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보식 Mar 20. 2020

< 길 위의 명상 >

프롤로그



  제자가 묻는다. “잘 지내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스승이 답한다. “세 가지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달에  비해, 몸이 좋아졌는가? (건강해졌는가), 마음이 좋아졌는가? (편안해졌는가) 그리고  주변 환경이  나아졌는가? (원하는 대로  바뀌었는가). 이렇게 세 가지만 보면 알아요. 만약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고 하면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알아내서 그걸 바로 잡으면 되는 겁니다. 다음 달, 6개월 후, 1년 후, 3년 후, 10년 후 즈음엔  똑같은  질문에서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대답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바로  수련(修鍊)입니다.”

  제주도로 내려와 ‘섬도보여행가’란 이름을 걸고 도시에서 온 사람들에게 수많은 자연의 길을 안내하며 함께 걸었다. 참가자의 인원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제주올레의 바당길이건 한라산의 숲길이건, 출발 전 참가자들에게 반드시 전하는 유의사항이 있다. 참가자 수가 많아 대열이 길어지거나 흐트러져 길을 잃게 될 때에 대비한 내용이다.

  “우선, 대열에서 벗어나 길을 잃었을 때 결코 당황하지 마세요. 길을 잃었다고 판단이 되면 즉시 안내자에게 연락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세요. 그리고 길을 잃은 지점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고 걸어왔던 길로 방향을 돌려 다시 거꾸로 가세요. 제주올레와 한라산둘레길에는 반드시 진행방향을 안내하는 표식들이 리본이나 화살표 등으로 설치되어 있으니까 그곳이 다시 보이는 지점까지 돌아가면 됩니다. 다시 표식을 발견한 지점, 그러니까 길을 잃기 시작한 그 지점에서, 자신이 걸어간 길을 제외하고 주위를 살펴서 다른 길이 없는지 그리고 그 다른 길에서 다음으로 이어지는 안내표식이 없는지 확인하세요. 길안내 표식을 찾았다면 이제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걸으세요. 간단합니다. 이렇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출발하기 전에 잠시 그곳에서 쉬면서 물도 마시고 간식거리로 요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새로운 길을 다시 걸어갈 준비를 하세요. 이상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유의사항을 참가자들에게 거듭 강조하는 것은, 제주도의 경우 기상변화가 예측 밖으로 극심한 경우가 있고, 때론 노약자의 경우 대열에서 빠져나와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 몸과 마음의 경직되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실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전 유의사항에 대한 단단한 전달 덕분인지 지금까지 길을 잃고 문제가 되거나 사고로 이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제주도로 내려와 수많은 자연의 길들을 나 홀로 걸으면서 때론 방향감각을 놓쳐 실제 길을 잃어버린 경험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 


  벼락치기에 갖가지 도시생활의 스트레스와 번잡스런 중독으로 끌고 가던 삶을 멈추어야 하는 시간이 어느 날 내게 갑자기 찾아왔다. 길을 잃었다. 삶의 방향을 잃었다. 어디서부터 길을 잃은 건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후 나의 길로 돌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잃어버렸던 나의 길을 되찾아야 했다. 일방적인 삶의 공식에 억지로 끼워 맞춘 삶이 가져온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더 나아가 잃어버린 나의 삶을 회복하는 것에도 제주도의 길을 걸을 때 사전에 참가자들에게 안내한 유의사항이 똑같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마치 발전의 반대인 퇴화처럼 보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람에게도 변화와 성장을 포함하는 진화의 길이 거꾸로 퇴화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길 잃은 이가 길을 되찾기 위해선 길을 잃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는 거꾸로인 삶의 방향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가만히 인정하고 길을 잃기 시작한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돌아가는 길, 회복하는 길은, 과거 언젠가 길을 잃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한 것이었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거기에는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2020년 3월 중순을 가리키는 달력의 숫자와 상관없이 마음은 코로나바이러스 탓인지 아직 겨울에 머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바깥 햇살과 꽃들은 봄이라고 손짓했고, 나는 제주도를 내려와 지난 10여 년간 걸었던 자연의 길들을 하나씩 다시 걸으며 길과 그 길 위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로 했다. 처음엔 제주의 좋은 길들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소개하는 여행안내서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걷기가 좋아 제주도를 찾은 사람뿐만 아니라, 도시생활의 스트레스로 번아웃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잠시 피정 온 사람, 귀농귀촌을 결정한 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아예 제주로 내려와 제주도민으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 암수술을 받고 건강회복을 위해 걷기 시작한 사람,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과 이별하거나 사별한 사람, 직장 동료 또는 가족 간의 갈등 때문에 탈출구와 해결책을 찾아온 사람, 미래의 직업을 찾아 고민하던 사람, 평생을 근무했던 직장을 갑작스레 그만두게 되어 막막한 사람, 정년을  앞두고 있거나  아니면 서둘러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제주도를 찾는 분들과 함께 걸었던 길이었음을 떠올리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저마다 걷는 이유와 처지는 달랐지만 그 다양한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그 길들을 추억하고 또다시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에서의 걷기’라는 행위 자체가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마력 같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았건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자리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어느 날 요구받을 때, 문제의 화살을 바깥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돌려 물끄러미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선을 그 길들이 선물해 주었다. 그런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이 책은 제주도의 21가지 아름다운 자연의 길 위에서 가지런한 호흡을 되찾고,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습관을 체득하며, 어제와 다른 삶을 시작하게 하는 또 다른 시선을 얻는 ‘나에게로의 여정 (Journey to Myself)’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동시에 오래전 스승이 일러준 ‘잘 지내기 위한 자기 수련’의 기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세상에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 더 보태기로 어렵고 또 조심스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누군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꾸로 살아간 나의 진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을 자각하고 다시 자신만의 삶의 길 위로 스스로를 인도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하나 때문이다.           

       

                                                                                          2021년 4월 11일

       

                                                                                          제주도 남서쪽 모슬포 집에서








#강보식, #섬도보여행가,  #더힐링아일랜드, #길위의명상, #제주를걷는21가지방법, #제주여행학교, #제주인생학교, #제주여행, #인생2막, #세컨드라이프, #제주걷기여행, #제주올레, #한라산숲길, #곶자왈, #오름, #명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