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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Oct 21. 2023

온돌이 가라사대(2),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어.

온돌이 시점_두 번째 수다

나 온돌이, 견생 9년 차 경기도 일산이라는 곳에 살고 있어.

엄마가 브런치 글쓰기가 게을러진 것 같아서, 지난번에 내가 잠깐 대필을 했었어.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나 재주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엄마한테 한번 더 써본다고 했어.

https://brunch.co.kr/@ssingci/54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야. 그 이하 주소는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가 없어.

얼마 전에 내 인스타계정으로 멋진 홍콩남자가 DM을 보내는 바람에, 인간엄마가 피싱당할 뻔했거든.

우리 집 식구들은 형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왔다고 들었어. 

일산으로 이사를 오게 돼서, 나도 이 집에 가족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들어보니, 인간엄마가 철들기 전에 서울에서 잠깐 초코라는 강아지를 키워보려다가 실패한 것 같더라고.

인간엄마는 초코에게 미안하다느니, 상처니 하고 떠들지만 결론은 파양 했던 거잖아. 

그 덕분에 인간엄마는 초코의 20배가 되는 나를 키우며 20배는 힘들게 되었으니까, 벌은 받고 있는 게 맞아.

그게 바로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 아니겠어.


오늘은 어디로 놀러갈꺼에요? 


내가 사는 이곳, 일산은 반려견이 살기에 정말 좋은 곳 같아.

물론, 다른 곳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가끔 서울 나들이를 나가봐서 알아.

서울에 놀러 가는 일은 신나는 일이야. 지난 주말에도 한강 망원지구를 산책했고, 핫한 망리단길도 걸어봤어. 얼마나 어여쁜 누나들이 만져주던지, 서울에 나갈 때면 인간엄마도 기분이 좋아서 콧소리를 내 거든, 그래서 나도 즐거워. 그렇지만 서울은 길도 좁고, 잔디도 별로 없고,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불편해.

나처럼 큰 대형견이 들어갈 수 있는 카페나 식당도 아직까지는 매우 한정적이야.

그에 비해서, 여기 일산은 물어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카페는 출입이 가능해. 

그게 아니어도 우리가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테라스만 있다면, 어디든지 환영해 주는 분위기야.

그리고 나처럼 큰 대형견 친구들을 종종 만날 수 있어. 우리는 파리지앵처럼 쿨하게 코인사를 하고 지나치지.

대신 서운한 점도 있어. 서울 나들이를 가면, 길에 지나가는 누나들이 돌고래 소리를 내며 나를 예뻐해 주는데, 여기 일산은 멋지고 예쁜 대형견들이 흔해서 그런지 격한 애정 표현은 적어. 

그래서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플러팅을 해야 해. 

치즈 식빵,  언제 나오나?

우리 식구가 주말 아침이면 가는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 일단, 인간엄마는 밥을 안 하니까 신나고, 형아는 학원을 안 가는 날이라 신나고, 나는 제일 좋아하는 치즈식빵을 먹으러 가는 날이라 신나.

내부 출입은 안되지만, 널찍한 테라스가 아주 맘에 드는 곳이야.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봄과 가을에 테라스에서 얻어먹는 치즈식빵은 정말 천국의 맛이야. 세 자매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곳인데, 나에게 늘 물도 갖다 주시고 한 번씩 안아주셔.

그리고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그 동네에서 사는 길 고양이들을 볼 수 있어. 가끔씩 드는 생각인데,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삶은 집시의 삶처럼 애환이 많아 보이면서도 자유로움이 멋져 보여.

먹던 식빵이라도 나눠 먹고 싶은데, 그 친구들은

우리를 보면 화가 나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그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기로 했어.

내가 못 본 척을 하면 멋진 꼬리를 치켜세우고, '너 같은 동물과는 교감하지 않겠어' 이런 느낌표를 던지며 사라지는데, 하여간 매력이 넘치는 친구들이야.

