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작년 일이다.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불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더니, 위 내시경 검사 결과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진료의뢰서를 건네준다. 불안하고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뚝방 길에 개나리가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노란 개나리꽃은 나에게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의 손길을 보내는 듯했다.
개나리꽃은 그늘마저 노랗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저렇게 환희의 꽃을 틔워냈나니
시련과 슬픔을 억세게 견뎌내면
기쁨의 날은 반드시 올지어니
견디어라
우리의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형용할 수 없는 희망의 향기와 함께
상급병원에서 다시 내시경 검사를 했다. 결과는 ‘위선종’이었다. 여러 검사를 거쳐 위점막박리술로 선종제거시술을 받았다. 이제 끝이려니 생각하고 퇴원 후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직검사 결과 위암입니다.”
머리가 멍해졌다. 아무 말 없는 나를 보고 의사가 말했다.
“수술을 해야 합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나보다 아내가 더 걱정을 많이 했다. 나는 별거 아니니 걱정 말라고 아내를 위로했으나 불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위암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의 통증을 견디고, 불편한 입원 생활을 견디고 퇴원을 했다.
10월의 가을 하늘은 맑았다. 병원 정원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노란 우산을 드리우고 병원문을 나서는 나를 반겨주었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절망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은행나무, <곽재구>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 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 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이듬해 봄, 추위를 이겨낸 개나리는 노란 그늘을 다시 드리웠고, 시간은 흘러 세상은 금빛 추억의 아름다움으로 물드는 10월이 되었다.
건강회복에 신경을 써준 아내가 고맙다. 아비의 짜증을 말없이 견뎌준 아이들이 고맙다. 퇴원 후 다시 일터로 나갔을 때, 제대로 힘을 못쓰는 나를 배려해 준 동료들이 고맙다.
노오란 우산깃을 펼치고 있는 은행나무 길을 걸으며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에 감사의 연서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