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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Sep 27. 2023

사계절이 있다는 걸 개가 알려줬다._가을

온돌이랑 함께하는 가을


무더운 여름이 언제 끝나지 했지만, 간사하게도 금방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왔다.

아침 일찍 짧은 반팔 위에 후드재킷을 걸치고, 배변봉투를 챙겨서 산책을 나간다.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을 피해야 한다.

초등학생들 무리에 둘러싸여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이, F가 아닌 T인 나에겐 조금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꼬리 만져봐도 돼요?"

"물어요?"

"이거 개예요? 늑대예요?"

“한번 올라타봐도 되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산책을 나간다고 다짐하지만 나의 체력이 고갈되었을 때는 그 일이 쉽지 않다.

특히 가을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체력이 부족한 계절이다.

온돌이는 썰매견종으로 에너지가 많은 대형견이다.

최소한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은 산책을 해야, 집안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사람의 걸음으로 사천보 정도 되고, 우리 동네를 두 바퀴 정도 돌아야 한다.


반려견과 산책하기에 봄과 가을은 좋은 계절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색채들과 적당한 기온, 바람이 섞여 기분 좋은 흥얼거림을 만든다.




온돌이를 키우고 나서, 그동안 사계절을 느끼며 살지 못했었다는 걸 알았다.

달력을 넘기면서 '여름이 끝났구나. 가을이네' 하면서 절기가 바뀌는 것을 숫자로 느꼈다.

하지만, 온돌이를 키우면서 '기온이 내려갔네. 하늘이 높아졌네. 나뭇잎 색깔들이 변하네. 낙엽 색이 다양하구나' 이렇게 다른 계절이 왔음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온돌이 가 나의 눈과 마음을 넓게 열어주었다. 절기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나뭇잎의 색깔들이 변해가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바람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흙의 좋은 냄새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파주 임진각 코스모스 길

온돌이는 대형견이다.

몸무게가 24kg 정도이며 마른 편이지만, 풍성한 털 때문에 엄청 큰 개로 보인다.

온돌이는 겨울개다.

가을엔 추운 겨울을 준비하러 털갈이가 시작된다.

봄에는 더운 여름을 준비하는 털갈이를 한다.

외국에서는 사모예드 털로 실을 만들어 스웨터를 만드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그 정도의 양이 나온다.


"이 개 털 때문에 어떻게 키워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나의 호흡기계를 걱정해 주는 질문을 던진다.

"사랑으로요"

온돌이가 어렸을 때는, 나름 설명을 하려고 노력했었다. 어떻게 관리하는지, 어떤 점이 어렵고 쉬운지 이해시키고 싶었지만, 근래는 저 다섯 음절로 대화를 시작도 하지 않고 끝내 버린다.

키우지 않으면 모를뿐더러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도 보통 같은 질문들을 한다.





온돌이는 사진 찍는 걸 아는 것 같다.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을 포즈를 취하게 한 다음 "온돌아! 여기 봐봐" 그러면 웃는다.

자신의 보호자가 기뻐한다는 것을 아는 걸까? 아니면 진짜 웃는 걸까?

사모예드는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시베리아에서 사는 겨울개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침을 흘리다가 고드름처럼 얼거나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진화된 입꼬리이다.

유일하게 침을 흘리는 순간은, 치즈를 눈앞에 보고 있을 때뿐이다.


동네 산책길




2023년, 이번 가을은 온돌이와 아홉 번째 맞는 가을이다.

몇 번의 가을을 우리가 더 함께 할 수 있을까?

"강화도로 고구마 사러 가자"

"파주 출판단지 가서 뛰뛰하까?"

"온돌이 바다 보고 싶어?"

"테라스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까?

오늘도 답은 없지만, 온돌이에게 혼자 떠들어 본다.

알아듣는지 모르지만, 큰 눈을 멀뚱멀뚱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온돌이는 낙엽 밟는 걸 좋아한다.

아마도 바사사하는 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instgram에는 낙엽을 쌓아놓은 더미에 뛰어드는 래브라도리트리버가 있다.

푹신한 느낌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온돌이도 낙엽이 쌓이는 늦은 가을이 되면,

걷다가 굳이 낙엽이 많이 쌓여 있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간다. 말이 걷는 것처럼, 네 다리를 총총하며 뛰는 듯 걷는다.

강아지도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을 알까?

온도리와 함께 하기 전에는, 낙엽을 밟으면 어떤 소리가 나는지 관심이 없었다.


'바스락바스락'

'사사삭'


밤새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이면, 낙엽들이 비에 젖어 풍기는 냄새가 있다.

온돌이가 아니면 내가 쓰지 않았을 감각들이다.



온돌이와 보낸 사계절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하는 시간 동안 이 희귀한 생명체가 나의 감각들을 깨워주는 시간들을 남겨보려고 한다.

온돌이가 물론,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온돌이로 인해 변화된 것들은 마치 글을 읽지 못했던 사람이, 한글을 배우고 단어들을 배워가는 과정처럼 매 순간이 새롭고, 깨달음의 연속이다.

내 인생은 온돌이를 <키우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제는 비가 종일 내렸다.

집안에서만 지낸 온돌이가, 창밖을 보며

귀여운 한숨을 푹푹 내쉰다.


"온돌아, 산책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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