엄마를 기다리는 중

다른 한 곳은, LP 음악을 빵빵한 스피커로 풍성하게 들을 수 있는 멋진 카페야.  인간엄마가 카페인이라고 하는 시꺼먼 약물이 필요할 때 들리는 곳인데, 

바로 앞에 작은 공원이 있어서 좋아.

나는 테라스에 앉아서 지나가는 강아지 친구들이랑 인사를 하고 놀아. 정발산에는 강아지들이 많아.

예절교육이 잘된 친구들이 많아. 나는 그래서 이곳이 참 좋아. 이유 없이 짖거나, 싸워보자 달려들거나 하는 다혈질의 친구들이 확실히 적은 편이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노견들이 많은 것 같아. 세상 다 귀찮은 거지.

잘생기고 멋진 사장님은, 지나가는 강아지 친구들을 위해서 물그릇도 항상 채워놓으셔. 정말 스윗하지. 

테라스가 있는 건 아닌지만, 작은 공간이 있어서 나는 엄마를 기다릴 수 있어.

지나가는 예쁜 누나들이 만져주기도 하고, 또 그 누나들이 카페에 들어오기도 하지.

내가 호객행위를 하려는 건 절대 아니야. 나를 보고 카페에 손님들이 들어가면 스윗한 사장님한테 내가 도움이 되는 거니까, 즐거운 일이야.


한때 인간엄마는 나랑 함께 식당이나 카페에 가려고 애쓴 적이 있었어. 내가 커피를 먹을 줄 아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나를 좋은 곳에 데리고 가고 싶었던 마음이겠지.

하지만, 소위 '애견카페'라고 하는 곳은 입장료와 음료값을 각각 받았어. 그리고 나는 대형견이다 보니까, 

입장료도 비쌌어. 엄마가 나와 함께 카페를 가기 위해서 지불하는 비용이 커지는 데다, 예절교육이 부족한 친구들이 많아서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 친구를 한 마리라도 더 만들어 주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은 알겠지만, 별로 나에게 도움이 되진 못했어. 요즘은 '애견동반카페'라고 하는 곳이 예전보다는 많이 생긴 편이라서, 제약이 적어지기는 했어. 다닐 곳이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어.  

친구들을 데리고 나온 인간 엄마아빠들(견주)의 부족한 매너와 행동을 접할 때가 있어.


우리 같은 개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분들이 있어. 모두가 동물을 좋아할 수는 없어. 그럴 수도 있는거야.

우리 엄마도 그랬던 사람이야. 인간세상도 그렇잖아. 멋지고 예쁜 사람이라고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아.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말하던데, 관계의 어려움이 예쁘지 않거나 키가 크지 않아서가 아니거든...

아무튼 애견출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강아지 친구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라고 풀어주고, 이유 없이 짖어대는 데도 방치하는 행동들을 볼 때면 뭔가 아쉬워.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인데, 서로 지켜줘야 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은 있다고 생각해. 


엄마와 함께 다니다 보면, 제일 많이 쓰는 말이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인 것 같아.

처음에는 '내가 대형견인 게 잘못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엄마 말을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었지. 엘리베이터를 타면 모서리에 앉아, 바닥을 쳐다봤어. 

엄마가 그렇게 하기를 바랬거든... 누군가 엄마와 나를 보고 내려달라고 말하면, 엄마는 '죄송합니다'하고 

내렸어. 조금은 억울했지만, 그렇게 몇 개월과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지금은 나를 만나면 인간 이웃들이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해주게 되었어. 그리고, 우리 엄마의 표정도 많이 편안해졌어.

"온돌아, 고개 떳떳이 들어"

"저 개는 진짜 얌전하더라"

"할머니, 엘리베이터 타도 돼. 저 강아지는 안 움직여"

그리고 엄마가 대답을 해. 

"감사합니다"

외출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오면, 엄마는 나에게 간식을 주며 말해.

"온돌이, 오늘도 잘했어"

나는 인간의 말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엄마에게 미소로 답해. 

'엄마, 사랑해요'


오늘도 잘 놀았어요. 간식먹고 한숨 잘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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