하며 온전히 잘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10년이 되어가는 온돌이를 보면서 그저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 최선이라 함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매일 바깥공기를 쐬게 해 주고, 풀냄새를 맡게 해 주고, 건강한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공놀이를 해주고, 만져달라는 배를 주물러주면 온돌이는 환한 미소로 나에게 보답을 해준다.


온돌이는 내가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었고, 

나의 삶은 그로 인해 편해졌고, 넓어졌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는 길을 편안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고, 나의 많은 감각들을 온돌이와 걸으면서 깨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돌이 덕분에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오늘도 사랑해. 온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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