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좌절을 이겨낸 최후의 아름다움

by 마정열

가을이 되면 자연은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친다. 그 주인공은 단풍이다.

단풍은 왜 드는가?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저기 저기 저 가을 끝자리/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푸르른 날, 서정주)’


그런 것 같다. 푸르디푸른 초록이 세월에 지쳐 빨간 단풍이 되는 것 같다.


단풍을 올려다보면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수고했어.” 하고 어깨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세월에 지친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빛을 발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기도 하다.


단풍이 드는 이유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식물의 잎은 ‘햇빛’을 자원으로 삼아 ‘당’이라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그 에너지로 식물은 살아간다.

여름은 낮이 길고 햇빛도 강한 데다 온도도 높아서 식물이 광합성을 하기에 가장 최적의 날씨이다. 광합성은 화학반응이라서 온도가 높을수록 활발해진다. 그래서 식물은 여름 동안 초록빛 잎들을 최대한 많이 내서 열심히 공장을 돌린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낮이 짧아지고 온도도 낮아지면서 광합성의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식물은 잎이 생산해 내는 당보다 소비하는 당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식물의 잎은 호흡으로 계속 당을 소비하고 또 잎의 증산작용을 통해 식물이 가진 수분도 끊임없이 증발한다. 가을이 되면 비가 별로 안 오기 때문에 식물의 몸체 입장에서는 잎이 증발시키는 수분이 점점 아까워지기 시작한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식물 본체는 여름 동안 열심히 일하며 당을 생산해 냈던 잎을 손절하기로 결정한다. 이 매몰찬 식물 본체는 가지와 잎이 연결된 부분에 ‘이층’이라는 벽을 만들어서 수분과 영양분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다. 그때부터는 잎으로 수분도 영양분도 공급되지 않게 된다. 여름 동안 열심히 일해온 이파리에게는 참 가혹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식물 본체 전체가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다.


몸체로부터 버림받은 잎은 좌절하지 않는다. 식물 몸체로부터 버려진 이파리는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간다. 가지로부터 영양분과 수분 공급은 끊겼지만 남아있던 영양분으로 잎을 유지하면서 낮 동안에는 광합성을 지속한다. 이때 잎이 만들어낸 당은 식물이 쳐놓은 벽 ‘이층’에 막혀 줄기로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의 잎에는 당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잎은 축적된 당분을 이용해 ‘안토시아닌’이라는 붉은 색소를 차츰 만들어낸다. 안토시아닌은 수분 부족이나 낮은 기온으로 인해 발생하는 식물의 스트레스를 경감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날씨가 너무나 추워져 마침내 잎에서 광합성을 하던 엽록소가 다 사라지면 엽록소의 녹색 대신 그 안에 축적되어 있던 안토시아닌의 붉은 색소가 잎 색깔로 보이게 된다.


단풍이 들 때 색깔이 노란색, 빨간색으로 나뉘는 이유는 그 속에 들어있는 물질 때문이다. 카로티노이드가 많으면 노란색,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카로티노이드는 광합성을 하는 대부분의 식물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물질이다. 주로 주황색, 노란색을 띠는 색소군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평소엔 엽록소를 돕는 역할로 숨어있다가 엽록소가 사라지는 순간 노란색을 띠면서 나타난다. 그래서 대부분의 낙엽은 노란색, 갈색으로 변해서 떨어진다.

하지만 안토시아닌은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내야 하는 물질이다. 자연에서 붉은색은 독성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또 식물이 안토시아닌 물질을 만들었다는 것은 잎에 남은 영양분이 적다는 신호도 함께 준다. 그래서 진딧물 같은 해충에게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노란 단풍은 단순히 엽록소가 빠지고 남은 색상이 보이는 것이라면, 빨간 단풍은 이파리가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오롯이 노력으로 만들어낸 색상이다. 치열한 싸움과 노력의 흔적이다.


단풍은 좌절을 이겨낸 치열한 생존의 결과물인 것이다.


당(唐) 시인 두목은 단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산행(山行), <두목>

遠上寒山石徑斜 멀리 차가운 산 비스듬한 돌길 오르는데

白雲生處有人家 흰구름 피어오르는 곳에 인가가 드문드문.

停車坐愛風林晩 수레 멈추고 앉아 늦가을 단풍을 보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구나.


그는 서리 맞은 늦가을의 단풍잎을 보면서 한때 푸르렀다가 스러지는 인생 여정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젊은 날의 숱한 좌절과 시련을 견디며 지나온 삶의 여정을 떠올리며 황혼의 쇠락한 잎이 청춘보다 더 붉고 아름답다고 하였다.


무성한 이파리를 휘날리던 청춘의 날은 갔다.

그러나 다시 한번 단풍과 같은 치열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사내의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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