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불고 비라도 내리면 거리는 온통 노란색으로 치장한다.
사람들은 날리는 은행나무 잎에서 가을의 정취와 낭만을 느끼겠지만 우리와 같은 거리의 노동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은행나무 열매에서 뿜어내는 악취를 없애달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우리는 악취 속으로 들어가 은행나무 열매 수거 작업에 돌입한다.
은행나무는 외롭다.
은행나무는 3억 년 전부터 지구에 살아왔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가족이 없다. 은행나무는 솔방울식물 강(綱)이다. 이 강(綱)에 속하는 나무는 지구의 기후변화로 다 소멸했지만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의 오직 한 종류만 지구상에 살아남았다.
그래서 진화생물학자들은 은행나무를 가장 외로운 나무라고 설명한다. 혈혈단신으로 역사를 써온 은행나무는 지질학상, 고생대부터 자라고 있었으며 쥐라기에 전성기를 이루다가 중생대가 되면서 저물기 시작했는데, 빙하시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혹독한 추위에 식물 대부분이 사라져 갈 때 비교적 따뜻했던 동아시아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생명력을 발휘한 것은 어떤 환경적인 악조건에서도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 강한 생명력이라고 한다. 특히 은행나무 잎은 벌레도 안 먹고 초식동물들도 쳐다보지 않는다. 씨앗인 은행 열매도 새들은 물론 육식동물들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죽하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모든 생명체가 다 죽었지만, 그 중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은행나무는 이듬해에 새싹을 틔었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외롭다.
여름이면 시원한 푸른 그늘로, 단풍 드는 가을이면 연인의 쉼터로, 낙엽이 떨어지면 가족들의 놀이터로 사랑받아온 은행나무.
오랫동안 지구에 살아왔고, 사원이나 서원, 나라의 중요한 기관에 해당하는 건축물, 공연장, 정원 등 귀품 있는 자리에는 늘 은행나무를 심었고, 수명이 길기 때문에 거구수가 많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의 열매가 뿜어내는 악취의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사람들은 돌변하여 은행나무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는데 암나무에서 열매가 열린다. 국내에 가로수로 식재된 은행나무 가운데 암나무는 32%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10월과 11월. 이 시기가 민원이 폭주하는 시기이다. 해마다 계속되는 민원에 각 지자체에서는 암나무를 제거하고 다른 나무로 가로수의 수종을 교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암나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3억 년을 버텨온 은행나무가 한 달을 참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자아중심적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짝을 잃은 수나무는 외롭다. 외로운 수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환호 작약한다. 잔인하다. 펄펄 날리는 은행잎이 마치 짝을 잃은 수나무의 눈물 같아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하다.
존재의 외로움을 일깨워 주는 은행나무.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