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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Oct 04. 2023

가을바람처럼 다녀 간 가을이

고마운 가을이

제이언니 : 어디야? 어떡하지?

나 : 왜?

제이언니 : 나 지금 헤이리에 밥 먹으러 왔는데, 누가 강아지를 버린 거 같아.

나 : 사이즈가 얼만한데? 애기야? 주변을 봐봐. 괜히 주인 있는 강아지한테 오지랖 떨지 말고..!!

제이언니 : 아니야. 여기 길에서 모자 파시는 분한테 물어봤는데 아침부터 나무에 묶여 있었대.

              어떡해... 어떡해. 너무 이쁜데,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나 : 델고와야지. 그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거기 상점주인한테 연락처 주고 와. 주인이 올 수도 있잖아

제이언니 : 델고가 도 돼?

나 : 그럼, 왜 전화했어? 어떡할 건데...




어느 가을날 오후였다.

다급한 목소리로 제이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의 평화롭던 오후 커피타임은 깨졌고, 친하게 지내는 온돌이 사료를 사러 다니는 샵에 전화를 했다.

혹시 유기견 데리고 오면, 돌봐주실 수 있는지를 물으면서도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은 임보 할 곳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해주셨다.

친한 언니들 몇 명에게 톡을 하고, 우리는 동네 작은 공원에 모였다.

나를 포함하여 모인 사람들은 모두 4명, 우리는 다들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다.

잠시 후, 제이언니는 누런색의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나타났다.

어떤 종인지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누가 봐도 믹스견이었다.

크기가 작지 않은 강아지는 다리를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당당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병원에 델고가 서 나이와 건강상태를 알아보기로 했다.


수의사 : 애기예요. 아직 유치가 있어요. 3~4개월 정도? 믹스견이고요.

제이언니 : 누가 버렸어요. 선생님. 여기서 돌봐주실 수 없어요?

나 :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한다. 병 걸린 건 없죠? 선생님?

수의사 : 네, 목줄 하나 드릴게요. 좋은 일 하시는데, 도움은 못 드리네요.

< 수의사샘이 주신 목줄을 한 가을이 >

수의사 샘이 건네주신 핑크색 줄을 채우고,

우리는 다시 동네의 작은 공원으로 돌아왔다.

나 : 몰티즈보다 사이즈가 큰데, 3개월이라고?

      온돌이 3개월에 비하면 작긴 하지만...

       그래도 큰 개네.

제이언니 : 사랑이(제이언니 강아지)는 다른 개를

                보면 밤새 짖어. 우리 집은 안되는데,

                어쩌지?

현이언니 : 우리 별이(현이언니 강아지)도 다른

               개랑 있으면, 그럴 거야.

                그리고 이 강아지가 커서.

경이언니 : 그래. 이 강아지가 좀 큰 게 문제다.

               우리 초록이도 어떨지 모르겠네.


세명 모두 푸들이나 포메를 키우고 있으니,

이 강아지가 아무리 3개월이라고 해도 소형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볼 때는 당연히 큰 개였다.


나 :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갈게.

      온돌이가 다른 개랑 지내는 건 문제없는데,

      이 강아지가 무서워할까 걱정이지.



해가 지고 있었다. 더 이상 길바닥에서 이 강아지의 거처를 두고 고민만 할 수 없었다.

오늘은 우리 집으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 세명의 언니들은 괜스레 나에게 미안해했다.

나는 전혀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다만, 이 조그만 강아지가 송아지만 한 온돌이를 봤을 때 놀랄 것이 더 걱정이었다.

헤이리 나무에 묶여 있는 게, 더 나은 하룻밤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 : 이름이나 짓자. 이름을 부르긴 해야 하잖아. 가을이니까, 가을이!!

그렇게 가을이는 가을날 부는 바람처럼, 살포시 우리 집에 왔다.



가을이를 안고 집에 들어오자, 온돌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킁킁거렸다.

가을이는 바들바들 온몸을 떨었고,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 움직이지도 않았다.

거실 바닥에 배변패드를 왕창 깔고, 두툼한 담요를 접어 방석을 만들어 주었다.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아마도 엄청 큰 개를 보고 놀란걸 수도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온돌이랑 앉아서 나는 요리조리 가을이를 살펴봤다.

