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깜장하트 Oct 13. 2023

온돌이 가라사대(1), 모든 개는 평등하여라.

온돌이 시점_첫 번째 수다

내 이름은, 온돌이(ONDOR)

인간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야. 그다지 성의 있게 의미를 부여한 이름은 아니야. 그래도 마음에는 들어.

인간엄마의 아들 이름에 ''자가 있고, 나는 수컷이니까 ''이 붙었어. 진짜 별거 없지?

다른 친구들은 멋진 영어이름들이 있던데, 나는 인간들의 방바닥을 지칭하는 명사와 같아.

그래서 인간들이 꼭 두 번씩 물어보더라.

"방바닥 온돌 맞아요?", "왜 이름이 온돌이에요?"


9년째 쓰고 있는 내 침대


나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몰라. 경기도 파주 출신인 것만 알아.

이 집에는 내가 3개월에 들어서던 날 들어왔어. 인간아빠와 인간엄마, 그리고 인간형아가 있어.

이 식구들을 만난 날, 나를 보자마자 인간형아가 꼬옥 안아주었던 기억이 나. 포근했어.

내가 봤을 때는 이 형아도 꼬맹이 같은데, 자꾸 나보고 '우리 애기'라고 그래서 웃겼어.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왔는데, 무서워서 쉬야를 조금 했어. 실수를 해서 혼날까 봐 걱정했는데 인간아빠가

 '쉬를 했구나. 무서웠나 보네'라고 말했어. 인간아빠가 좀 다정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어.


첫 산책, 우습고 어이없는 비닐 신발

문제는, 인간 엄마였어.

처음부터 팔짱을 끼고, 곁눈으로 나를 쳐다봤어. 

손가락으로 이거 저거 가르치면서, 왜 필요한지 모르는 말도 안 되는 플라스틱 울타리에 나를 가두었어. 그래서 튼튼한 건가 확인하려고 쳐봤는데, 픽 쓰러지더라. 그걸 보더니, 인간엄마는 돌고래 소리를 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더라고.

심지어 인간엄마는 나를 만지지도 못해서, 발로 툭툭 쳤어. 기분이 나빠서 '앙' 하고 발가락을 물어 버릴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아빠랑 형아를 보니 이 집에서 지내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참아보기로 했지.

인간엄마는 무슨 책을 읽어가면서, 나한테 한 개 두 개 실험을 해보는 것 같더라.

'기다려'를 왜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건 아니라서 해주기로 했어.


밥그릇에 밥을 줬길래, 먹으려고 했더니..기다리래. 배고파 죽겠는데, 기다렸지. 

다시 먹으라고 그래서 먹으려고 했더니, 다시 밥그릇을 뺏는 거야. 개 황당하잖아. 이건 너무하잖아.

그래서 나도 화를 냈지. "으르렁.." 그랬더니, 인간엄마는 또 돌고래 소리를 내며 도망갔어.

저 인간엄마랑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나도 고민이 되었어. 나의 진짜 엄마가 보고 싶었어.

"우~~우~~" 엄마가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까? 밤이 되면, 엄마가 생각나서 소리내어 불러보았어.

그러면, 인간엄마가 쫓아와서 뭐라고 하면서 내 주둥이를 잡더라.

아.. 진짜 기분 더러웠지만, 아빠랑 형아 봐서 내가 또 참아주기로 했어.


지금은 인간엄마가 제일 좋아


그래도, 이 식구들이 사이는 좋아 보여서 다행이었어.

인간 엄마도 까칠어 보이기는 하지만, 아빠랑 형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아 보였어.

나도 인간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들을 하나씩 보여줘야지 생각했어.

고맙게도 나를 데리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산책을 나갔어.

내가 사는 이 동네는 친구들이 많았어. 산책 길도 넓고, 나무도 많고, 잔디를 밟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 다들 순하고, 멋진 친구들이었지.

래미, 포리, 링컨, 만두, 보보, 코난.... 서로 만나면 인간들이랑 사는 게 어떤지 대화를 나누곤 했어.

봐봐. 다들 이름들이 영어고 뭔가 멋지잖아. 아..래미, 작년에 아파서 별이 된 친구인데, 정말 보고 싶다.