'아... 귀가 아직 안 섰어. 아가가 맞는구나.' 다리랑 꼬리랑 적절히 하얀 털이 섞여 있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고단했는지, 식탁 밑으로 들어가서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마도, 엄청나게 큰 개가 있지만, 사나운 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쉬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똑똑하기까지 했었다.




팔로우가 몇 명 없는 나의 인스타에 가을이 입양공고를 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팔로잉하는 친구 중에 가장 유명한 온돌이 친구를 찾아서, DM을 보내고 부탁을 해봤다.

온돌이 친구는 흔쾌히 본인 인스타 계정과 트위터에 가을이 사연을 올리며 도움을 주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와 회사에서 퇴근한 남편은, 어리둥절해했지만 가을이가 이쁘다며 놀아주었다.

다행히 가을이도 낯설어하지 않고,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통 카펫 밖으로는 나오질 않아서, 아이와 나는 왜 그러지 고민하다가 이유를 알았다.

미끄러운 거실바닥을 처음 밟아본 것이었다. 가을이가 다닐 수 있도록, 담요를 접어 길을 만들어 보았다.

그때부터 가을이는 담요를 밟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고맙고 기특하게도 온돌이는 가을이에게 이것저것 '개의 예의'에 대해 알려주는 것 같았다.

가을이는 온돌이가 하는 것들을 보고 따라서 행동했고, 배변훈련도 잘 따라 주었다.

갑자기 강아지가 두 마리가 되고 보니, 밥주고 치우고 밥주고 치우고, 하루하루가 금방 끝났다.

다른 언니들은 사료와 간식, 옷들을 사들고 매일 보러 오거나 소식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가을이가 갈 수 있는 좋은 가정이 있는지도 수소문을 해주었다.

"우리가 키우는 건 어때? 엄마?" 아이가 종종 물어보았지만, 나는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마음이 흔들린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고, 몇 달이고 임시보호는 끝까지 해주겠다는 마음만 굳혀갔다.


가을이는 점점 활동량도 늘었고, 무엇보다 눈빛이 더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나도 무언가 잘하고 있다는 '효능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가을이의 눈빛에 자신감이 생길수록, 나도 덕분에 이번 가을을 잘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며칠이 지났고,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DM이 와서 열어보았다.

가을이를 입양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연락처와 오늘 저녁에 데리러 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어떡하지? 가을이 데리고 가고 싶다는데..." 남편에게 훌쩍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가을이의 주인이 아니라며, 남편은 이성적인 단어들을 조합하며 나를 달래주었다.

서둘러 통화를 했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서 저녁에 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급하게 동네 언니들에게 톡을 보냈고, 가을이가 떠날 시간을 알려주었다.

현이언니는 가을이한테 집이라도 사주고 싶다 하더니 이동장을 선물로 들고 왔다.

재이언니는 손편지와 선물을 들고 왔다. 경이언니는 멀리 나와있다며 마지막 인사를 못하는것에 속상해했다.

우리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졌고, 어떤 사람들 일지 모르는 불안감과 해맑게 온돌이랑 뛰놀고 있는 가을이를 쳐다보니 이별의 아픔이 섞여 계속 눈물이 났다.


초인종이 울렸고, 젊은 남녀 청춘이 들어왔다. 남매지간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오빠가 말하기를 동생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마침 가을이 사연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길지 않은 대화를 했다. 가을이의 정보만 제공했다.

"집에 잘 도착하시면 사진 하나만 보내주세요." 나는 부탁을 했다.

가을이가 떠나고, 한 시간 후에 거실테이블 아래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 사진을 받았다.

안도의 한숨과 미안한 마음에 또 눈물이 나왔다.


이름은 그대로 가을이, 인스타를 통해서 이후에 가을이의 일상을 보곤 했다.

자신만만한 눈빛은 더 강렬해졌고, 네 다리는 쭉쭉 길어져 온돌이의 반정도 키는 된 것 같았다.

그 이후에 나는 더 이상 가을이를 팔로우하지 않는다.

가을이를 완전히 보내주었다.

그래도 가을만 되면, 낙엽만 밟으면 가을이 생각이 난다.

가을아, 잘 지내지?

내가 너를 보살펴준게 아니라, 네가 나에게 잘살아가고 있다는 힘을 주었어. 고마워. 가을아.


가을이와 산책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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