아무튼 매일이 좋았고, 인간엄마도 조금씩 경계를 풀고 나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 괜찮았어.

가끔 배를 뒤집고, '앉아', '기다려'를 반복하는 피곤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집과 식구들이 좋았어.

그래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나는 여기에서 잘 살고 있어.


아홉 살 나이치고는 아픈 곳도 없고, 외롭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편도 아니야.

인간엄마는 나의 시크함과 도도한 매력에 빠져서, 지금은 개엄마가 되었어.

그렇게 돌고래 소리를 내고 도망가던 사람이, 이제는 나에게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좀 피곤한 스타일이야.

애착관계에 문제가 심각하게 있는 인간임이 틀림없어. 

지금은 별이 된, 래미의 생일날


그런데,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들이야.

"이런 개는 얼마예요?"

"원산지는 어디예요?"

"털 관리 하는데 정말 돈이 많이 들겠어요."

"하얀 털이 너무 고급지다"

"순종인가 보다. 꼬리를 보면 알아"

물론, 나 이쁘다고 하는 말이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그렇지만, 동물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표현이잖아. 그래서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

사촌형_나무 그리고 사촌동생_복돌이

제일 억울한 건, 나의 개 사촌동생 복돌이야.

인간 이모가 키우는 한 살 어린 동생이야.

래브라도 리트리버라서 진한 베이지의 털을 갖고 있는 귀여운 동생인데, 엄청 장난꾸러기야.


우리 인간할아버지는 "온돌이는 잡아먹는 개가 아니야. 복돌이 저거는 먹어도 되는 개지. 저건 똥개야"라는 정말 끔찍한 말을 하시는 바람에, 인간이모가 울면서 집에 가신 적이 있어.

가끔 복돌이는 누런 색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종류의 말들을 듣고는 해.


왜, 인간들은 나의 하얀색 털을 좋아하는 걸까?

백의민족이라서 그런 거야?

어떤 무속인에게 이런 말도 들어봤어.

옛날부터 하얀색 개는 다음 생이 인간이라서,

잡아먹지 않았다나…

진짜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더라고.

내가 본 인간의 생은 고달파 보여. 

그냥 밥 잘 주는, 보통 인간의 반려견으로 사는게나아 보일때가 있어. 나는 다음 생에도 그냥 온돌이로 태어날래.


지나가는 개를 보고, 이쁘거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웃어주면 돼.

그래도 말을 걸고 싶다면, "이름이 뭐야?" 또는 "몇 살이야?" 물어봐 주면 되거든.

인간들은 서로 만나면, '밥은 먹었니'라고 인사하면서 왜 우리 개들한테는 밥 먹었냐고는 안 물어보는 걸까.


아, 그리고 개들도 인간들이 우리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표정만 봐도 알아.

인간이니까 동물이 싫을 수도 있어. 그럼, 그냥 지나가면 돼.

우리도 굳이 싫다는 인간한테 가서 인사하고, 아는 척하고 싶지 않거든. 

그런데 몇 미터에서부터 나를 노려보고, 인간 엄마를 아래위로 훑으면서 지나가는 건 예의가 없는 행동이 아닐까 싶어. 심지어 지나가는 우리를 붙들고, '아파트에서 왜 키우냐, 입마개를 해라' 말하는 건 가끔 화가 나기도 해. 우리들도 다 듣고 상처받거든.

아파트에서 살면서 재활용 쓰레기 제대로 분리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침 뱉고 하는 공중도덕 없는 인간들도 많던데, 나는 짖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타면 구석에서 얼굴도 들지 않아. 응아하면 엄마가 깨끗하게 싸서 버리고, 꼬마 아이들이 지나갈 때는 길도 비켜주는 예의 바른 개라고.


지난 주 인간조카_아라미랑 놀았는데, 혼자 울더라


세상에는 나쁜 개는 없어.

세상에는 비싼 개도, 싼 개도 없어.

세상에는 똥개도, 순종도 없어.

세상에는 행복해도 되는 개, 행복하지 않아도 되는 개는 없어.

세상에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은 동물들이 있어.

그리고, 동물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모두가 소중한 존재들이야.
















이전 07화 사계절이 있다는 걸 개가 알려줬다_겨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